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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향숙 시인 / 온더락 효과
칵테일 레시피: 투명 글라스에 꽁꽁 언 마음, 차디찬 눈빛을 가득 채우고 신열 앓는 빗소리와 벚꽃 피는 소리로 나머지를 채운다 쇼팽과 레드제플린과 쳇베이커가 허공을 시계방향으로 휘젓는다 달콤함을 선호하는 과일 주스와 입 닿는 테두리엔 얇게 저민 봄을 장식한다 마음이 부서질 만큼 쉐이킹한
온더락 속엔 저항이 추가된다
꽃이 다 지도록 오지 않는 꽃 소식,
슬프지 않아? 나의 봄이 끝이 난다잖아
해빙 속도에 맞춰 당신을 음미하면 복숭아 리큐르와 크랜베리 자몽 향이 입안을 감돈다
봄을 믿지 않는 당신: 농익은 시간은 희석되고 내년에도 후년에도 10년 후에도 불쑥 솟구칠
봄날은 간다 -계간 『시와 세계』 2024년 여름호 발표
성향숙 시인 /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햇빛 받으면 더 빨개지는 가을이다
전화하기 전 변명을 구상하지 갑자기 사랑이 찾아왔어 목소리가 상했어 사랑은 감기 같은 거야 구차하지 않은 변명은 없다지만 산이 너무 다정해 못가겠어
단풍잎 몇 개 사진 찍어 보관함에 넣는다 상자 안에서 더 붉어질 궁리를 하겠지 붉음 이후에는 무엇이 오는지 숨죽이며 몸을 비틀다 산산이 바스러지겠지
두 팔 벌려 나무처럼 바람 냄새를 맡는다 빛을 끌어당기면 선명해질 단풍처럼 살아보겠다고 생각하니 하루 종일 붉은 말들이 쏟아졌어 계단을 오르며 단풍나무 한그루 뒤뚱뒤뚱
나를 나이게 하는 궁색한 언어들 나무를 나무이게 하는 화려한 빛살들 물질을 물질이게 하는 빛의 투영
꾹꾹 눌러 담은 비밀처럼 산이 붉어지고 있다 그곳에 가지 않아도 붉음은 자란다 나의 변명이 붉어진다
*앤드루 포터 소설
-계간 『시와 반시』 2020년 봄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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