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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이승예 시인 / 물의 아파트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6. 2. 21.
이승예 시인 / 물의 아파트

이승예 시인 / 물의 아파트

 

수면의 표정이 보이지 않는 집

벨을 누른다

문 앞에 포개져 있는

방금 밀려온 물결

금세 알아차렸다

저것은 문에서 빠져나온 견고한

연골이다

문을 여는 일과

물길을 여는 일 사이에 가시가 돋아

물처럼 피가 흐르는 쪽을 본다

저 문은 결코

둥글어지지 않을 테지만

벽이 아닌 사실을 현재와

바꿀 수 없다

소리가 네모난 밤이 될 때까지

두들길까

안이 되어서는 발견하지 못할

손 바깥의

습진

누군가

어깨를 돌려세운다

두드리면 열릴 것이라고 믿는 것은

물의 착각이지만

완고한 벽도

수면처럼 흔들릴 때가 있다

퇴근한 사람들 물길을 열면

열리면서 닫히는 문은

말랑말랑하게 완성한

물의 문법

 

 


 

 

이승예 시인 / The라면. 27

- 내일은 여백

 

 

손바닥에 사과나무 한 그루 산다

가지를 손금처럼 뻗치고 사과 꽃 피운다

이파리마다 한 생을 들이느라 풋사과 꽃

시다

 

허공에 기둥을 세운 거미는 사과나무와 허공을 이어

손금 같은 집을 짓는다

여백에 뜬구름의 생을 채우느라 느리다

느린 것은 여백의 소유다

 

사과나무는 스스로 지어 가지 않는 건축물

가지는 왠지 늘

the라면의 방향으로 뻗어 가고

고독을 지독하게 옭아맨 손금은

내일을 열어 보이지 않는다

 

손금의 기원을 해독하는 일은

거미의 공식으로 줄을 긋는 일을 이해하지 않는 일

더라면의

반복

 

거미줄에서 사과꽃 냄새가 난다

손을 오므린다

깊어지느라 손바닥이 가렵다

 

 


 

이승예 시인

1963년 전남 순천 출생. 2015년 계간 <발견> 봄호로 등단. 시집 『나이스 데이』, 『언제 밥이나 한 번 먹어요』. 2020 문학 나눔 선정. 제5회 김광협문학상 수상. 선경상상인문학상 운영위원장. 현재 계간 <발견>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