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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최창균 시인 / 수레바퀴 언덕 외 6편

by 파스칼바이런 2025. 10. 27.
최창균 시인 / 수레바퀴 언덕

최창균 시인 / 수레바퀴 언덕

 

 

수레국화 언덕 끌고 언덕 오르는 데 일년

봄맞이꽃 언덕 끌고 언덕 내려가는 데 일년

일년은

언덕이라는 수레바퀴가 한바퀴 도는데

꼬박 걸리는 시간

언덕이 한바퀴 또 한바퀴

여름풀 겨울나무 언덕 끌고 나타난다

언덕의 수레바퀴 돌아가는 속도대로

꽃 피고 꽃 지고 나비 날고 벌떼 잉잉거린다

모든 생의 언덕은 분침초침처럼

조금 느리게 아주 빠르게 돌기도 한다

간혹 제 언덕의 바퀴에 깔린

검은 나무는 죽은 시간의 잠으로 또 한바퀴

그렇게 나도 언덕을 끌고 여기까지 왔다

내가 끌고 온 언덕이 데굴데굴

내가 탕진해버린 언덕이 데굴데굴

구르고 굴러도 언덕인 내 평생아

 

 


 

 

최창균 시인 / 비 듣는 밤

 

 

그칠 줄 모르고 내리는 빗소리

참으로 많은 생을 불러 세우는구나

제 생을 밀어내다 축 늘어져서는

그만 소리하지 않는

저 마른 목의 풀이며 꽃들이 나를

숲이고 들이고 추적추적 세워놓고 있구나

어둠마저 퉁퉁 불어터지도록 세울 것처럼

빗소리 걸어가고 걸어오는 밤

밤비는 계속해서 내리고

내 문 앞까지 머물러서는

빗소리를 세워두는 구나

비야, 나도 네 빗소리에 들어

내 마른 삶을 고백하는 소리라고 하면 어떨까 몰라

푸른 멍이 드는 낙숫물 소리로나

내 생을 연주한다고 하면 어떨까 몰라

빗소리에 가만 귀를 세워두고

잠에 들지 못하는 생들이 안부 묻는 밤

비야. 혼자인 비야

너와 나 이렇게 마주하여

생을 단련 받는 소리라고 노래하면 되지 않겠나

그칠 줄 모르는 빗소리 마냥 들어주면 되지 않겠나

 

 


 

 

최창균 시인 / 앉아 있는 나무

 

 

저 그루터기로 보아 베어내기 아까웠던

한때 참 잘 자랐던 나무인 걸 한눈에 알아봤어요

한아름도 넘는 밑동이 곧게 자랐을 거란 믿음 같은 거

누군가 그 나무 베어낼 때 몹시도 슬퍼했던 흔적 같은 거

단번에 베어내지 못하고

몇 번이고 쉬어간 톱자국이 그걸 말하고 있어요

제 몸에서 걸어나온 나무의 아픈 흔적 같은 거

어쩌면 누군가도 그 나무 속으로

저와 같은 흔적 남기며 걸어 들어갔을지도 모를 일이지요

그루터기나무의 가족으로 보이는

작은 나무들의 나뭇가지가 찢겨 있어요

쓰러지는 그루터기나무 받아 안고

내어주지 않으려다 찢어진 마음들 같은 거

작은 나무기둥 사이로 큰 슬픔이 빠져나간 듯 길이 나 있구요

하늘도 누수하듯 거길 들여다보고 있어요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은

허공에다 파놓았던 그 나무의 푸른 웅덩이 사라진 뒤

환한 햇빛의 웅덩이가 새로 생겨나 있는 거예요

아무래도 그루터기나무는 어데 멀리 간 것이 아니라

숲이 내준 환한 슬픔의 자리에 앉아 있는 듯해요

나도 이렇게 그루터기나무와 함께 앉아보는 슬픔으로요

 

 


 

 

최창균 시인 / 사랑

 

 

햇빛 반 어둠 반

마주한 시선의 어루만짐이 노을의 절정

타는 눈 속으로 타들어가는 눈의 황홀경

저 놀라운 눈을 뜨는 것이 사랑이다

해 넘어간다 해 넘어간다

저 애절한 시선이 사랑이다

 

 


 

 

최창균 시인 / 쓰러진 소를 일으키며

 

 

쓰러진 소를 일으키며 나는 되뇌인다

어둠 속 더욱 시커먼 어둠으로 누워있는 네가

나의 슬픔이구나 사방을 둘러보아도

생의 비탈처럼 쓰러져 있는 네가

또한 나의 아픈 사랑이구나

지금 너는 내자식, 내 아버지, 내 삶의 전부처럼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너를 말하고 있구나 그렇구나

부러지지 않고 찢어지지 않는 어둠속에서

네가 붉은 소금으로 타고 있구나

시뻘겋게 삶의 밑불로 지펴지고 있구나

절망의 거품 물고 발버둥치는 네가

생의 바닥까지 갔다 되돌아오는 비명처럼 우는 때

나는 혼신의 힘으로 너를 도와 일으킨다

그렇게 너도 나를 도와 부끄러운 내 삶을 일으켜 세우는구나

이제 세상 꼿꼿하게 살아는 보자고

 

 


 

 

최창균 시인 / 소3

-우황에 대하여

 

 

우황 든 소는 캄캄한 밤

하얗게 지새며 우엉우엉 운다

이 세상을 아픈 생으로 살아

어둠조차 가눌 힘이 없는 밤

그 울음소리의 소 곁으로 다가가

우황 주머니처럼 매달리어 있는 아버지

죽음에게 들킬 것 훤히 알고도

골수까지 사무친 막부림당한 삶

되새김질하며 우엉우엉 우는 소

저처럼 절벽울음 우는 사람 있다

우황 들게 가슴 치는 사람 있다

코뚜레 꿰고 멍에 씌워 채찍 들고서

막무가내 뜻을 이루려는 자가 많을수록

우황 덩어리 가슴에 품고 사는 사람 많다

우황 주머니 가슴에 없는 사람

우엉우엉 우는 소리 귀담지 못한다

이 세상을 소리내어 우엉우엉 울지 못한다

 

-시집 <백년 자작나무숲에 살자>에서

 

 


 

 

최창균 시인 / 자작나무 여자

 

 

그의 슬픔이 걷는다

슬픔이 아주 긴 종아리의 그,

먼 계곡에서 물 길어 올리는지

저물녘 자작나무숲

더욱더 하얘진 종아리 걸어가고 걸어온다

그가 인 물동이 찔끔,

저 엎질러지는 생각이 자욱 종아리 적신다

웃자라는 생각을, 다 걷지 못하는

종아리의 슬픔이 너무나 눈부실 때

그도 검은 땅 털썩 주저앉고 싶었을 게다

생의 횃대에 아주 오르고 싶었을 게다

참았던 숲살이 벗어나기 위해

또는 흰 새가 나는 달빛의 길을 걸어는 보려

하얀 침묵의 껍질 한 꺼풀씩 벗기는,

그도 누군가에게 기대어보듯 종아리 올려놓은 밤

거기 외려 잠들지 못하는 어둠

그의 종아리께 환하게 먹기름으로 탄다

그래, 그래

백년 자작나무숲에 살자

백년 자작나무숲에 살자

종아리가 슬픈 여자,

그 흰 종아리의 슬픔이 다시 길게 걷는다

 

 


 

최창균 시인

1960년 경기도 일산 출생. 1988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백년 자작나무숲에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