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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강수정 시인 / 명왕성 -134310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5. 12. 28.
강수정 시인 / 명왕성 -134310

강수정 시인 / 명왕성 -134310

 

 

2006년, 나는 세상으로부터 버려졌다

작고 희미한 존재

뻥 터진 팝콘 무리에서 갇혀버린 부스러기 한 톨

지옥의 세계가 이렇게 어둡고 외로울까

 

친구가 필요해

카론, 나와 함께 궤도에 오르자

함께 밤하늘을 꿰뚫어 보자

 

러시안 블루의 에메랄드 빛 눈동자

그 수평선 너머 침묵하는 작은 나를 찾아 주세요

 

134310

보홀의 바닷속에 숨겨둔 안경원숭이를 찾아가세요

심장보다 더 큰 눈으로 태양을 찾아 줄게요

 

스틱스, 하이드라, 케르베로스

두 손 가득 달빛을 모아 내 검은 얼굴을 닦아내고

반딧불이 되어 당신을 향해 다가갑니다

 

궤도는 불균형, 혹독한 겨울의 땅

이탈된 낙오자는 우주를 떠돌고

어츨해진 심장은 유성우로 쏟아집니다

 

당신은 나를 버렸습니다

그러나 매년 여름이면 수만 그루의 꽃을 피울 겁니다

키 작은 해바라기로

밤하늘은 샛노랗게 물들겠지요

 

 


 

 

강수정 시인 / 싱잉볼

 

 

고산의 수행자는 사랑을 알까요

 

소녀의 살결은 히말라야 눈물을 닮았습니다

흘러내린 눈雪에 서두름을 더해서 만든 야룽강

느림을 닮은 메아리는 작은 섬 둘레를 감싸고 있습니다

 

티벳여우를 유혹한 쥐토끼의 표정에도 머리는 꼿꼿하게

그녀의 앳된 미소에는 차가운 나와 따뜻해질 네가 흘러나옵니다

 

야칭스* 언덕에 가난한 바람이 불어오고

처음 맞이하는 가부좌가 명상처럼 아침에 눈을 뜹니다

 

들꽃의 재잘거림이 흙먼지를 뚫고 큰 사원에 도착하면

삶의 끝을 감당했던 링거를 꽂은 팔뚝들이 분주히 맞이합니다

 

섬 속에 가둔 앳된 자유가 사다리를 타고 고산의 구름이 되고

검은 연기 속 폐부를 지난 흰 연기가 지구를 데우는 중입니다

 

고산의 수행자는 사랑을 할까요

 

붉은 가사를 입은 맨발의 뒤꿈치에 6월의 눈이 쌓이고

여러 해 묵혀둔 번데기의 외피가 단단해지면 자랑처럼 펼친 그녀의 날개는 하늘 가까이 날아오를 겁니다

 

* 동티베트 지역인 중국 쓰촨성 간쯔짱족자치주 바이위(白玉)현 고산지대에 조성된 티베트 닝마파 승려들의 수행처.

 

-웹진 『시인광장』 2025년 5월호 발표

 

 


 

강수정 시인

경남 삼천포에서 출생. 2025년 《애지》 신인문학상을 통해 등단. 애지문학회, 풀꽃시문학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