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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철규 시인 / 취한 꿈
나는 꿈속에서 취했다 아니 취해서 꿈속으로 들어갔다
비틀거리는 몸으로 택시에서 내려 편의점에 들렀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혼몽한 정신으로 편의점 직원에게 담배를 달라고 했다 무표정한 얼굴 어쩌면 나를 한심하게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냉장고를 열었는데 꺼내려 했던 것을 잊어버린 사람처럼 꿈속에서 나는 잔뜩 찡그린 얼굴을 하고 있다 . 잠은 집에서 자야 한다 바깥 잠은 몸에 해롭다 내가 지금 누워 있는 곳은 집이 아닌가?
아파트 주차장 구석으로 가서 담배를 피운다 아, 담배를 줄여야 되는데, 라는 생각을 하면서 담배를 피운다 이 삶을 끝내야 하는데 계속 살아 있는 것처럼 꿈속에서 이 꿈에서 벗어나고 싶은 것처럼
눈사람 위로 눈이 내립니다 눈사람이 눈에 파묻힙니다 그냥 눈덩이가 되어버립니다
손이 시리다 두 손이 얼음 속에 박혀 있다 얼음 속에서 꺼내온 손이 있다
돌에 찍힌 젖은 발바닥 자국 너무 많이 두들긴 돌다리는 금이 가고 결국 무너진다
힘겹게 머리를 들어 눈을 가늘게 뜨고 내가 살고 있던 아파트의 19층 창문을 본다 아파트의 충수를 아래부터 세다가 헷갈려서 다시 위에서부터 센다 23층이니까 하나 둘 셋 넷 주황빛의 불이 켜져 있다 나를 기다리는 사람이 안 자고 있다 나는 담배를 길바닥에 비벼끄고서 아파트 현관으로 걸어간다 꿈에 취해서 취한 꿈 속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갈 때 온몸을 내리누르는 느낌 누군가 1톤짜리 망치를 살짝 내 머리에 대고 있는 것 같은
몸이 바닥에 붙어 있다 자석처럼
등을 떼려고 하는데 몸이 일으켜지지 않는다 발끝만 간신히 바닥에서 떨어질 뿐
캄캄한 어둠 속에 촛불을 들고 있는 얼굴이 있다 감광판처럼 주황빛으로 켜진
-계간 <문학인> (2023년 봄호)
신철규 시인 / 눈물의 중력
십자가는 높은 곳에 있고 밤은 달을 거대한 숟가락으로 파먹는다
한 사람이 엎드려서 울고 있다
눈물이 땅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막으려고 흐르는 눈물을 두 손으로 받고 있다
문득 뒤돌아보는 자의 얼굴이 하얗게 굳어갈 때 바닥 모를 슬픔이 눈부셔서 온몸이 허물어질 때
어떤 눈물은 너무 무거워서 엎드려 울 수밖에 없다 눈을 감으면 물에 불은 나무토막 하나가 눈 속을 떠다닌다
신이 그의 등에 걸터앉아 있기라도 하듯 그의 허리는 펴지지 않는다
못 박힐 손과 발을 몸안으로 말아넣고 그는 돌처럼 단단한 눈물방울이 되어간다
밤은, 달이 뿔이 될 때까지 숟가락을 멈추지 않는다
-『The JoongAng plus/시(詩)와 사색』 2023.04.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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