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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수옥 시인 / 선물
너는 낙후된 분홍이고 나는 익명의 보라다
다른 이들은 시뻘건 착란 속에 꽂혀 있다
네게서 바람과 들판이 시드는 걸 보며 나는 흔들리는 밑줄로 서 있다
축하해
한 다발의 잘린 발목들을 안겨주며 너는 웃는다
고마워
안개처럼 살포되는 백색공포에 나는 둘러싸인다
-시집 『덮어놓고 웃었다』(여우난골) 중에서
채수옥 시인 / 밖으로, 눈사람
투명한 발바닥을 접어 넣고 등을 토닥이며
너도 사람이니 사람이라면 어떻게 그럴 수 있니
질문들만 녹아내리는데
허공을 떠돌다 도착한 너는
밖으로 밖으로 집도 가족도 없는 사람처럼
벌판에 버려두지 않겠다는 뜨거운 말에 얼굴이 흘러내리는
흰빛
쏟아지는 흰빛의 무게로 머리통이 굴러떨어져도
열면 닫을 수 없고 닫으면 열 수 없는
문처럼
대책 없이 문밖에 서서
차가운 눈빛의 이방인이 되어버린 너는
벽난로 앞에 나란히 앉아 가만히 안아볼 수도 없는
안이라는 세계와 무관해 보이는
하얀 피부 속에 냉소적인 웃음만 켜켜이 쌓이는
그러고도 니가 사람새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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