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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이위발 시인 / 하늘가는 길 외 6편

by 파스칼바이런 2025. 11. 14.
이위발 시인 / 하늘가는 길

이위발 시인 / 하늘가는 길

 

 

구불구불 굽어져 있는 소나무

볼품없어 보인다.

얼핏 보면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팔을 제대로 뻗지

못해 구불구불하다.

바위틈에 떨어져 자란 생을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부족한 양식과 세찬 바람에

몸 던져 버틴 소나무

꿈은 그들만의 하늘을 갖는 것

생을 수용하지 않고

열 수 있는 하늘 없듯이

시작하지 않고 넘을 수 있는

벽이 없듯이

소나무는 햇빛을 보기 위해

스스로 팔을 자르며 올라간다

 

 


 

 

이위발 시인 / 금낭화

 

 

당신에게 가기 위해선 당신 문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하지만 당신은 알지 못합니다.

내가 죽어야 문이 열린다는 것을

땅에서 바람으로 하늘에서 구름으로 만들어져 온 것

그 속에 당신의 무늬가 있다는 것을 압니다.

당신에게서 연분홍 감정이 피어 나오는 것은

깊은 향기를 내는 제 뿌리입니다.

땅의 울림에서 깊숙이 박혀 있는 뿌리, 그것은 씨앗의 뿌리입니다.

당신의 목소리는 깨달음의 울림이고, 그 울림은 맑습니다.

그 맑음은 향기입니다.

차를 서너 사람이 마시면 그저 맛을 보는 정도이고,

둘이 마시면 잘 마시는 것이라 했습니다.

마음이란 이렇듯 마주 보고, 앉으면 따뜻해지고,

넉넉해지고, 미소가 번집니다.

줄기에 달린 등을 뿌리가 보듬어 안고 있는 한

당신 같은 멋진 문장은 태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이위발 시인 / 있음과 없음의 사이

 

 

열매 떨어지자 꽃이 필 때

 

낮달은 흔적 없이 사라지고

 

꽃잎이 고개 흔들며 있음을 알릴 때

 

구름에 갇힌 낮달은 없음을

 

확인하기 위해 그 사이에 머문다

 

-시집 『지난밤 내가 읽은 문장은 사람이었다』

 

 


 

 

이위발 시인 / 몸의 기억

 

 

눈으로 인사하는

말이 아닌

눈의 감정

눈으로 길을 만들고

또 다른 눈을 찾는다

마주치는 눈은

피할 수 없으면서

왜 눈물 흘리는 가

손 한번 내밀고

포옹 한번 하면

눈 녹듯 사라질 텐데

 

-《시로 여는 세상》 2023년 여름호 발표

 

 


 

 

이위발 시인 / 보통날 대화

 

 

오랜만에 만난 시인 세 사람

보통날 카페에 앉아 한잔하는 중이다

(바라보는 눈과 태도가 다른 것이 이치理致다)

 

이육사청포도와인으로 낮술을 하고 있다

발음이 새듯 청시인이 먼저 추렴을 한다

“주렁주렁 달린 청포도엔

이해도 달려있고 오해도 달려있어!”

 

포시인이 받아 친다

“빛이 넝쿨 사이로 들어와

더듬이와 발판으로 서로 당기니까

그렇게 보이는 거야!”

 

눈빛이 흔들리던 도시인이 마무리 하듯

처절하게 못을 박는다

청포도는 독자를 아프게 하고, 부끄럽게 하고,

화나게 하고, 움직이게 하기 때문이야!

 

웹진 『시인광장』 2023년 5월호 발표

 

 


 

 

이위발 시인 / 시간놀이

 

 

후평 할매가 콩을 줍고 있다

서리 앉은 밭고랑에

갈고리 같은 허리를 하고 있다

얼굴처럼 말라비틀어진 콩을

한 알 한 알 주워 담고 있다

 

한 알은 다단계에 빠져 침을 튀기던 첫째 년을 위해

한 알은 퇴직금으로 주식하다 망해 길바닥에 나앉게 생긴 둘째 놈을 위해

한 알은 고향을 떠나지 못하고 홀아비로 환갑을 맞은 큰 놈을 위해

 

시간을 지키듯이

시간을 보듬듯이

시간을 삭이듯이

시간을 죽이듯이

 

할매는 시간놀이하듯 콩을 줍고 있다

 

-시집 『지난밤 내가 읽은 문장은 사람이었다』 에서

 

 


 

 

이위발 시인 / 상처, 그 외로움에 대하여

 

 

아무것도 아닌 것이

모든 것이 되기도 하는

슬픔의 까닭이 결핍이듯이

결핍이 없는

나의 시선은

균형을 잃고

손을 흔들어 보았지만

그대는 표면과 이면의

양날을 품은 채

눈꺼풀이 커튼 열리듯

달덩이 하나 쑤욱 올라와

보란 듯이 바람맞은 가슴을

두드리기 시작하는데

 

 


 

이위발 시인

1959년 경북 영양 출생. 서울과학기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고려대학교 대학원 문학예술학과 졸업. 1993년《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어느 모노드라마의 꿈』 『바람이 머물지 않는 집』 『지난밤 내가 읽은 문장은 사람이었다』. 산문집 『된장 담그는 시인』 현재 이육사문학관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