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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강미정 시인 / 햇빛구경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6. 1. 27.
강미정 시인 / 햇빛구경

강미정 시인 / 햇빛구경

 

 

올해 새로 돋은 저 눈부신 햇빛,

맨발로 뛰쳐나온 그 여자 울던 자리에

폴짝폴짝 깨금발로 뛰어온 아이 꼬옥 안고

한참을 그렇게 서있던 그 자리에

새로 돋은 연초록 나뭇잎 사이로

포롱 포르롱 내려와 연신 꽁지깃을 까딱거리네

아이 손잡고 들어간 저 맨발의 여자도

올해 새로 돋은 아픔을 걷는 것이리

우우우 그 여자 울부짖음처럼

수만 갈래 바람으로 날려 가는 꽃잎

햇빛의 발걸음으로 땅을 밟고 가는 저 몸짓들!

나에게도 올해 새로 돋은 아픔이 있어

이토록 뜨겁게 몸 앓고 있는가

파르르 잘게 떨고있는 연초록빛 눈부신 그림자로

내 얼굴 위를 걸어가는 햇빛,

그 여자의 맨발이 놓여졌던 환한 자리에서

아린다는 말, 알 것도 같네

너무 밝아 속살 아린다는 말

수만갈래로 갈라지며 부딪히며 내게로 왔던

올해 새로 돋은 저 눈부신 햇빛,

 

 


 

 

강미정 시인 / 침묵을 버리다

 

 

난 폭풍우 몰아치는 바다가 좋더라

욕설 같은 바람이 얇은 옷을 벗기려고 안간힘을 쓰는

그 앞쪽은 젖은 옷처럼 찰싹 붙고 그 뒤쪽은 불룩하게 헐렁한,

마음이 바람의 날을 벼리고 있잖아

절규하며 날뛰는 힘을 견디며 파랗고 날 샌 노래를 부르잖아

봐, 깊게 사랑했던 마음이 들끓을 때

당신은 울음소리에 몰두할 수 있지

당신이기에 어느 한 가슴이 가장 먼저 울 수도 있지

내가 알았던 세상의 모든 길을 지우고

다시 당신이라고 불렀던 사람이여,

저기 망망대해를 펼쳐두고 출렁임을 그치지 않는

당신의 침묵이 폭풍우가 되는 바다가 참 좋더라

폭풍우에 스민 울음소리가 들리잖아

나를 부르는 웃음소리가 들리잖아

마음이 바람의 날을 세워 밀며 밀리며 견디는

저 애증의 극단 중간에 침묵을 두고

세상이 되고 길이 되었던 당신이 가슴으로 와서

폭풍이 될 때 나는 휘몰아치는 바다가 좋더라

 

—《문학마당》 2009년 여름호

 

 


 

강미정 시인

1962년 경남 김해 출생. 1994년 《시문학》에 〈어머님의 품〉외 4편으로 우수작품상 등단. 시집  『상처가 스민다는 것 』 『타오르는 생』 『그 사이에 대해 생각할 때』 등. 현재 <빈터> 동인, (사)한국작가회의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