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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문현숙 시인 / 단골집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6. 2. 28.
문현숙 시인 / 단골집

문현숙 시인 / 단골집

 

 

 노을이 붉은 신호등을 켰다 한 집 건너 한 집 빼곡하게 들어앉은 가게마다 흔들리는 불빛, 골목과 골목 저 건너 전신주 아래 한자리에서 몇십 년 성황당 처럼 앉아있는 단골 가게, 간판 한 번 바꾼 일 없는 찾는 물건이 없을 때가 더 잦은 좁아터진 점방, 시장가는 발을 멈추게 한 것은 봄 여름 가을 겨울, 철마다 다른 모습의 푸성귀들, 젊은 부부, 그들의 부모님이 손수 심고 다독이며 농사지은 햇양파, 햇감자, 햇고추, 곶감, 한여름 머리 위 땡볕을 고스란히 제 안에 품은 햇것들

 

 얼마 전,

 태양초를 달라는 말에 부부는

 - 미안합니다. 어머님이 연로해서 더는 농사를 지을 수가 없네요...

 점방을 닫아야 할 것 같다고 한다

 

 없는 것을 떠올리는 대신 이미 가진 것을 잃는 일

 더 좋은 일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더 나쁜 일이 안 생기는 것

 손쉽게 행복을 얻는 공식이다

 

 지금, 당신의 단골집은 안녕하신가요?

 

 


 

 

문현숙 시인 / 배추흰나비의 비행

-내일로*

 

 

슬픔을 억누르며 찬찬히 걸어오는 말

겨우내, 움츠렸던 가지는 어딜 향해 달려갑니까

청해진 궤도에 순응할수록

넓은 들판이 유순해집니다

 

황홀한 진입을 꿈꾸었는데 울컥,

거친 호흡을 내쉬며 고개를 넘어갑니다

 

더 빨리, 좀 더 빨리

내릴 곳을 놓아버린 우린,

간이역을 벗어나

가끔, 청춘의 건널목 표지판을 지나치듯

저마다의 적정속도를 찾아 헤매기도 합니다

 

깊은 우물에 빠져,

아직은 동면에 든 애벌레

곧, 초록의 허공을 비행할 봄의 배추흰나비

 

안부를 담은 전언은

다음 역에 잘 도착하겠지요

 

정차와 연착을 견뎌낸,길고 긴 시간의 정거장

깊은 동굴에 매달린 일상을 뒤로하고

 

동해안을 가로지르는 내일로에 오를

또 다른 내일들,

다음 정거장은 봄날역입니다

 

*내일로 티켓

 

 


 

문현숙 시인

경북 대구 출생. 2018년 《월간문학》으로 등단. 제39회 방송대문학상 대상 수상.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 장려상 수상. 현재 대구신문「달구벌 아침」집필 중. 볼륨동인. 시집 『코로나 블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