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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신 앙 관 련

추기경의 '이상한' 면담

by 파스칼바이런 2011. 8. 5.

추기경의 '이상한' 면담

[길 위에서 하늘을 보다 - 7]

 

2011년 07월 31일 (일) 20:38:20

김인보  .

 

지난 7월 21일, 각 언론에서는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 최고위원의 천주교 서울 대교구장 정진석 추기경 예방을 일제히 보도했다. 특히 한나라당은 대변인실 브리핑을 통해 이 회동에 대한 주요 내용을 전했다. 정치인들의 정 추기경 예방은 그리 낯선 일이 아니다. 한국 천주교회의 대표성 문제는 접어두더라도, 정치인들이 한국 천주교회의 대표를 만나 국가의 주요 사안에 대해 의견을 수렴하는 것은 바람직한 태도다. 적어도 그 진정성과 의도의 순수성을 담보할 수만 있다면 말이다. 그런데 홍 대표의 진정성과 순수성, 과연 어땠을까?

 

   

▲지난 7월 21일 정 추기경은 집무실로 방문한 한나라당 홍준표 대표와 가진 면담에서 “우리가 싫든 좋든 FTA가 국제간의 대세”라면서, FTA에 반대하는 것은 "시대 조류에 걸림돌이 된다"고 말했다.(사진/한나라TV)

 

추기경은 왜 '비공개' 면담이 필요했을까?

먼저 홍 대표의 당선과 관련해서 덕담을 나누던 정 추기경은 “앞으로 소외된 계층,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저희들이 열심히 노력하겠다”는 홍 대표의 발언에 환영의 뜻을 표하고, 요즘 한창 문제가 되고 있는 대학 등록금 문제를 꺼내들었다. 그리고 홍 대표의 자화자찬식 발언에 “아주 반가운 말씀이다” “큰일 하셨다” 등으로 화답을 했다고 한다. 이어 “이렇게 반가운 말씀을 해주시니 용기가 나서 또 한 가지 말씀을 드리겠다”며 본격적으로 FTA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펼쳐 보였다.

정 추기경은 “우리가 싫든 좋든 FTA가 국제간의 대세로밖에 될 수 없는 추세”며 “FTA에 대한 반대가 앞으로의 시대 조류에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의견을 피력했다. 이에 홍 대표는 “FTA를 순수하게 경제적인 측면에서 접근한다면 FTA를 반대할 이유가 없음”을 지적한 후 반대 세력에 대한 이념문제를 끄집어 들었다. 또한 FTA를 반대하고 있는 민주당 손학규 대표가 천주교 신자라는 점을 들어 정 추기경의 역할을 주문했다. 보도에 따르면 정 추기경과 홍 대표의 면담은 시종일관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진행 되었다고 한다.

 

홍 대표의 발언은 이미 언론 등을 통해 알려진 한나라당의 입장 외에 새로울 것이 없다. 다시 말해서, 정 추기경을 면담하는 이유가 바로 정부 정책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를 호소하기 위함이며, 자신들의 주장을 반대하는 세력에 대해 종교적 힘을 빌어 견제를 하기 위함이 드러난 셈이다. 지극히 불순한 의도의 만남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정 추기경의 태도는 어떠했을까? 그는 정치인들, 그리고 정부 부처 관계자들과의 만나는 자리에서 우리 사회의 ‘소외계층’에 대한 보호를 역설하고, 또한 교회 내부적으로는 사목교서 등을 통해 그들에 대한 교회의 역할을 주문해 왔다. 하지만 그의 문제는 발언이 발언으로만, 역설이 역설로만, 그리고 주문이 주문으로만 그친다는 점이다. 정 추기경의 정치적 성향, 그리고 종교적 성향을 떠나서, 그의 일차적 '문제'는 여기서 비롯된다. 즉 자신의 발언에 대해 전혀 책임 있는 행동을 보여주지 않는다는 데 있다. 홍 대표와의 면담에서 “소외된 계층을 위해서 애써주신다고 하니까 반갑다”라고 말한 정추기경의 발언에 신뢰가 가지 않는 이유다.

