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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성서와 함께

복음 속 풍습과 친해지기 - 성서와 함께 편집부

by 파스칼바이런 2018. 6. 16.
[복음 속 풍습과 친해지기] 예수님 시대에는 어떻게 혼인했을까?

[복음 속 풍습과 친해지기]

예수님 시대에는 어떻게 혼인했을까?

 

 

사흘째 되는 날, 갈릴래아 카나에서 혼인 잔치가 있었는데, 예수님의 어머니도 거기에 계셨다. 예수님도 제자들과 함께 그 혼인 잔치에 초대를 받으셨다. 그런데 포도주가 떨어지자 예수님의 어머니가 예수님께 “포도주가 없구나.” 하였다. … 거기에는 유다인들의 정결례에 쓰는 돌로 된 물독 여섯 개가 놓여 있었는데, 모두 두세 동이들이였다. 예수님께서 일꾼들에게 “물독에 물을 채워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들이 물독마다 가득 채우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다시, “이제는 그것을 퍼서 과방장에게 날라다 주어라.” 하셨다(요한 2,1-8).

 

혼인, 인륜지대사(人倫之大事)

 

동양에서는 예부터, 사람이 일생동안 단계적으로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받는 통과의례의 하나인 혼인을 매우 중시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마르 10,9)고 가르치셨으며, 직접 혼인 잔치에 참석하여 신랑 신부를 축복하셨습니다. 또 당신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신랑과 신부로, 당신의 하느님 나라 선포를 이미 도래한 천상의 혼인 잔치로 비유하셨습니다(마태 9,15; 25,1; 요한 3,29 참조).

 

혼인의 첫 단계인 약혼

 

유다인 남자는 성인이 되는 열세 살부터 스무 살에, 여자는 보통 열두 살 정도에 혼인했습니다. 주로 중매로 배우자를 찾았는데, 이는 양가에 흥정이 오간 뒤에 가족이 결정하였습니다. 혼인이 성사되면 신랑과 증인은 신부에 대한 신랑의 경제적·사회적 책임이 규정되어 있는 혼인 문서에 서명하고, 신부의 가족에게 일정액을 지불했습니다. 신랑 신부는 약혼으로 합법적 부부가 되지만 동거와 동침은 하지 않았습니다. 처녀는 1년, 과부는 한 달인 약혼 기간이 지나야 혼례를 하였습니다.

 

성대한 혼인 잔치

 

혼례는 주로 저녁에 치렀는데, 신랑 신부는 화려하게 치장을 했습니다. 손님들도 가장 좋은 옷으로 단장했습니다. 혼인 예복을 입지 않은 것은 모욕으로 간주되었습니다(마태 22,11-13 참조). 신랑 신부를 축복하는 흥겨운 노래를 부르며 등불을 밝혀 든 혼인 행렬을 따라, 신부는 신랑의 집으로 갔습니다. 등불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의 비유(마태 25,1 참조)는 이러한 혼인 풍습을 알게 해 줍니다.

 

손님들은 식사 전 정결 예식으로 손을 씻었습니다. 이때 율법상 부정을 타지 않는 돌항아리에 물을 담아 손발과 접시 따위를 씻는 데 사용했습니다. 한 동이는 대략 40ℓ이니, 두세 동이면 80-120ℓ로 700㎖짜리 마주앙(미사용 포도주) 114-171병에 해당합니다.

 

부모와 친지들의 축복을 받은 신랑 신부는 신방에 들어가고, 신부의 처녀성을 증명하는 속옷은 따로 보존하였습니다. 신랑의 친구들은 신부를 맞이한 신랑의 환호성을 듣고 함께 기뻐하며, 이에 대한 증인도 되었습니다(요한 3,29 참조).

 

포도주는 유다인에게 즐거움의 상징으로 잔치에서 큰 구실을 합니다. 혼인 잔치가 일주일이나 계속되었다는 관습을 생각하면, 잔치에 내놓는 포도주가 상당히 많은 양이었을 것입니다. 잔치 도중 포도주가 떨어지는 것은 손님을 잘 대접해야 할 주인에게 커다란 수치였습니다.

 

오늘날 많은 전통 의식의 틀이 무너지고 혼인에 대한 가치관이 적잖이 달라졌습니다. 그러나 혼인은 하느님께서 제정하신 견고한 제도입니다. 사랑으로 결합한 그리스도와 교회의 예를 모범으로 삼은 그리스도 신자 부부의 사랑은 본질상 자녀의 출산과 교육을 지향하며, 이는 사랑과 생명의 공동체인 가정을 하느님의 뜻 안에 더욱 견고하게 일치시키는 힘이 됩니다.

