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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도종환 시인 / 바닷바람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6. 1. 24.
도종환 시인 / 바닷바람

도종환 시인 / 바닷바람

 

바닷바람 사납게 분다

산방산 비탈이나

모슬포에 사는 나무들은

이런 날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시달린다

며칠씩 시달리다 어둠 속에서

팔 하나가 꺾이기도 한다

그러나 시달린다고 죽는 건 아니다

꺾어진다고 끝난 건 아니다

오죽하면 옛날부터 못살포라 불렀겠는가

그래도 그 바람 속에서

푸른 열매 키우고

꺾어진 가지에 새잎을 낸다

어린 잎 끌어안고 또 하루를 산다

모진 바람 속에서 연두를 키우는 것도

바람이라 여긴다

오늘도 바람 사납게 분다

​​

​-웹진 『시인광장』 2025년 11월호 신작시

 

 


 

 

도종환 시인 / 아무도 없는 별

 

 

아무도 없는 별에선

그대도 나도 살 수 없다

달맞이꽃이 피지 않는 별에선

해바라기도 함께 피어나지 않고

폭풍우와 해일이 없는 곳에선

등 푸른 물고기도 그대의 애인도

살 수 없다

때로는 화산이 터져 불줄기가

온 땅을 휩쓸고 지나고

그대를 미워하는 마음 산을 덮어도

미움과 사랑과 용서의 긴 밤이 없는 곳에선

반딧불이 한 마리도 살 수 없다

때로는 빗줄기가 마을을 다 덮고도 남았는데

어느 날은 물 한 방울 만날 수 없어

목마름으로 쓰러져도

그 물로 인해 우리가 사는 것이다

강물이 흐르지 않는 별에선

그대도 나도 살 수 없다

낙엽이 지고 산불에

산맥의 허리가 다 타들어가도

외로운 긴 밤과 기다림의 새벽이 있어서

우리가 이 별에서 사는 것이다

 

-시집 <슬픔의 뿌리>중에서

 

 


 

도종환(都鍾煥) 시인

1945년 충북 청주 출생. 충북대 국어교육학과 및 충남대학교 대학원 졸업(문학박사). 1984년《분단시대》를 통해 작품활동 시작. 시집 『두미마을에서』 『접시꽃 당신』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지금 비록 너희 곁을 떠나지만』 『당신은 누구십니까』 『사람의 마릉에 꽃이 진다』 『부드러운 직선』 『슬픔의 뿌리』 등. 산문집 『지금은 묻어둔 그리움』 『마지막 한 번을 더 용서하는 마음』 등. 1997년 제7회 민족예술상 수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국회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