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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정윤서 시인 / 절대적 순간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6. 2. 21.
정윤서 시인 / 절대적 순간

정윤서 시인 / 절대적 순간

찢어진 우산이 뒤집힌 날

벗겨진 마스크는 테트라포드 사이를 미끄덩

우뚝한 파도가 드나드는 교합 틈바구니에서

물미역이 휘돈다

벗겨지고 찢겨진 것들의 임시 정박처

방파제 끝 다홍빛 등대와 반투명 레인코트

거센 포말을 따라 떠도는 검정 비닐

이마트 24시 간판은 노랗게 버티고

목련색 파라솔은 자궁처럼 펼쳐졌다 접힌다

젖은 모래 위로 빨간 물회 한 사발이 엎질러진다

파도는 플라스틱 그릇을 순식간에 데려간다

긴 머리 남자는 해안을 서성이다 포말에 젖고

짧은 머리 여자는 해안선 나무데크를 미친 듯 쫓는다

크고 작은 반투명 해파리가 배란처럼 밀려든다

해안도로는 저 혼자 하얗게 달리고

리모델링한 kt 연수원 외벽은 포말처럼 퉁겨진다

불 꺼진 세탁소 유리문에서 회전하는 흰 셔츠의 눈동자는

해안선 나무데크를 밤새도록 응시한다

수선된 것은 없었다

꿰매지지 않는 바다, 접힌 파도

피를 흘리지 않는 포말은 생리대를 삼킨 채 웃었다

'시가 뭔가요?’

'되는대로 살다가 만난, 당신입니다

​​

-계간 『시산맥』 2025년 여름호 발표


 

 

정윤서 시인 / 아르테미스를 만난 밤

 

 

울울울

북한산 구름정원이 울고 있을 때

상아빛 저택 흰 옷자락이

달빛을 스친다.

 

울울울

백화사 들머리,

봉숭아도 울고 채송화도 울었다.

 

산돼지 일가족은

은빛 송곳니를 버린 채

말라붙은 연못을

파헤친다.

 

오백 년 느티나무 아래

차를 멈춘다.

짙은 앞 유리 너머로

삼나무 숲 같은 머리칼이

일렁인다.

 

은 화살을 등허리에 맨 그녀는

포옹하듯 나를 통과해

아무 말 없이

구름 정원으로 사라진다.

 

울울울

사슴 가죽 시트 위

나는 산짐승이 되어

밤새 울고 있다.

​-웹진 『님』 2026년 1월호 발표

 

 


 

정윤서 시인

1973년 경기도 여주 출생.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법학과 졸업.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석사과정 수료. 2020년 《미네르바》 등단. 현재 한국작가회의 회원, 한국시인협회 회원. 웹진 『시인광장』 편집위원으로 활동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