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곽재구 시인 / 나와 나
평생 떠돌이로 살고 싶었죠 국경이나 설산 대인지뢰와 같은 단어들이 좋았죠 매일 밤 같은 꿈을 꾸었죠 보라색 밤하늘 아래 설산이 있고 설산 그림자 담긴 호수 위로 두 반딧불이 날아가요 사랑이나 꿈 시 같은 단어들은 커피 한 잔보다 시시해요 언젠가 당신이 내게 왜 같은 꿈을 꾸는가 물었죠 그 일보다 사랑스런 일이 없으니까, 라고 대답했죠 당신은 매일 밤 다른 꿈을 꾼다고 말했죠 손풍금 라벤더 향기 서커스 수수부꾸미 국경 같은 단어들을 좋아한다고 했죠 우리가 함께 국경이라는 단어를 좋아하는 줄 처음 알았죠 어느 날은 당신이 내 안에서 방금 쓴 시를 읽기도 하고 어느 날은 내 안에서 당신이 손풍금을 연주하기도 했죠 우린 둘이며 하나이고 하나이며 둘이에요 우리 안에 만지면 사라지는 국경이 있는 셈이죠 이 국경이 있는 한 우리는 영원해요 당신을 많이 미워하고 그보다 많이 사랑했지요 보라색 밤하늘 아래 두 반딧불이 날아가요 호수의 설산 그림자가 살며시 포개져 하나가 돼요
곽재구 시인 / 대못이 박힌 자리
사내가 망치로 대못을 박았다
못은 제 온몸을 나무 깊숙이 투입하였으므로 나무와 못은 서로 행복하였다
세월이 흘러 못은 붉게 물들어 바스러지고 나무의 등에 빈 구멍 하나가 남았다
늙은 사내가 빈 구멍에 망치로 새못을 박았다
나무는 제 몸 안에 남은 붉은 녹 몇개를 떨구고는 고요히 구멍과 함께 부서졌다
-시집 <꽃으로 엮은 방패>에서
|
'◇ 시인과 시(현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김학중 시인 / 물고기 텍스트 외 1편 (0) | 2026.02.19 |
|---|---|
| 강은교 시인 / 저물녘의 노래 외 1편 (0) | 2026.02.18 |
| 이영광 시인 / 소리지옥 외 1편 (0) | 2026.02.18 |
| 박남희 시인 / 나팔꽃의 경계 외 1편 (0) | 2026.02.18 |
| 김선우 시인 / 고비의 당신 외 1편 (0) | 2026.02.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