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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서안나 시인 / 작산 사름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6. 1. 24.
서안나 시인 / 작산 사름

서안나 시인 / 작산 사름

 

 

멍들거나 흠집 난 사과는 썩으려는 사과

칼로 깎으면 아플 부분만 남는다

 

옷장을 열다 보았다

어머니 수의 한 벌

 

작산 사름 울엄시냐* 눈시울 붉어진다

삼베같이 써넝한 어머니의 시든 손

 

상처는 미래에서 온다

그래서 사과는 붉다

 

*작산 사름이 울엄시냐: '작산 사름'은 어른이라는 말. 더 큰 사람이 어른답지 못하게 울고 있느냐.

** 써넝한: '자가운'의 제주어.

 

-《가히》 2023. 겨울호

 

 


 

 

서안나 시인 / 고구마를 삶으며

 

 

고구마를 삶다보면 제대로 익는지

젓가락으로 고구마를 쿡쿡 찔러보게 된다

나의 어머니도

열 달 동안 뱃 속에서 키워

세상에 내놓은 잎사귀도 덜 떨어진 딸년

잘 익고 있는지를

항시 쿡쿡 찔러보곤 하신다

 

밥은 잘 챙겨 먹고 다니느냐?

차 조심해라 겸손해라 감사해라

고구마 푸른 줄기처럼

휴대폰 밖으로 넝쿨 져 뻗어 나오는 어머니

 

세상에 사나운 일 벌일까 봐

40이 넘어도 설익은 딸년

마음과 영혼 병들지 말고 제대로 익으라고

핸드폰 속에서 쿡쿡 찔러보는 어머니

뜨거운 아랫목에서 뒹굴거리며

알았다고요 귀찮은 듯 대답하는

뜨뜻하게 잘 익어가는 딸년

 

-《다시올문학》 2008년 봄호

 

 


 

서안나(徐安那) 시인

1965년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박사과정 수료. 1990년 《문학과 비평》겨울호 등단. 1991년 《제주한라일보》신춘문예 소설부문 가작으로 당선. 시집 『푸른 수첩을 찢다』 『플롯 속의 그녀들』 『립스틱 발달사』 『새를 심었습니다』 『애월』 . 평론집 『현대시와 속도의 사유』. 현재 <서쪽> 동인이며 한양대 출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