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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란 시인 / 천사
이따금 가로등불 밑에 그림자들 두엇 지나간다
작은 속삭임 나지막이
어떤 갑작스러운 몸짓이 허공에 솟아오른다 느닷없이, 단속적으로, 그 몸짓은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그것은 절대적으로 무관하다 그것은 홀로 우주를 소환한다
몸짓 사이, 금속성의 눈빛, 잠깐 번쩍인다 독립적인, 자기 안으로 되돌아가 통합되는, 다치게 하지 않는, 어떤 사나운 아름다움
그리곤 다시 고요
난 당신을 기다린다 라고 생각한다, 그리곤 기다린다
난 이제 距離가, 어긋남이 고통스럽게 느껴지지 않는다 세계를 가득 채우고 있는 낮은 낮은 비명소리도
내 생은 고비를 넘겼다
距離 위로 천사들이 옷자락을 쓸며 지나간다
내가 울었던가? 아마 천년쯤 전에
천사들이 내 눈물을 가져갔다 기다림 안에서 내가 한없이 자유로워지도록
난 가만히 있다 다만 가만히 있다 때로 시간의 힘줄이 만져진다
김정란 시인 / 잔혹한 외출
바다 해가 졌다 저녁내 흔들리는 모랫벌
대낮은 편안한, 규정된 부피를 부정하는 칼처럼 달이 뜨고
바람이 잔잔히 불기 시작한다
살이 저며지고 있다 아니, 오해 마시기를 이건 부패가 아니다, 싱싱하고 생생한 선혈이 뚝뚝 떨어지는 신선한 살의 이별 결 따라 완벽하게 저며져 뼈를 떠나는 삶
희디흰 뼈 눈부시게 드러나고 바람과 바람의 결 사이에 촘촘히 박혀 있던 잊혀진, 강렬한 말들이 핏줄 위에서 널을 뛰기 시작한다
잔혹한 외출
최소한의 삶으로 버티던 여자 하나, 모랫벌을 달려가 시퍼런 바닷물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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