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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서영 시인 / 오후 산책길
하얀목련꽃 어제까지 오므렸던 입 오늘은 허연 이 드러내고 활짝 웃어주니 잠시 우울하면 기분이 덩달아 상큼해진다
한걸음 또 한걸음 길섶에 앙증맞게 핀 제비 꽃 나 좀 보아 달라고 손짓하는데 투정 부리는 바람에 길 위에 떨어진 작은 꽃잎은 튀밥처럼 흩어지고
아침에 쭈욱 꽃대 내밀고 뽀로통하던 민들레 햇살한줌 품고 생글거리는 웃음에 반했던지 사랑에 빠진 벌 한 마리 헤어나질 못하네
점박이 펜지 꽃 눈 웃음에 퐁당 빠져서 어머나 널 어쩜 좋니! 너무 귀여워 꽃 앞에 쪼그리고 앉아
혼자 중얼거리다 돌아서는 발걸음 마음도 봄처럼 화사했던 오후 산책길
박서영 시인 / 울음의 탄생
나의 눈동자는 색을 바꿀 줄 안다 앵두나무가 보이는 여관집 방문을 열고 앉아 일렁이는 가로등빛 그늘을 본다 하늘이 울음을 얼려 눈을 내리는 밤이다 족발에 소주 한 병 앞에 놓고 슬픔을 애도하는 밤이다 앵두 한 알 매달지 않았는데도 저 나무는 무겁고 힘들어 눈 쌓인 앵두나무 발목이 젖어 축축해 나는 무릎을 세우고 쭈그려 앉았는데 몸에 울긋불긋 지렁이가 피었다 밖이 어둡지도 않는데 밤이라고 하지말아요 어디로 가야 할지 망설이는 사이 생각이 깊어 슬픔이 탯줄처럼 길어지는 사이 순천의 한 여관 방에서 분홍색 목젖에 울음이 매달려 흔들린다 한 호흡만 더 건너가자, 생이여 추운 앵두나무를 몸 안에 밀어 넣고 있는 환한 가로등처럼 눈이 녹아내려 드러난 앵두나무 뿌리가 족발처럼 자꾸 보여, 물어뜯고 싶어지게, 쭈그리고 앉아 발가락 열 개를 꾸욱꾸욱 눌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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