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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성서와 함께

말씀과 함께 걷는다 - 황미숙 마리루갈다 수녀

by 파스칼바이런 2018. 6. 19.
[말씀과 함께 걷는다 ? 예언서] 예언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말씀과 함께 걷는다 – 예언서] 예언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황미숙 마리루갈다 수녀

 

 

형형색색의 가을 나뭇잎처럼 색채가 다르고 분량과 내용이 모두 다양한 예언서를 어떻게 하면 잘 이해할 수 있을까요? 예언서를 읽다 보면 이중적인 면을 마주하곤 합니다. 예언의 말씀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없을 것 같다가도 정확히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을 많이 만나기 때문입니다. 왜 그럴까요? 예언서가 ‘종합예술’과 같은 모습을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오페라를 감상하듯

 

종합예술의 대표적 예로 오페라를 들 수 있습니다. 오페라를 감상할 때 무대 배경만 보거나 프리마돈나가 부르는 아리아만 치중하여 듣거나 오케스트라의 연주만 듣는다면, 오페라의 아름다움을 다 느낄 수 없습니다. 오페라가 펼치는 이야기를 따라가며 연주되는 음악과 아리아, 그리고 합창과 무대 배경까지 폭넓게 보고 들어야 오페라가 지니고 있는 진수(眞髓)를 만날 수 있습니다.

 

예언서를 이해하는 방법도 오페라 감상과 유사합니다. 예언서가 역사적 배경과 분리되면 본래의 의미를 이해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당시 근동의 상황뿐 아니라 주변 민족들과 이스라엘 백성의 처지, 각 예언자들과 그들의 특성에 대한 이해, 그리고 편집 배경 등을 폭넓게 봐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심판 예언’에서 ‘구원 예언’으로 주제가 갑자기 바뀌거나 작은 단락들을 순서 없이 모아 놓은 책처럼 보이는 말씀을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우리가 예언서를 대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큰 원인은, 예언서가 한 작가의 단일 문학 작품이 아니라 여러 가지 구전 설교 선집을 함께 정리한 책이기 때문입니다. 이사 8,16-20이나 예레 36,4.18.32 외에는 예언서의 집필 또는 기록의 근거가 되는 자료가 거의 언급되지 않습니다. 고대에 문자를 아는 사람이 극히 적었던 점을 감안하면 체계적 기록 방법에 대해 마음을 기울일 정황이 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언자들을 따르는 제자 무리가 기회가 되는 대로 신탁 내용을 짤막하게 기록하고, 수백 년이 지나 그것들을 모아 편집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습니다.

 

예언서를 구분하는 다양한 방식

 

히브리 성경은 오경, 예언서, 성문서로 분류되는데, 예언서가 구약성경에서 상당히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음을 뚜렷이 알 수 있습니다. 예언서를 구분하는 방식은 다양합니다. 먼저 연대(年代)로 분류하면 ‘전기 예언서’와 북이스라엘 마지막 시기에 나타나기 시작한 ‘정경 예언자들’을 포함한 ‘후기 예언서’로 구분합니다.

 

전기 예언자들의 활동은 ‘역사서’에 언급되어 있지만(판관 4장; 1사무; 2사무; 1열왕 17-19장; 21장; 2열왕 2-9장; 13,14-21; 22,14-20 참조), 그들의 가르침이 문서로 남겨지지는 않았습니다. 반면 정경 예언자들의 가르침은 보존되어 어느 정도 문서로 남겨졌습니다. 통상 예언서라고 지칭할 때는 ‘정경 예언서’인 후기 예언서를 말합니다.

 

후기 예언서를 구분하면 그 분량에 따라 네 권의 대예언서(이사야서, 예레미야서, 에제키엘서, 다니엘서)와 열두 권의 소예언서로 분류합니다. 이러한 구분 외에도 바빌론 유배를 중심으로 유배 전(이사야서, 호세아서, 아모스서, 미카서, 예레미야서 등), 유배 기간(예레미야서, 에제키엘서, 제2이사야서 등), 유배 이후(제3이사야서, 하까이서, 즈카르야서 등)로 나누기도 합니다.

 

예언자들은 하느님 말씀을 전하는 데는 일치했지만, 각자 받은 소명이 다르고 전하는 메시지도 차이가 있었습니다. 이는 그들이 활동하던 시대 상황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따라서 유배 이전과 이후의 메시지가 다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유배 이전에는 하느님과 맺은 계약을 파기한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 예언과 백성의 회개를 촉구하는 내용이 주요 메시지였지만, 유배 기간에는 이스라엘을 향한 위로와 구원 선포가 주요 메시지였습니다.

