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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가톨릭 산책

[성서의 세계 - 구약] 다니엘 : 이방인들을 위한 예언자

by 파스칼바이런 2010. 3. 20.

 

[성서의 세계 - 구약] 다니엘 : 이방인들을 위한 예언자

- 다마수스 빈첸 -

 

에제키엘은 이스라엘의 패배와 유배에 대한 하느님의 뜻을 보여 주기 위하여 이스라엘 가문의 후손들에게 파견되었다.

그의 예언과 환시는 성전의 파괴와 선택받은 백성들의 이산이 이스라엘의 영신적 재생을 도모하시는 하느님의 길일뿐만 아니라 한분이신 참 하느님께로 돌아서는 모든 민족들의 회개를 준비하는 길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 주고 있다.

이스라엘의 유배는 하느님께서 이방인들의 회두를 위한 길을 닦고자 하신 것이었다.

유다인들은 이교도의 암흑세계에 진정한 신앙의 빛을 밝혀야 했다.

이교도들에게 이스라엘의 하느님의 위엄을 증거 하는 이 과업을 이행한 예언자가 바로 다니엘이었다.

그는 네 살 박이 아이였을 때 바빌론에 왔다.

하지만 그는 조상들의 신앙에 절대 충성하여, 결코 대제국의 문명이나 생활에 깊이 빠져 들지 않았다.

그는 느부갓네살과 그 후계자들의 왕궁에서 일을 보는 관리가 되었다. 왕의 궁전에서 그는 온 우주의 통치자이신 자기 하느님의 위엄을 증거 하였다.

 

다니엘서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첫째 부분(1-6장)은 “역사적”인 내용으로서, 바빌론 왕을 훨씬 초월하는 야훼의 권능을 보여 주고 있는 다니엘 생애의 다섯 가지 일화를 전해 준다.

둘째 부분(7-12장)은 “예언적”인 내용으로서 세상의 제국에 대한 하느님의 우월성을 밝혀 주는 네 가지 환시를 담고 있다.

그리고 두 가지 이야기, 즉 수산나의 이야기(13,1-64)와 벨과 뱀의 이야기(14,1-42)가 덧붙여져 있는데, 이는 각기 2장과 6장 다음에 삽입되어야 할 내용들이다.(공동 번역 성서에서는 그리스 번역에 나오는 이 두 가지 이야기를 제2경전으로 처리하였다. 또한 3장 24-90절의 아자리야의 노래와 세 젊은이의 노래도 마찬가지다.)

다니엘서가 히브리어와 갈대아어로 쓰여졌다는 사실은 민족을 초월하는 그 성격을 보여준다고도 하겠다.

그 예언의 내용을 살펴볼 때에 그러한 성격은 한층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 다니엘서는 선택받은 백성과 예루살렘 그리고 성전의 운명에 관한 것이 아니라 이교 민족들의 운명에 관한 예언이다. 다니엘은 메시아 왕국의 보편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아무도 손을 대지 않은 돌”(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신 그리스도)이 날아들어 왕의 허상을 쳐부수고, 그 돌이 “산같이 큰 바위가 되어 온 세상을 채운다.”(보편 교회가 된다.)는 꿈의 뜻을 밝혀 준다(2장).

이와 비슷한 생각은 “사람의 아들”의 내림으로 그 절정에 이르는 네 제국에 대한 환시(7장)에서도 드러난다.

사람의 아들은 제국들처럼 바다에서 올라오지 않고 하늘에서 구름을 타고 내려온다(7,13).

조금 더 나아가면, 이 “사람의 아들”은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을 섬기는 거룩한 백성”과 동일시되고 있다(7,18.27).

이것은 머리와 몸이 한 사람을 이루듯이 구세주와 그 백성이 하나가 된다는 것을 가리킨다.

 

많은 교부들의 해석에 따르자면, 이 환시는 그리스도께서 세상의 역사 안에 오시는 시간도 가리켜 주는 것이다.

흔히 첫 번 째 제국은 아시로-바빌로니아 제국으로 간주되는데, 이 나라는 메도-페르시아 제국을 세운 고레스에게 정복당하였고, 페르시아는 알렉산더 대제의 그레코-마케도니아에 굴복하고 말았다.

알렉산더의 급사 이후 그 제국은 네 나라로 분열되었고, 마침내 로마 제국이 전 근동을 정복한다.

그러므로 다니엘의 환시에 나오는 네 번 째 제국인 로마가 그리스도 왕국의 시작을 보게 된다는 것이다.

 

저 유명한 칠십 주간의 예언 또한 구세주의 내림을 더욱더 정확하게 가리켜 주는 것이라고 보았다.

이스라엘 백성의 유배 생활이 70년 동안 계속될 것이라는 예레미야의 예언(25,11-12)이 지닌 참뜻을 가브리엘 천사가 다니엘에게 알려 준다.

70년이란 해의 70주간 곧 490년을 가리킨다는 것이다.

이 기간은 유다 역사의 마지막 시기, 즉 제2성전의 건축부터 그리스도의 대림에 이르는 시기를 말한다.

그 마지막에 가브리엘 천사는 마리아에게 그리스도의 탄생을 알려 준다(루가 1,26).

 

“이방인들의 예언자”라는 다니엘의 성격이 초대 교회의 이방인 출신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인기를 얻게 된 이유일 것이다.

지하 묘지의 벽화는 다니엘의 그림으로 차 있다. 그 그림에는 두 마리의 늑대 사이에 서 있는 수산나도 묘사된다.

수산나는 교회의 상징이며 재판관 앞에 선 영혼의 상징이다.

그 사이의 두 마리의 늑대는 원로들로서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유다인들과 이방인들을 가리킨다.

정원은 이 세상이다. 목욕은 세례를 상징한다.

하녀 둘은 신앙과 사랑이다. 젊은 다니엘은 구원자이신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것으로 표현하였고 또 알아들었던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불가마에 던져진 세 젊은이의 이야기(3,1-24)도 고대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대단한 인기가 있었다.

그들은 세 젊은이의 모습에서 박해를 당하고 있는 자신들의 처지에 대한 위로를 찾았다.

세례로 다시 태어난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천사)의 현존으로 인하여 이 세상의 불타는 화염 속에서도 기쁘게 하느님을 찬미하며 전혀 불에 데지 않고 자유로이 거닐고 싶은 것이었다.

우리는 또한 사자 우리에서 두 손을 펼쳐 올리고 기도하는 다니엘의 모습을 흔히 보아 왔다.

사자 굴은 “저승”을 표현하기도 하며, 사자들은 악마들을 상징하기도 한다.

다니엘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여 구원을 받은 이미 세상을 떠난 영혼이다.

하바꾹은 흔히 임종하는 사람들에게 노자 성체를 모셔 가는 사람으로 묘사된다(14,33-39 참조).

사자 굴에 던져진 다니엘은 또한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에 대한 예언이다.

특히 사순절에 단식과 참회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고통을 자신의 것으로 삼는 충실한 그리스도인들은 거룩한 성체성사를 통하여 힘을 얻고, 어느 날엔가는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이처럼 다니엘은 어느 면으로 보나 유배 생활에서 자라난 새로운 세대를 대표하고 있다.

그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태어난 또 다른 새로운 세대를 가리키고 있다.

새로운 세대 곧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이 살아가는 세상의 허세에 짓눌리지 않으며, 군왕들과 제국에 등을 돌리고 진정 청춘을 즐겁게 하시는 그리스도의 제단으로 나아간다.

 

(Pathways in Scripture에서)

 


 

축일  7월21일 성 다니엘 예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