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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백겸 시인 / 감사의견서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6. 2. 17.
김백겸 시인 / 감사의견서

김백겸 시인 / 감사의견서

 

 

네가 관심을 보냈기에

나도 관심을 보내 거래를 했지

그 서로의 관심이 내 사랑의 자본을 초과하는 가격인줄 모르고

계좌에서 지출한 액수만큼의 진실이

네가 보낸 계약서의 그 정중한 장정에

숨어 있다고 믿고

 

황혼이 커튼처럼 내려진 조용한 시간에

우편배달부가 오토바이를 타고 와서 감사의견서를 전했네

황도를 지나가는 宿命星들이 붉은 글씨로 적은

파산선고 의견을

죽음인줄 모르고 거래를 했던 태양아래서의 기쁨에 대해

 

 


 

 

김백겸 시인 / 죽음의 연인

 

 

죽음이 등뒤로 하이에나처럼 다가온 살의를 보아야 하는데

왼쪽 어깨로 목이 돌아가지 않는다

하루종일 고개를 구부리고 쳐다 본 서류의 글씨 때문에

목을 세워 쳐다본 보고자료 도표 때문에

 

죽음이 등뒤로 비단구렁이로 기어온 눈빛을 보아야 하는데

 

심장에 숨겨둔 칼이 뽑아지지 않는다

사람들하고 악수하느라 무디어진 손바닥 감각 때문에

거래에 서명하느라 잉크자국이 묻은 文化 때문에

 

죽음이 등뒤로 보라매처럼 날아온 동작을 보아야 하는데

 

재빠르게 도망가야하는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숨막히는 숲과 강의 아름다운 풍경 때문에

손만 내밀면 금방 내 소유가 될 것 같은 사랑의 환상 때문에

 

죽음이 내 영원한 연인이었음을 진작 눈치챘어야 하는데

 

 


 

김백겸 시인

1953년 대전에서 출생. 충남대학교 경영학과와 경영대학원 졸업. 1983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기상예보〉가 당선되어 등단. 시집 『비를 주제로한 서정별곡』 『가슴에 앉힌 산 하나』 『북소리』 『비밀 방』 『비밀정원』 『기호의 고고학』 등. 시론집 『시적 환상과 표현의 불꽃에 갇힌 시와 시인들』 『시를 읽는 천개의 스펙트럼』 『시의 시뮬라크르와 실재(實在)라는 광원(光源)』 등. 웹진 『시인광장』 主幹 역임. 현재 〈시힘〉, 〈화요문학〉동인. 대전시인협회상, 충남시인협회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