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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령 시인 / 기일 즈음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6. 2. 10.
김령 시인 / 기일 즈음

김령 시인 / 기일 즈음

 

 

꿈속에서도 마음에 들지 않아

타임 슬립처럼 자꾸 결말을 바꾸어 꾼다

꿈의 끝마다 아프고 아프다

 

아스팔트에 몸을 뉘던 꽃잎

살짝 뒤채어 풀숲에 내려앉듯, 그날

퇴근길 찍혔던 부재중 전화를 받았다면

너는 삶 쪽에 안착했을까

 

감잎 아래서 야무진 꿈을 말하던

넌 소읍의 성공한 동창이었지

 

홀어머니의 육남매 중 막내

대도시로 유학 온 열일곱 살

영양실조로 쓰러지기도 했었지

 

일주일간 한마디도 않던 때가 있었다고

삼십 년이 지나서야 털어 놓았지

 

아내와의 지나간 불화를 얘기할 때도

누구나 한 두 개쯤 간직한

생존의 흉터라고 믿었지

 

어떤 상처들이 영원히 아물지 못하는 걸까

 

사월은 바람도 아래서부터 일어

여린 감나무 잎, 하늘 향해 살짝 팔을 쳐든다

 

그 곳에서 평안하니?

 

지는 꽃잎에 편지 보내기엔

참 멀구나, 너 있는 곳

 

 


 

 

김령 시인 / 가볍고 가벼운

 

 

새벽 안개 속

화섬댁 리어카 끌고 물질 나선다

숨을 참고 병과 박스를 건져 올린다

오래 머문 곳은 어디나 집이 되어서

빈 병은 자꾸 손을 뿌리치고

박스는 바닥에 납작 엎드린다

그녀의 생에서 빠져나간 이름들

가만가만 온기 보태어 묶으면

주름진 손고랑을 채우는 바람

 

등대이던 아들 따라 뭍으로 온 화섬댁

숨비 소리 같은 아들 떠나고

리어카는 온기를 잃었다

인적 끊긴 해거름녘

골목길 깡통에 세든 노을

대문을 기웃거린다

 

그녀 마른 기침으로 물질 나간 날

바다 한 가운데 갇혔다

조금 더 가면 저기 부표인데

화섬댁 하늘로 날아오르고

바닥엔 흰 새 한 마리

한 호흡만 참았다면, 그녀

그리던 섬에 닿았을까

 

물결이 모래 그림 지우듯

바퀴는 새의 날개를 넘나든다

잠시 드러났던 바닥

다시 밀물 차오른다

 

그리운 꽃섬

그녀, 도착했을까

 

 


 

김령 시인

전남 고흥에서 출생. 2014년 토지문학제 평사리 문학대상 시부문 당선. 2017년 『시와 경계』 신인상 당선. 시집 『어떤 돌은 밤에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