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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령 시인 / 기일 즈음
꿈속에서도 마음에 들지 않아 타임 슬립처럼 자꾸 결말을 바꾸어 꾼다 꿈의 끝마다 아프고 아프다
아스팔트에 몸을 뉘던 꽃잎 살짝 뒤채어 풀숲에 내려앉듯, 그날 퇴근길 찍혔던 부재중 전화를 받았다면 너는 삶 쪽에 안착했을까
감잎 아래서 야무진 꿈을 말하던 넌 소읍의 성공한 동창이었지
홀어머니의 육남매 중 막내 대도시로 유학 온 열일곱 살 영양실조로 쓰러지기도 했었지
일주일간 한마디도 않던 때가 있었다고 삼십 년이 지나서야 털어 놓았지
아내와의 지나간 불화를 얘기할 때도 누구나 한 두 개쯤 간직한 생존의 흉터라고 믿었지
어떤 상처들이 영원히 아물지 못하는 걸까
사월은 바람도 아래서부터 일어 여린 감나무 잎, 하늘 향해 살짝 팔을 쳐든다
그 곳에서 평안하니?
지는 꽃잎에 편지 보내기엔 참 멀구나, 너 있는 곳
김령 시인 / 가볍고 가벼운
새벽 안개 속 화섬댁 리어카 끌고 물질 나선다 숨을 참고 병과 박스를 건져 올린다 오래 머문 곳은 어디나 집이 되어서 빈 병은 자꾸 손을 뿌리치고 박스는 바닥에 납작 엎드린다 그녀의 생에서 빠져나간 이름들 가만가만 온기 보태어 묶으면 주름진 손고랑을 채우는 바람
등대이던 아들 따라 뭍으로 온 화섬댁 숨비 소리 같은 아들 떠나고 리어카는 온기를 잃었다 인적 끊긴 해거름녘 골목길 깡통에 세든 노을 대문을 기웃거린다
그녀 마른 기침으로 물질 나간 날 바다 한 가운데 갇혔다 조금 더 가면 저기 부표인데 화섬댁 하늘로 날아오르고 바닥엔 흰 새 한 마리 한 호흡만 참았다면, 그녀 그리던 섬에 닿았을까
물결이 모래 그림 지우듯 바퀴는 새의 날개를 넘나든다 잠시 드러났던 바닥 다시 밀물 차오른다
그리운 꽃섬 그녀, 도착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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