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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신동엽 시인 / 산문시(散文詩) 1

by 파스칼바이런 2017. 6. 6.

신동엽 시인 / 산문시(散文詩) 1

 

 

스칸디나비아라든가 뭐라구 하는 고장에서는 아름다운 석양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업을 가지신 아저씨가 꽃리본 단 딸아이의 손 이끌고 백화점 거리 칫솔 사러 나오신단다. 탄광, 퇴근하는 광부(鑛夫)들의 작업복 뒷주머니마다엔 기름묻은 책, 하이덱거, 럿셀, 헤밍웨이, 장자(莊子),

 

휴가여행 떠나는 국무총리. 서울역 삼등대합실 매표구 앞을 뙤약볕 흡쓰며 줄지어 서 있을 때 그걸 본 서울역장 "기쁘시겠소"라는 인사 한마디 남길 뿐, 평화스러이 자기 사무실문 열고 들어가더란다.

 

남해에서 북강까지 넘실대는 물결, 동해에서 서해까지 팔랑대는 꽃밭, 땅에서 하늘로 치솟는 무지개빛 분수, 이름은 잊었지만 뭐라군가 불리우는 그 중립국에서는 하나에서 백까지가 다 대학 나온 농민들. 추럭을 두대씩이나 가지고 대리석 별장에서 산다지만 대통령 이름은 잘 몰라도 새이름, 꽃이름, 지휘자이름, 극작가이름은 훤하더란다.

 

애당초 어느쪽 패거리에도 총쏘는 야만엔 가담치 않기로 작정한 그 지성(知性). 그래서 어린이들은 사람 죽이는 시늉을 아니하고도 아름다운 놀이 꽃동산처럼 풍요로운 나라, 억만금을 준대도 싫었다. 자기네 포도밭은 사람 상처내는 미사일기지도 땡크기지도 들어올 수 없소.

 

끝끝내 사나이나라 배짱 지킨 국민들, 반도의 달밤, 무너진 성터가의 입맞춤이여, 푸짐한 타작소리 춤 사색(思索)뿐. 하늘로 가는 길가엔 황토빛 노을 물든 석양, 대통령(大統領)이라고 하는 직함을 가진 신사가 자전거 꽁무니에 막걸리병을 싣고 삼십리 시골길 시인의 집을 놀러 가더란다.

 

월간문학, 1968. 11

 

 


 

신동엽 시인

생몰 - 1930년 8월 18일 (충남 부여군)~1969년 4월 7일

학력 - 건국대학교 대학원 국문과  외 2건

데뷔 - 195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 1961 명성여자고등학교 국어교사  외 1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