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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정하해 시인 / 만행萬行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6. 1. 28.
정하해 시인 / 만행萬行

정하해 시인 / 만행萬行

 

 

사람이라는 독소조항을 지우지 못하고

그 국경 넘을 수 있을까

 

수미단까지 극악한 오르막

 

미물과 사람 차이를 생각하다

골반에 앉아 누차 따져 보았다,눈 밑이 늪이라는 조언들로 하여

떠난 건 아니지만

 

지불할 게

마땅찮다

 

천근만근 몸을 돌아나가는 길을 해독하지 못하고

목덜미에 잠깐 쉰다

 

죽어라 걸어도 벗어날 수 없는 가죽 속의 벌레 한 마리

이리저리 치고 가는 바람의 손

 

 


 

 

정하해 시인 / 어떤 저녁의 풍경

 

 

저녁 술잔에 입술이 묻는다

다들 사람냄새가 난다

 

입을 묶은

남녀가 스마트폰을 들고, 맞은편 빌딩으로

들어간다

 

그들은 골동품 같은 말을 버린 지 오래인 듯 웃는 것마저

터치로 한다

 

맹독이다

버려진 말의 무덤

저녁 나뭇잎이 터치를 하는 소리 바람 탓만은 아닐 것이다

 

무덤 짓지 않으려고

우리는 포장마차에서 소리를 방출한다

 

너에게 가려고 손가락을 버렸다

 

-시집 <젖은 잎들을 내다버리는 시간>

 

 


 

정하해(鄭河海) 시인

1953년 경북 포항 출생. 2003년 《시안》으로 등단. 시집 『살꽃이 피다』 『깜빡』 『젖은 잎들을 내다버리는 시간』 『바닷가 오월』. 2018년 대구시인협회상 수상. 제4회 시산맥 창작기금 수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