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재종 시인 / 화관花冠
큰아들처럼 벼슬이 높은 맨드라미꽃이다 딸내미들처럼 화사한 다알리아다 운명에 간 막내가 좋아한 자줏빛 과꽃이다 아무리 봐도 처녀 적 꿈은 매혹적인 천일홍 같다 영감 죽고 나서 애면글면 가꾸어 온 꽃길에서 망백의 할머니는 안 먹어도 배가 불러서
그 쭈그렁 신수가 활연 펴지는 웃음이다 그것이 이미 천국에 닿아 있는 웃음이다
-시집 『고요를 시청하다』에서
고재종 시인 / 낡은 벽시계
사회복지사가 비닐 친 쪽문을 열자 훅 끼치는 지린내하며 어두칙칙한 방에서 두 개의 파란 불이 눈을 쏘았다. 어둠에 익숙해지자 산발한 노인의 품에 안긴 고양이가 보이고, 노인의 게게 풀린 눈과 침을 흘리는 입에서 알 수 없는 궁시렁거림, 그 위 바람벽의 사진액자 속에서 예닐곱이나 되는 자녀 됨 직한 인총들이 노인의 무말랭이 같은 고독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사람이라면 마지막으로 모여들게 되는 그 무엇으로 되돌릴 수 없는 이 귀착점에서, 일주일에 세 번씩 고양이의 형광에 저항하며 노인의 극심한 그르렁거림을 지탱시키느라 사회복지사는 괘종시계 태엽을 다시 감는다
-시집 『고요를 시청하다』에서
|
'◇ 시인과 시(현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김도연 시인 / 쪽파의 진실 외 1편 (0) | 2026.01.28 |
|---|---|
| 정하해 시인 / 만행萬行 외 1편 (0) | 2026.01.28 |
| 박서영 시인 / 오후 산책길 외 1편 (0) | 2026.01.28 |
| 신철규 시인 / 취한 꿈 외 1편 (0) | 2026.01.27 |
| 박덕규 시인 / 지팡이 외 1편 (0) | 2026.01.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