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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이길옥 시인 / 시인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6. 1. 27.
이길옥 시인 / 시인

이길옥 시인 / 시인

 

 

내 열한 살 적 추억을 데리고 고향을 찾았다.

고무신 닳던 돌담 골목 휘어진 모퉁이를 더듬어

어린 혼을 감춰뒀던 구석을 뒤져보니 없다.

누가 훔쳐간 건 아닌데 보이질 않는다.

기억을 들춰보니 여기가 분명한데, 틀림없는데

그래, 그때는 돌담이었다. 돌담이어서

돌과 돌이 맞물린 틈을 세내어

꿈으로 가득 찬 유년의 얼을 차곡차곡 쟁이며 즐겼는데

그 담의 돌을 빼내 틈을 헐고 내 넋을 몰아낸 뒤

밋밋한 시멘트블록을 세워 골목을 부숴놓고

수시로 넘어 들던 이웃의 관심까지 뽑아내고 없다.

망가진 기분을 달래고 나서

내가 나고 자란 낯선 고향의 가슴을 파고드니

돌담을 타고 오르던 담쟁이 대신

벽돌담을 감싼 넝쿨장미가 예리한 가시로

한낮의 따가운 햇살을 찔러 붉은 피를 수혈하고 있다.

오싹한 두려움이 각진 골목에 고여 있다가 발목을 잡고

혼곤히 고여 있던 적막이 떼거리로 몰려들어 나를 감싼다.

아이들 웃음소리

할아버지 호령에 쫓겨 주눅이 들던

그래도 정이 불끈 솟아 원기 왕성하던 고향이 골목에

죽음의 그림자 하나 맥없이 고개를 떨구고 지나간다.

수다로 발정 나던 입이 수행 중이다.

폐가의 수가 늘고

으스스한 한기가 출렁 골목을 장악하고 발길을 거부한다.

한때 흥청거렸던 벗들의 장난질을 다시 덮고

이야기 붙일 이 없는 고샅을 부산히 벗어나

마을 어귀에서 잠깐 숨을 돌리다

맞아주는 이 없는 고향을 등지고

그냥 왔다.

 

 


 

 

이길옥 시인 / 성질 죽이기

 

 

흔히 보는 일이다.

 

후미진 골목에서

중학생 두 녀석이

만나게 나누어 피우는 담배에

벌겋게 타오르는 노여움

 

흔히 겪는 일이다.

 

백주에

그것도 대로의 정류장에서

고등학생 둘의 앳띤 사랑놀이

 

입술 맞대고

어설프게 빨아대는 철면피

 

저걸, 저걸.

그냥

 

아, 참자.

 

올렸던 손을 내리고

부릅떴던 눈을 찔끔 감는다.

 

 


 

이길옥 시인(돌샘)

1949년 전남 진도 출생. 광주교육대학(국어전공). 1973년 통일생활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 2006년 자유문예 시 부문 신인상. 교직 40년 퇴직(홍조근정훈장). 2007년 한국문학정신 광주 비엔날레 시화전 대상. 2008년 만다라 문학 신인상. 2008년 대한 문학세계 신인상 . 2009년 서정문학 시 부문 신인상. 2009년 월간 문학세계 신인상. 광주광역시 문인협회 회원. 광주 시인협회 회원. 대한문인협회 정회원. 시집 <하늘에서 온 편지> <물도 운다> <出漁>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