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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윤 시인 / 메시지 예약전송
일주일 전 세상 떠난 친구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잘 있지 난 잘 왔다 생각보다 그리 멀지 않더라 그때 수고 많았고 고마웠다 빳데리가 없어 더는 연락 못 한다
이상윤 시인 / 단칸방
젖은 연탄 피우는 연기 움푹 꺼진 부엌에 잘팍히 고인 밤이면 우리는 좁은 필통 속 연필처럼 나란히 누웠다
깎아보면 심이 곯아 다 부러져 있는 여섯 자루의 아픈 연필
찬 기운이 기어들지 못하도록 한 몸으로 붙어 누운 새벽, 잠에서 깨어 바라본 유리창은 밤새 여섯 자루의 연필들이 뱉어낸 입김에 온통 눈 덮인 풍경
산엔 백목련, 들국화 들판 너머엔 설국雪國으로 달려가는 기차 하늘엔 먼데로 흩어지는 구름 그리고 얼굴, 얼굴들.......
아버지는 이미 부러지고 어머니는 부러질 날을 기다리고 두 형과 한 누나는 다른 필통 속에서 일가를 이루었지만
난 아직도 잊지 못하네 필통 속 잘 부러지던 연필들의 심, 그 흑연냄새를
이상윤 시인 / 시인 M
보지 않고 이름만 들어도 영락없는 시인
달빛 두근거리는 밤 홀로 봄 뜰에 서 있는
저 소슬한 백목련 한 송이
이상윤 시인 / 안개의 근황
그즈음 11월에도 우리는 강을 끼고 달리는 차 안에 있었다
강에 무리 지은 새떼를 삼켜버린 안개가 스멀스멀 강변도로로 기어 나와 근황을 물었을 땐 아직은 그래도 잘 있다고 안개등을 켜주었다
안개 속에 손을 집어넣어 당신의 짙은 목소리를 꺼내던 날들은 눈은 침침했지만, 온몸은 그래도 환했었다
안개의 어깨너머를 짚어보다 이젠 만질 수 없지만, 안개 속에서 많은 당신을 세어 볼 수 있었다
안개는 당신의 편이라 믿다. 먼저 등을 바라보는 사람의 편에 설 수 있다는 생각에, 그만 당신과의 거리가 덜 슬퍼졌다
그때부터 난 한나절 차창에 비스듬히 기대어 안개를 몰고 가는 바람을 담담하기로 한 이별처럼 바라볼 수 있었다
안개 속에서도 안개 밖에서도 기억은 산다
안개 속에 있는 당신과 안개 밖에 있는 나도 속과 겉 분별도 없이 살아내면서 축축하게 지워지고 있었다
그래서 11월의 안개는 닿을 수 없는 당신과 나 사이에서 그렇게 기를 쓰며 자욱해졌던 것이다
이상윤 시인 / 집들이
네가 이사했다는 건 무소식만 전하던 친구에게서 들었다 1002동 505호 더 높이 오를 수 없는, 계단이 없는 신축 다세대주택
빈 술잔마다 고향을 채우던 너는 흙집을 원했지만 부지런함도 너의 편이 되어주지 못해 얼마 전 공사가 마무리된 분양가를 낮춘 이곳에 들었다
언제나 표정에 인색했지만, 평생 처음 이름을 건 집이라 문 앞에 선 너는 활짝 펼쳐둔 웃음을 접지 못한다
506호엔 박봉순 할머니가 살고 507호엔 예쁜 예린이가 살고 509호는 며칠 후면 입주할 김국현 씨 이름으로 계약되어 있다
집들이 온 사람들은 저마다 싸들고 온 음식을 펼쳐두고 웃다가 울다가 싱거워져 가는 기억을 한 술씩 떴다
사람들 기척 소리에도 문밖을 한 번 내다보지 않는 너는 참 많이 고단했던 모양이다
깨우고 싶지 않아 그냥 돌아오려다 오래전 가을이던가, 우산도 없이 너를 찾아간 그 때처럼 문을 한 번 두드려본다
이상윤 시인 / 이별을 읽다
나를 앉혀 두고 당신이 왼쪽으로 눕는 것을 이별이라 부른다
내가 오른쪽에 서지 않았다면 우리는 어디까지 따뜻할 수 있었을까
이별은 어제 죽은 자의 오늘 같은 것
당신이 없는 거리에선 지는 꽃이 더 붉었다 바람이 지날 땐 꽃잎은 버리고 떨어진 향기만 보았다
이별은 이해되지 않는 장문의 편지 창의 왼쪽을 바라보는 난 새벽까지 한 문장도 빠져나오지 못했다
하루는 생의 마지막처럼 저물고 나는 강가에 서서 오지 않을 즐거운 것들에 대해 생각한다
당신이 등을 두고 간 자리에서 젖은 돌 하나를 주웠다 모가 닳았다 동글해져야 하는 것에 대해 생각할 시간
당신은 가장 깊은 수심에서 건져 올린 돌 그 돌을 던져 강으로 돌려보낸다 수면에 그려지는 동그라미
자꾸만 당신 얼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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