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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도연 시인 / 쪽파의 진실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6. 1. 28.
김도연 시인 / 쪽파의 진실

김도연 시인 / 쪽파의 진실

 

 

쪽파를 다듬다가

뽀얀 속살을 보며

우리도 저런 순하고 간지러운 시절 있었지 생각했다

 

얌념을 골고루 섞어가며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위에서 아래로 아래에서 위로

굴리고 포개지며

쪽파가 파김치로 거듭나는 과정을 지켜보다가

 

너와 나의 여정도 오랫동안

쓰라리고 아파하며 저려지고 숨죽이며

여기까지 도착했구나 생각했다

 

시퍼런 숨, 죽이며

붉은 양념들 온몸에 덕지덕지 바르고

얌전히 누운 쪽파의 실체

너를 위해 오른쪽과 왼쪽 자리까지 양보했다면

서로 상처 줄 일 없었을 것을,

 

이제야 실천에 옮긴다

죽어야 살아나는 쪽파의 진실이

맵고 무섭다

 

 


 

 

김도연 시인 / 젖은 꽃잎이 다 마르기 전에

 

 

이슬방울 하나가 구르고 굴러

무사히 지상에 안착할 때까지

풀잎 하나가 기꺼이 제 몸을 낮춰주던 것처럼

나를 위해 스스로 암흑이 되어버린 그림자가 젖은 풀잎처럼

내 곁에 눕습니다

가벼운 침실에 둘은 너무 무거운데

어쩌자고 달빛은 또 이렇게 무분별하게 번져오는지

어쩌자고 봄날은

아무 대책도 없이 랄랄라 랄랄라 웃고만 있는지

눈 질끈 감고

나를 지탱하는 흔들리는 당신에게 위로도 해보지만

그래요, 그것이 나를 향한 연민이라면 이대로 폭삭

늙어가도 좋아요

주인없는 어둠을 지우며

내 속에 웅크린 나 자신을 향한 눈먼 안부쯤이야

지구 한 바퀴를 돌아온들 어때요

구차한 변명처럼 자장가를 부르던 날들이 랄랄라

늘어가겠지만

뭐, 괜찮아요!

어제의 기억은 내일도 부재중일 테니까요

젖은 풀잎이 다 마르기 전에

나 홀로

어느 먼 나라로 여행을 떠나 이슬처럼 구르고 구른다 해도

지상의 침실은

언제나

늘 그랬던 것처럼

 

 


 

김도연 시인

1968년 충남 연기에서 출생. 2012년 《시사사》를 통해 등단. 시집 『엄마를 베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