 

예언자에 대한 호칭, ‘나비’와 ‘프로페테스’

 

다양한 사람이 독특한 방식으로 예언자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예레미야나 극소수 예언자를 제외하고 예언자 개인에 대해서는 무심할 정도로 관심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우리는 ‘예언자’라는 용어를 정리함으로써 예언자의 활동과 역할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발견을 통해 하느님께서 당신의 백성에게 생명의 길을 열어 주시는 말씀인 예언서를 더 잘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예언자에 대한 호칭으로 가장 자주 표기하는 말은 히브리어 ‘나비(nabi)’입니다. 어원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지만, 이 단어는 아카드어 ‘나비움’에 기원을 둡니다. ‘나비움’은 아카드어 ‘나부’(부르다, 선언하다) 동사에 어원을 둔 명사형입니다.

 

그밖에 예언자를 가리키는 말로 ‘보다’, ‘주시하다’ 동사에서 유래한 ‘환시가’라는 뜻의 ‘호제(chozeh)(2역대 19,2; 29,30; 35,15), ‘선견자’라는 의미로 ‘보다’ 동사에 어원을 둔 ‘로에(roeh)(1역대 26,28; 2역대 16,7.10), ‘하느님의 사람’이란 의미의 ‘이쉬 하엘로힘(ish haElohim)(1사무 2,27; 9,10; 1열왕 12,22; 17,18; 2열왕 1,9; 4,9) 등이 있습니다. 예언자를 가리키는 그리스어는 ‘프로페테스(prophetes)’입니다. 이는 ‘앞서서 말하다’는 의미인데, ‘하느님의 뜻을 미리 말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예언자의 무리에는 하느님의 뜻을 전하는 참예언자와, 하느님에게서 파견되지 않고 자기주장대로 예언하는 거짓 예언자가 공존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이들 모두에게 히브리어 ‘나비’를 사용한 반면, 그리스어에서는 거짓 예언자를 참예언자와 구분하여 ‘페이도프로페테스’라고 했습니다. 참예언자라는 말은 하느님의 이름으로 말하고 활동한다는 것을 전제한 칭호입니다. 따라서 예언자들은 말씀을 선포하는 기본 양식으로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또는 ‘주님의 말씀’이라고 표현하는 ‘사자使者 정식’을 써서 예언자의 역할을 드러냈습니다.

 

예언자들이 메시지를 전할 때 평범한 설교 언어로 전했을 뿐 아니라 표징, 환시, 비유, 행동 등 다양한 방식으로 말씀을 전했음을 그들을 지칭하는 여러 이름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참예언자를 ‘하느님의 말씀을 전달하기 위해 파견된 사람’으로 인식했습니다.

 

예언자의 활동과 역할

 

이스라엘에 왕정이 시작되자 다윗 왕실에는 나탄 같은 예언자가 활동했습니다. 그 후 왕정 시대에 예언자들의 활동이 점차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예언자’라는 호칭도 보편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그 호칭이 창세기(20,7 참조)와 탈출기(7,1; 15,20 참조), 신명기(34,10 참조)뿐 아니라 판관기(4,4: ‘여예언자’ 드보라)와 사무엘기(1사무 3,20: ‘예언자’ 사무엘)에도 나옵니다. 그러므로 정경 예언자들의 출현 이전에 이미 이스라엘에는 예언자라는 이름이 통용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에서 ‘예언자’라는 이름은 고대부터 회자되었습니다. 예언자들의 활동이 활발했던 후대에 예언자를 ‘하느님을 대리하여 하느님 말씀을 사람들에게 공공연히 전하는 사람’으로 이해하여 이스라엘에서만 예언이 발생했다고 생각할 여지도 있겠지만, 예언은 이스라엘에서만 나타난 현상이 아니라 기원전 18세기부터 근동 지역에 있어 왔습니다. 이는 근동 문헌을 통해 증명됩니다. 예를 들어 고대 시리아-팔레스티나 문헌(<아람의 비문들>), 메소포타미아 문헌(<마리 문헌>), 이집트 문헌 등을 통해 예언 활동이 이스라엘의 주변국들에서도 존재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구약성경에서도 주변국에 예언자들이 존재했다는 점을 언급합니다. 카르멜 산에서 엘리야와 대결하는 바알 예언자들(1열왕 18,20-40 참조)과 모압의 예언자 발라암의 이야기(민수 22장 참조)에서 그 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놓치지 않아야 할 것은 예언 활동이 이스라엘 밖에서 드러난다 해도 이스라엘의 예언자들이 예언한 것과 근동 세계에 존재한 예언 행사 방식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입니다.