 

이번 면담에서 정추기경의 태도와 관련해서 몇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들을 정리하기 전에, 우선 눈에 띄는 점이 있다. 바로 “비공개” 부분이다. 한나라당 황천모 부대변인에 따르면, G20 개최 덕에 정추기경이 덩달아 해외에서 대접을 잘 받았다는 언급 이후의 면담은 비공개로 진행되었다고 한다. 제 발로 찾아온 정치인이 종교인을 만나서, 그것도 어줍잖은 정치인이 아닌, 한 나라의 여당 대표와 “비공개”로 면담을 진행해야 할 만큼 밝힐 수 없는 중대한 사안이 과연 무엇일까? 필시 고해성사는 아닐 터, 개인 문제에 대한 종교인의 조언을 구하는 자리는 더더욱 아닐진대, 무엇이 그리 비밀스러워야 할까?

정진석 추기경은 거짓예언자인가?

 

정 추기경의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에게는 무엇보다 그리스도교인 특히 교회 지도자가 갖춰야 할 예언자적 신원의식이 결여되어 있다. 교회 지도자의 예언자적 소명은 시대와 상황, 그리고 대상을 구분 지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예언자적 신원의식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제대로 가르치고 선포해야 할 사명에서 비롯된다. 교회 지도자가 정치권력의 부당한 권력남용과 잘못을 묵인하고 자신의 지위와 안위만을 고려한다면, 이는 예언자적 소명에서 한참 벗어나 있는 것이다. 예언직의 수행은 신학적, 정치적, 사회적 문제를 모두 포괄한다. 그 예를 우리는 구약성서의 예언자들을 통하여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고, 예수 그리스도 또한 그러한 삶을 사셨다. 한편으로 성경은 예언자로 자처하면서, 하느님의 종들을 잘못 가르치고 속여 온 거짓 예언자들을 경계한다.(묵시 2,20 참조) 그래서 예수께서도 거짓 예언자를 조심할 것을 당부하신다.(마태 7,15 참조). 정진석 추기경의 모습에서 관변 '거짓예언자'를 발견한다면 무리일까?

 

사실 이 문제는 정 추기경의 어제 오늘만의 문제가 아니다. 교회와 직접적인 이익관계가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그의 성향상 파격에 가까울 정도의 행보를 보이지만, 그렇지 않은 문제에 대해서는 한결같이 침묵을 고수해 왔다. 대표적인 예로, 재개발 예정지에 속해있는 ‘가좌동 성당’ 방문했을 당시 그가 보여주었던 행보를 보자.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남가좌동에 위치한 '가좌동 성당'은 가재울 4구역 '뉴타운' 재개발 지역에 포함되어 있었고, 정추기경은 2009년 7월 19일 이례적으로 가좌동 성당을 방문하여 정부의 재개발 정책에 대해 쓴소리를 쏟아냈다. "돈이면 다 된다는 물질주의가 문제" "자신에게 피해만 없으면 이웃, 특히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두지 않는 극도의 이기주의는 더 큰 문제" "가장 중요한 것은 돈보다 사람을 중심으로 한 정책을 펼쳐야”한다는 등의 그의 발언은 대 사회적 현안에 대해 거의 침묵으로 일관하던 정 추기경의 성향으로 본다면 격한 표현까지 동원된 아주 이례적인 발언이었다.

 

하지만 정 추기경은 '가좌동 성당'에서 보인 태도와는 달리, '참사'라는 비극적인 결말을 몰고 온 용산 재개발에 대해서는 침묵을 넘어 '관심'조차 주지 않았고, 현재 명동성당 들머리 앞 '명동 3구역' 재개발로 인한 ‘소외된 계층’의 절규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에게는 역시 '관심'밖의 일일 것이다. “소외된 계층,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홍 대표의 발언에 환영해 마지않았던 그의 태도와 재개발이라는 미명하에 고통 받는 서민들과 세입자들의 처지를 놓고 이리 다른 행보를 보이는데 있어서 그의 예언자적 소명은 어디로 간 것일까?

