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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장석남 시인 / 겨울 모과나무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6. 1. 24.
장석남 시인 / 겨울 모과나무

장석남 시인 / 겨울 모과나무

 

 

저녁에 되어 아이 데리러 시립 어린이집엘 간다

철문 기웃이 열고 마당으로 들어서서 잠시 窓에 이마 바싹 대고

어떻게 놀고 있나 內部를 들여다본다 잘 뵈지 않는다 그러다

잠시 돌아서서

마당 귀퉁이 어린 모과나무 가지들

만져보기도 한다

맨질맨질한 살갗이,

외출에서 돌아와 양말 벗으며 만지는 찬 발목

복숭아뼈께 같다

 

데리고 나온 아이 잠시 딴전피울 때

전지자국 아문

얇은 가지 사이사이 올려다보면

어린 별들 돋아

모과나무에 새로 돋는 매화 같다

가난한 집에 세든 세입자들

 

이런 이쁜 나무는

성욕 없이 平生 만날 수 있는 女子 같다

나는 잠시 내 老年을 훔쳐보고

아이 걸리어 모과나무로 걸어 들어갔다

 

'아빠 손톱달'

'그래 손톱달' 리기다 소나무잎들이 품고 있는,

'아빠 반달' 며칠 후 이런 말 하리라

 

 


 

 

장석남 시인 / 기억하지 말아야 할

 

 

그대 설움 옥수수밭.

기억하지 말아야 할 일들이 한치 더 자라 쑥덕이는.

강물 너무 쉽게 넘어오는 저녁 오랑캐.

식은 죽처럼 웃는 물의 밤.

젖은 옷을 입고 옥수수밭에 뒤척이러 들어가는 그대.

들이쉬는 숨 끝 물먹은 별.

나와 반씩 나누는 빛.

손바닥 펴 가슴 문질러 지워버릴 터이니 그대.

옥수수밭에서 나와 옥수수밭 다독여 재우고,

기억의 등뒤로 못 박아줘.

턱 빠진 기억

기억 뒤의 대못.

 

 


 

장석남(張錫南) 시인

1965년 인천시 옹진군 출생. 1986년 서울예술대 문예창작과 졸업. 인하대 대학원 국문과 석사 졸업. 인하대 대학원 국문과 박사 수료. 198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등단. 시집 『새떼들에게로의 망명』. 1992년 제11회 김수영문학상 수상. 1994년 대산문학창작지원금 수혜. 1999년 제44회 현대문학상. 2010년 제10회 미당문학상. 2012년 김달진 문학상. 2013년 대구 상화시인상. 2018년 제28회 편운문학상, 제18회 지훈상 시 부문 수상. 1993-2003년 계간 『황해문화』 창간 편집장 및 편집위원. 현재 한양여자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