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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류미야 시인 / 아침 호수공원 외 6편

by 파스칼바이런 2025. 11. 18.
류미야 시인 / 아침 호수공원

류미야 시인 / 아침 호수공원

 

 

얼마나 숱한 슬픔 밤새 흘러들었는지

희붐한 아침 물낯서 눈물 냄새가 난다

 

마음이 수런대는 날

아침 물가로 가면

 

서러운 어느 창은 서서 밤을 걸어오고

세상엔 슬픔 많아 흰 수선화 핀다

 

마음이 수런대는 날

아침 물가로 가면

 

고단한 몸들은 다 어디서 비 그을까

어두운 귀 기울이면 작은 새 울음소리

 

마음이 수런대는 날

아침 물가로 가면

 

호수 닮은 하늘도 하늘 담은 호수도

터진 발 내려놓는 된바람도 순하다

 

마음이

수런대는 날

아침 물가에 가면

 

-시조집 『아름다운 것들은 왜 늦게 도착하는지』

 

 


 

 

류미야 시인 / 수련

 

 

움푹 팬 마음을

윤나게 닦아

널었습니다

 

쏘던 햇살

바람도

눈매가 순해졌습니다

 

공손히 중심에서 모두

손등 포개는

한낮입니다

 

 


 

 

류미야 시인 / 매화나무 가지 위에 뜬 달

눈 아닌

마음으로 본다는 말

믿게 됐네

지나가는 것들에 찢기기도 하면서

마음이 차오를수록

너도 눈감았겠지

맹목으로 눈멀어 숱한 날 더듬거려도

겨울나무 터진 등

끝내 잊지 않았지

그런 너, 크게 웃는 걸

나 본 거야

꽃눈 돋은 날

 

 


 

 

류미야 시인 / 어두워지는 일

저녁이 사력을 다해 밤으로 가고 있다

떨어진 잎새 하나 함께 어두워지는

초겨울 가로등 불빛 아래

많은 것이 오간다

낮을 걸어 나오면 밤이 될 뿐이지

저무는 것들의 이마를 짚어본다

불현듯 낡아 있거나

흐려지는 것들의

서리 낀 풀숲에 겨우 달린 거미줄이나

명부 같은 우물에도

이 밤 별은 뜨리니

죽도록 어둠을 걸어 아침에 닿는 것이다

굳게 닫힌 바닥을 발로 툭툭 차면서

다친 마음 바닥에도 실뿌리를 벋어본다

겨울이 오는 그 길로

봄은 다시 올 것이다

 

 


 

 

류미야 시인 /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마법의 주문에 꽃들이 폈다, 졌다,

한 봉오리

"숨셔도 돼?" 하니

까댁이며

"응" 하는 꽃

그 꽃말 - '서로 숨 쉬게 하는 것'

오늘서 처음

알았습니다

 

 


 

 

류미야 시인 / 연애

 

 

그렇지, 놀음이지

놀음 아닌 무엇이리

 

더불어 그리는 데

재는 마음 없으니

 

등 미는 겨울바람도

네게 가는 지름길

 

저물도록 해도 잊고

꽃 지도록 봄도 잊고

 

오로지 그 얼굴,

그 얼굴만 꽃이 되는

 

스무 살 풋마음 아닌 것

감히 사랑도 아니리

 

 


 

 

류미야 시인 / 갈봄 없이, 저 꽃

 

 

제비꽃을 알아도

몰라도 오는 봄*

 

그 봄사 오든 말든 제비꽃

피네

 

다 떠난 어느 봄날도

아직 피는 중이겠네

 

구절초를 알아도

몰라도 가는 가을

 

그 가을가든 말든 구절초

지네

 

다시 올 어느 가을도

아직 지는 중이겠네

 

*안도현 시 「제비꽃에 대하여 첫 부분에서.

 

-시집 <눈먼 말의 해변>에서

 

 


 

류미야 시인

1969년 경남 진주 출생. 서강대학교 대학원 국어교육 전공. 2015년 월간 《유심》 신인상을 통해 시조 등단. 시조집 『눈먼 말의 해변』 『아름다운 것들은 왜 늦게 도착하는지』. 공간시낭독회문학상 등 수상. 2020년 중앙시조신인상을 수상. 웹진 《공정한 시인의 사회》발행인 겸 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