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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륭 시인 / 개는 모름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6. 2. 21.
김륭 시인 / 개는 모름

김륭 시인 / 개는 모름

 

 

어떤 날은 베개가

침대를 내려와 개처럼

짖는다.

 

내가 모르는 아주 먼 곳에서 자꾸

아는 이야기가 찾아온다는 듯

 

개 옆에는 개, 달 옆에는 달

그러나 개는 달처럼 반으로 접을 수 없고

낮보다 밤이 먼저여서

 

개의 발을 가만히 묶어놓는 빗소리

베개 대신 침대 위로 기어올라

자라기 시작한다.

 

괭이밥처럼, 좋다. 누워, 라고

노란 목소리 같은 걸 꺼내 내가 나에게

괜히 겁주지 않아도 되는

침대

 

풀밭에서 시들어가는

여자의 품속에서 발꿈치를 든

아기 꿈을 꿨다.

 

아직 오지도 않은 죽음이

속으로 하는 말을 들었다는 듯

뼈다귀를 핥아주는

침대

 

어떤 가난은 개를 참 많이 키운다.

 

개에게 물리지 않기 위해

목이 긴 장화를 신고, 가만히

여긴 어디쯤일까?

 

밤을 홀딱 벗겨놓은

침대가 타자기를 두드리기

시작한다.

 

 


 

 

김륭 시인 / 부리가 샛노란 말똥가리 두어 마리 데리고

 

 

 내일의 날씨가 우산을 들고 뛰어올 때까지

 빗소리를 심었다 화분 가득

 

 끓는다. 아직 태어나지 못한 말이 있어서, 누구십니까? 나는, 내가 만들지 않은 사람 나는, 끝이 난 다음에 시작되는 이야기 나는, 시작되지도 않고 끝이 나는 이야기 나는, 빗방울처럼 움켜쥔 배꼽으로 세상을 내려쳐보는 이야기여서, 그렇습니다 안녕하십니까?

 

 마음은 찢어지는 게 찢어지지 않는 것보다 낫다*

 

 천변 어딘가에 그림자를 숨긴 새들은 인간의 노래에서 도망 나온 글자들을 쪼아댔다

 

 벌레보다 못한 말, 서서 잘 수 없는 말로 꿴 책이라니

 

 엄마, 엄마는 왜 벌써부터

 누워있는 거야

 

 부리가 샛노란 말똥가리 두어 마리 데리고

 죽은 듯 가만히 누워서 저 세상에서 이 세상으로 떠내려오거나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떠내려가다 보면

 

 내가 가진 내 얼굴을 울어줄 수 있는 말이 없었다니

 

 그래서 갑니다 이젠 있어도 그만이고 없어도 그만인 당신에게

 이번엔 엄마라고 불렀으니까 다음번엔 자기라고 불러도 될까, 하고

 벚꽃고양이처럼 한쪽 귀 접어서

 

 마지막 햇볕을 쬐는 듯 오늘의 기분이 우산을 들고

 내일로 뛰어가 두 번 다시 오지 말라고, 나는

 나 없어도 울지 마, 라는 책에 몸을

 비끄러매는 것이다

 

* 메리 올리버.

 

 


 

김륭 시인

1961년 경남 진주 출생. 본명: 김영건. 2007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2007년 《강원일보》 신춘문예 동시 당선. 시집 『살구나무에 살구비누 열리고』 『원숭이의 원숭이』 『애인에게 줬다가 뺏은 시』. 동시집 『프라이팬을 타고 가는 도둑고양이』 『삐뽀삐뽀 눈물이 달려온다』 『별에 다녀오겠습니다』 『엄마의 법칙』. 2013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수혜. 2013년 제2회 문학동네 동시문학상 대상. 제9회 지리산문학상, 제30회 경남아동문학상, 제5회 동주문학상 수상 . 웹진 『시인광장』 편집장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