 

   

▲ 정진석 추기경은 2009년 7월 19일 뉴타운 개발로 철거 위기에 놓인 서울대교구 가좌동 성당(주임 홍성남 신부)을 방문해 "성당은 하느님의 집이며, 신앙인의 마음의 고향"이라며 "개발과정에서 종교시설을 타건물들과 똑같이 취급하는" 관공서와 조합측의 입장에 이의를 제기했다. 또한 재개발 과정에서 "서민들과 형편이 어려운 세입자들을 외면한 정책"을 비판하며, "재개발 사업은 주거 복지향상을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복지는커녕 추가 부담금 때문에 원주민의 70% 이상이 다른 지역으로 쫓겨나고 있다. 재개발 정책이 진정 서민을 위한 정책인지 잘 살펴봐야 한다. 뉴타운 재개발이 오히려 서민에게 고통을 안겨주는 것이라면 이런 정책은 분명히 변해야 하고 보완돼야 한다"고 말했다.(사진/한상봉 기자)

 

 

교회가 언제부터 '대세'(大勢)를 따라서 살았는가?

 

정 추기경의 또 다른 문제는 바로 FTA에 대한 일방적인 찬성이다. 물론 FTA에 대한 정 추기경의 개인적인 소신과 의견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한 사람의 유권자로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자격이 충분하다. 하지만 여러 매체들과 시민단체들을 비롯하여, 심지어 한국 천주교 내부적으로도 FTA에 대한 비판여론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했다면, 자신의 발언이 지닐 대 사회적 영향력을 고려했어야 했다. FTA로 인해 발생될 사회 전반적인 문제, 특히 농촌사회의 피해가 심각할 정도로 우려되는 상황에서 정 추기경은 그에 대한 어떠한 문제제기도 없이, 오히려 외교통상부 소속 통상교섭본부장이나 할 발언을 스스럼없이 일삼았다. 벌써 4대강 사업과 관련된 추기경 자신의 발언이 일으켰던 논란을 잊으셨단 말인가?

더군다나 4대강 사업에 대한 태도에서 보았듯이, 정 추기경의 '대세론'은 더욱 어처구니가 없다. “우리가 싫든 좋든 FTA가 국제간의 대세로밖에 될 수 없는 추세”며 “FTA에 대한 반대가 앞으로의 시대 조류에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데, 2000년 전 로마의 식민지를 살았던 예수께서 언제 한번 대세를 따른 적이 있었던가? 대세가 아니라 '진실'을 찾아야 하는 게 그리스도인 아니던가? 예수께서 대세를 따랐다면, 바리사이나 사두가이의 편에 서든가, 로마제국의 국책사업에 동조하고 나서야 했다. 그러나 예수는 '대세와 상관없는 복음'을 선포하셨던 탓에 십자가에 달리셨다.

그뿐 아니다. “FTA를 순수하게 경제적인 측면에서 접근한다면 FTA를 반대할 이유가 없음”을 역설한 홍 대표의 발언에서 정 추기경이 간과한 부분은 바로 FTA 찬성론자들이 줄곧 주장해 온 “경제적인 측면”이다. 이는 정 추기경이 ‘가좌동 성당’에서 행한 발언과도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정 추기경은 FTA를 등에 업고 밀려 올 왜곡된 자본의 “돈이면 다 된다는 물질주의”적 본성은 왜 간파하지 못했을까? 그리고 FTA를 통해 덕을 볼, “사람 보다는 돈”을 중시하는 대기업들과 경제 기득권 세력의 태도, 즉 “자신에게 피해만 없으면 이웃, 특히 가난하고 힘없는” 영세 사업자들에는 “관심조차 두지 않는 그들의 극도의 이기주의”에 대해서는 왜 한 마디도 언급을 하지 않는 것일까?

