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종환 시인 / 바닷바람
바닷바람 사납게 분다 산방산 비탈이나 모슬포에 사는 나무들은 이런 날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시달린다 며칠씩 시달리다 어둠 속에서 팔 하나가 꺾이기도 한다 그러나 시달린다고 죽는 건 아니다 꺾어진다고 끝난 건 아니다 오죽하면 옛날부터 못살포라 불렀겠는가 그래도 그 바람 속에서 푸른 열매 키우고 꺾어진 가지에 새잎을 낸다 어린 잎 끌어안고 또 하루를 산다 모진 바람 속에서 연두를 키우는 것도 바람이라 여긴다 오늘도 바람 사납게 분다 -웹진 『시인광장』 2025년 11월호 신작시
도종환 시인 / 아무도 없는 별
아무도 없는 별에선 그대도 나도 살 수 없다 달맞이꽃이 피지 않는 별에선 해바라기도 함께 피어나지 않고 폭풍우와 해일이 없는 곳에선 등 푸른 물고기도 그대의 애인도 살 수 없다 때로는 화산이 터져 불줄기가 온 땅을 휩쓸고 지나고 그대를 미워하는 마음 산을 덮어도 미움과 사랑과 용서의 긴 밤이 없는 곳에선 반딧불이 한 마리도 살 수 없다 때로는 빗줄기가 마을을 다 덮고도 남았는데 어느 날은 물 한 방울 만날 수 없어 목마름으로 쓰러져도 그 물로 인해 우리가 사는 것이다 강물이 흐르지 않는 별에선 그대도 나도 살 수 없다 낙엽이 지고 산불에 산맥의 허리가 다 타들어가도 외로운 긴 밤과 기다림의 새벽이 있어서 우리가 이 별에서 사는 것이다
-시집 <슬픔의 뿌리>중에서
|
'◇ 시인과 시(현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이규리 시인 / 한낮의 카페 외 1편 (0) | 2026.01.24 |
|---|---|
| 최승호 시인 / 수평선 외 1편 (0) | 2026.01.24 |
| 김분홍 시인 / 마리골드 외 1편 (0) | 2026.01.24 |
| 임호상 시인 / 민화투 외 7편 (0) | 2026.01.23 |
| 강일규 시인 / 핑계의 핑계 외 6편 (0) | 2026.01.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