 

[성서와 함께, 2013년 1월호(통권 442호), 편집부]

 

 


 

 

[복음 속 풍습과 친해지기]

너희는 단식할 때

 

 

“너희는 단식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침통한 표정을 짓지 마라. 그들은 단식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려고 얼굴을 찌푸린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 너는 단식할 때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어라. 그리하여 네가 단식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지 말고, 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보여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마태 6,16-18).

 

단식은 보편적 종교 수행 방법

 

단식은 하느님에 대한 순종과 이웃에 대한 사랑의 표현으로 식사를 하지 않는 행위이며, 이를 통해 절약한 음식은 가난한 이웃을 돕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아울러 단식은 속죄와 정화, 수행과 극기를 위한 적절한 방편이기에 그리스도교를 비롯한 모든 종교에 공통된 수행 방법입니다. 유다교에서는 13세 이상인 남자와 12세 이상의 여자가 금욕과 단식을 하며(병자, 임산부 제외) 일상 음식 중에도 금지하는 식품을 상세하게 규정하였습니다. 이슬람교에서도 라마단에는 낮 동안 금욕과 단식을 하고, 단식 중 남을 관대하게 대하며 누가 모욕해도 보복하지 말라고 정하였습니다.

 

유다인의 엄격한 단식

 

구약성경에 나오는 단식은 개인이 애환 중에 하는 슬픔의 예식으로 재와 거적을 뒤집어쓰고 행했습니다(1사무 31,13; 2사무 1,12; 3,35 참조). 이는 참회의 표시였으며(1사무 7,6; 느헤 9,1-3; 예레 14,12; 요엘 1,14; 2,15-17; 요나 3,8 참조), 필요한 경우 기도와 함께했습니다. 가끔 공적 단식이 선포되기도 했습니다(판관 20,26; 1사무 14,24; 1열왕 21,9; 에즈 8,21-23; 예레 14,12; 36,6.9; 요나 3,5-10 참조). 모세와 다니엘은 하느님의 계시를 받기 위한 준비로 단식하였습니다(탈출 34,28; 신명 9,9; 다니 9,3; 10,2 참조).

 

속죄일(유다력 7월 10일)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모두 만 하루(해넘이에서 다음 날 해넘이까지) 음식과 음료를 끊고, 속죄복을 입고 목욕도 하지 않은 채, 재를 뒤집어쓰고 노동과 부부 간의 동침도 금하였습니다. 기원전 587년 예루살렘이 멸망한 뒤 유배 이후에는 그 대재난을 기억하며 해마다 4회(속죄일 외에 유다력 4월 17일, 성전 파괴일인 5월 9일, 10월 10일) 단식하였습니다(즈카 7,3-7; 8,19 참조).

 

보통 단식은 하루 동안 실시되었는데, 사흘 간 단식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에스 4,16 참조). 단식은 자주 권장되고 높이 평가되곤 하였습니다(유딧 8,6; 요엘 2,12-17; 2마카 13,12; 판관 20,26 참조).

 

예수님 시대의 단식

 

세례자 요한은 광야에서 단식과 고행을 하며 다가올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였고, 그의 제자들은 철저한 참회와 단식을 실천하며 그를 따랐습니다. 당대에 율법을 모범적으로 준수한 바리사이들은 매년 두 차례의 공적 단식(속죄일과 성전 파괴일) 외에 일주일에 두 번(월·목) 단식했습니다(마태 9,14 참조). 예수님께서도 공생활을 시작하시기 전 광야에서 40일을 단식하셨습니다.

 

그러나 단식에 대한 예수님의 태도는 당시 경건한 유다인들과 달랐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는 물론이고(루카 7,36 참조) 많은 세리와 죄인들과 자주 식사를 하셨기에(마르 2,15 참조), 어떤 이는 그분을 먹보요 술꾼이라 조롱했습니다(마태 11,19 참조). 혼인 잔치에 참석한 손님들처럼 신랑이신 예수님과 함께 기뻐하던 그리스도인들은 그분이 돌아가신 후부터 단식을 하였습니다(마태 9,15 참조).

 

오늘날 교회는 연중 모든 금요일과 사순절에 참회 고행을 실천합니다. 대축일을 제외한 금요일에는 금육재(만 14세부터 죽을 때까지)를, 재의 수요일과 성금요일에는 금육재와 금식재(만 18세부터 60세까지)를 함께 지켜야 합니다. 현재 교회에서 규정하는 단식은 세 끼 중 한 끼만 충분히 먹고 한 끼는 요기 정도만 하며 한 끼는 완전히 금식하는 것입니다. 단식에서 중요한 것은 의무의 수행이 아니라 사랑과 희생의 정신으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참여하며 자기를 이기고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성서와 함께, 2013년 2월호(통권 443호),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