이것이 “경제적인 측면”에서 모두가 다 같이 잘 살자는 것이라는 그들의 주장에 정 추기경이 진심으로 동조를 한 것이라면, 이는 예수가 그토록 경계했던 맘몬을 결국 한국교회의 수장임을 자처하는 정진석 추기경이 앞장서 지지하는 꼴이 되고 마는 것이다.

 

 

   

▲ 최근 물의를 빚고 있는 명동성당 인근의 명동3구역 재개발 현장에서 철거민들을 위해 많은 이들이 거들고 있는데, 주로 인근 향린교회 신자들과 성공회 신자들과 시민들이다. 명동성당 측에선 아직 이렇다할 반응이 아직 없다.(사진/정현진 기자)

 

 

추기경의 어긋난 충심, 그분도 반기실까

마지막으로 정 추기경이 찬성한 FTA에 대해 교회는 내부적인 대비책을 강구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선진국에 비해 낙후된 한국 농촌사회의 경쟁력을 고려한다면, FTA로 인한 농촌사회의 심각한 타격은 불을 보듯 자명한 사실이다. 문제는 이러한 타격이 농촌사회의 문제로만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농촌을 기반으로 하는 농촌교회공동체 구성원들에게도 FTA의 영향이 미칠 것이고, 그 여파는 농촌교회공동체의 붕괴로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충분하다. 추기경은 가톨릭농민회의 FTA를 반대하는 목소리에 귀를 막고 계시는가? “FTA에 대한 반대가 앞으로의 시대 조류에 걸림돌이 될 것”을 걱정하는 정 추기경에게 있어서 ‘FTA에 대한 찬성이 농촌교회공동체의 앞날에 심각한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걱정은 그저 기우에 불과한 것일까?

 

교도권의 수장은 자신의 이익과 영달을 꾀하는 자리가 아니며,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기 위해 몸과 말을 함부로 움직여서도 안 된다. 특히 세속권력과 접한 문제에 있어서는 더욱 그러하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이번 홍 대표와의 면담에서 정 추기경이 보인 태도는 도를 넘어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고 할 수밖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정 추기경이 의도한 바는 아닐지라도, 그리고 이번 면담을 통해서 교회 측에서 실질적으로 정권으로부터 얻고자 하는 바가 없다 할지라도, 정 추기경의 태도는 세속권력과 종교권력의 야합, 즉 정교결탁이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한 소지가 다분하다. 만일 교회가 지키고 보듬어야 할 이웃의 고통을 외면하면서까지 하느님의 눈이 아닌, 세속권력의 눈에 들어 무엇을 얻고자 한다면,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하다.

항간에 정진석 추기경이 "명동성당 재개발의 첫삽을 뜨고서야 물러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하다. 물론 소문이 사실이 아니길 바란다. 심중에 품은 뜻을 알리가 없는 이들이 비방하는 목소리이길 바란다. 그러나 무난하게 말 많은 '명동재개발'을 안착시킨 공을 '공덕비'에 새기고 서울교구장에서 은퇴할 요량에 집권당의 손을 잡아주고 있다면 참으로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정 추기경은 착좌식을 하면서 "Omnibus Omnia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라는 엄청난 좌우명이자 사목지침을 새겨넣었다. 그 모든 것 안에 '대규모 건축사업'을 포함시키고 싶은 것인지 묻고 싶다. 그게 모든 이들을 골고루 행복하게 만들지, 모든 이를 하느님께 다가서게 만들지 의문이다. 그분께서 거절하신 예루살렘성전을 지어서 그분을 지성소에 유폐시키고 그분을 독차지하고 싶어했던 다윗과 솔로몬의 어긋난 충심이 뼈아프게 다가오는 밤이다.

 

김인보 (金隣保)/ 천주교 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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