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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서 시인 / 절대적 순간 찢어진 우산이 뒤집힌 날 벗겨진 마스크는 테트라포드 사이를 미끄덩 우뚝한 파도가 드나드는 교합 틈바구니에서 물미역이 휘돈다 벗겨지고 찢겨진 것들의 임시 정박처 방파제 끝 다홍빛 등대와 반투명 레인코트 거센 포말을 따라 떠도는 검정 비닐 이마트 24시 간판은 노랗게 버티고 목련색 파라솔은 자궁처럼 펼쳐졌다 접힌다 젖은 모래 위로 빨간 물회 한 사발이 엎질러진다 파도는 플라스틱 그릇을 순식간에 데려간다 긴 머리 남자는 해안을 서성이다 포말에 젖고 짧은 머리 여자는 해안선 나무데크를 미친 듯 쫓는다 크고 작은 반투명 해파리가 배란처럼 밀려든다 해안도로는 저 혼자 하얗게 달리고 리모델링한 kt 연수원 외벽은 포말처럼 퉁겨진다 불 꺼진 세탁소 유리문에서 회전하는 흰 셔츠의 눈동자는 해안선 나무데크를 밤새도록 응시한다 수선된 것은 없었다 꿰매지지 않는 바다, 접힌 파도 피를 흘리지 않는 포말은 생리대를 삼킨 채 웃었다 '시가 뭔가요?’ '되는대로 살다가 만난, 당신입니다 -계간 『시산맥』 2025년 여름호 발표
정윤서 시인 / 아르테미스를 만난 밤
울울울 북한산 구름정원이 울고 있을 때 상아빛 저택 흰 옷자락이 달빛을 스친다.
울울울 백화사 들머리, 봉숭아도 울고 채송화도 울었다.
산돼지 일가족은 은빛 송곳니를 버린 채 말라붙은 연못을 파헤친다.
오백 년 느티나무 아래 차를 멈춘다. 짙은 앞 유리 너머로 삼나무 숲 같은 머리칼이 일렁인다.
은 화살을 등허리에 맨 그녀는 포옹하듯 나를 통과해 아무 말 없이 구름 정원으로 사라진다.
울울울 사슴 가죽 시트 위 나는 산짐승이 되어 밤새 울고 있다. -웹진 『님』 2026년 1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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