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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호 시인 / 수평선
땅을 베고 하늘 보던 미륵의 돌뺨이 발그스름해지는 황혼 무렵에
와불(臥佛)이 발을 뻗은 저쪽 긴 수평선은 잔광을 번쩍거리는 큰 칼처럼 누워 있을까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 있고 우리가 사라진 뒤에 존재하는 것 수평선은 하나의 불사신의 시선이다
우리는 한계 속에 살다 무한 속에 죽을 것이다 그러면 좀 억울하지 않은가 우리는 무한을 누리다 한계 속에 죽을 것이다
최승호 시인 / 네모를 향하여
은행 계단 앞 은행나무 잎사귀들이 땡볕에 지쳐 축 늘어져 있다 이 여름 도시에선 모두들 얼마나 피곤하게 살아오고 또 죽어가는지 빌딩 입구의 늙은 수위는 의무를 다하느라 침을 흘리며 눈을 뜬 채로 자면서도 빌딩을 지키고 있다
자라나는 빌딩들의 네모난 유리 속에 갇혀 네모나는 인간의 네모난 사고 방식, 그들은 네모난 관 속에 누워서야 비로소 네모를 이해하리라
━우리들은 네모 속에 던져지는 주사위였지 주사위를 던지는 사람은 아니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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