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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원 시인 / 귀 무덤
거기 갈 때는 꽃 말고 소리를 가져가야 하니까 나는 기웃거렸다 가장 늦게 시들 소리를 찾아
풀숲에서 유리 조각을 주웠을 때 단박에 알았지 이건 소리의 둔갑 묵음처럼 투명했지만 빛이 떠들썩했다
주머니 속에 넣고 걷는 동안에도 조각은 정체를 드러내지 않았지만 발치에서 새들은 놀라 흩어졌고 몇몇은 창문을 닫았다
마침내 묘지가 눈앞에 나타났을 때 사람이라면 그저 반가운 묘지기가 멀리서부터 외쳤지 어이 나도 뭉개진 손을 흔들었다 어이 이거라면 오래 살아남겠네 정말 그렇게 믿었다
한정원 시인 / 나뭇잎 사이로 햇살
그림자와 그림자가 겹쳐지면 더 어두워지는가 너는 가로등 불빛 앞에서 나의 등을 안았다가 풀었다가 안았다
그림자 위에 그림자가 얹어질 때 우리의 우울과 우울이 맞닿을 때 그림자는 더 무거운 색으로 번지는 걸까 강변을 달리는 눈발 고장 난 와이퍼 한 쪽의 기억 빌딩과 보도블록이 무너지고 노래는 어제처럼 그림자보다 햇살을, 가사는 현실보다 슬픔 쪽을 지향한다
나뭇잎 사이로 햇빛이 그날의 날씨를 풀어놓으면 눈을 가만히 감거나 찡그리거나 인중에 손가락을 얹고 조용한 하루가 지나간다 나뭇잎과 먼지가 포개지고 가을과 겨울이 등을 맞대면 우울을 피해 창문에 걸터앉는 자외선 자락
양치를 하는 아침, 저녁 너의 월요일에서 토요일까지를 구성하면 우리의 하루는 더 진한 활자로 인쇄될까
그림자를 만들며 너는 가로등 앞에 서있다 트럭 안에서 흐르는 낡은 재즈 연도는 너를 따라가며 춤출 것이다 눈물 고인 얼굴과 얼굴이 마주하면 슬픔은 더 큰소리로 흘러내리는가
그림자위에 그림자가 겹쳐지면 더 진한 빛깔이 될까
-계간 「시인세계」 2025년 여름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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