 

이에 대해 에리히 쳉어는, 성경 이외의 다른 고대 근동의 텍스트에서는 예언자들과 왕 또는 국가 간의 근본적 충돌이 발견되지 않는다고 지적합니다. 예언자들과 왕 또는 국가 간의 근본적 충돌, 강력한 심판 통고, 백성의 운명 등은 메소포타미아나 이집트 등 고대 근동 문헌에서 찾아볼 수 없는 내용이라는 것입니다. 고대 근동 텍스트에 설사 심판을 제기하는 예언이 등장하더라도 제의상의 문제 정도만 다룬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예언 활동은 국가의 안위나 임금의 권위를 보전하기보다 하느님 말씀만 따르며 하느님만 충실하게 섬기려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예언자들은 종교적 위기, 사회 윤리적 타락 등 하느님과 맺은 계약을 파기하는 행위에 대해 백성은 물론 임금에게도 서슴없는 권고와 심판 예언으로 이스라엘이 전통 신앙으로 돌아갈 것을 촉구했습니다.

 

[성서와 함께, 2014년 6월호(통권 459호)]

 

 


 

 

[말씀과 함께 걷는다 – 이사야서] 이사야서, 한 지붕 밑의 세 가족

황미숙 마리루갈다 수녀

 

 

대예언서와 소예언서를 불문하고 가장 먼저 떠오르는 예언서는 무엇입니까? 아마도 예언서의 시작이며 전례 때 어느 예언서보다 자주 선포되는 이사야서가 아닐까요? 구약성경에서 가장 긴 책 이사야서는 통상 제1이사야(1-39장), 제2이사야(40-55장), 제3이사야(56-66장)로 구분되는 각기 다른 세 가지 역사적 정황이 한 권의 책으로 묶여 있습니다. 세 부분이 다른 역사와 배경을 가지고 있지만, 한 지붕 밑의 세 가족처럼 1-66장 전체가 하나의 예언서를 구성한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전체의 통일성을 읽어 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제 1이사야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우선 예언서의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겠습니다.

 

제1이사야의 역사적 배경

 

다윗과 솔로몬의 치세로 번영을 누리던 이스라엘은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 시대에 이르러 결국 두 왕국으로 분리됩니다.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분열된 후 약 170-180년이 지난 때에 예언자 이사야가 등장하여 예루살렘 도성을 중심으로 활동하기 시작합니다. 일반적으로 ‘제1이사야’라고 부르는 1-39장의 이사야 예언자는 기원전 8세기의 예언자인 아모스, 호세아, 미카와 동시대 사람입니다. 그는 우찌야 임금이 죽던 해에 예언자의 소명을 받고(6,1 참조), 요탐, 아하즈, 히즈키야 임금의 치세 기간에 예언 활동을 했습니다.

 

남유다는 내부적으로 우찌야 임금 치세 때 경제가 상당히 번영하지만 형식에 치우친 종교 생활, 사치와 향락 등으로 사회 문제가 많이 발생합니다. 반면 대외적으로는 아시리아가 페니키아, 시리아, 이스라엘 등 남서쪽 지역으로 세력을 떨치며 정복 전쟁을 벌여 근동의 패권을 장악한 시점입니다. 이렇듯 이사야 예언자가 등장할 당시, 유다에는 사회적 · 종교적 타락과 더불어 아시리아의 위협과 국내 정치의 불안이 날로 더 커져 갔습니다.

 

따라서 1-39장은 복잡한 정치 상황 아래에서 근동의 패권국 아시리아로 인한 남유다의 총체적 위기를 다룹니다. 제1이사야 예언자가 정치적 위기에 직면한 남왕국에서 40여 년간 직무를 수행하는 동안 아시리아의 개입 또는 침략이 몇 차례 이루어집니다. 그 개입의 첫 계기가 ‘시리아-에프라임’ 전쟁입니다.

 

아시리아가 정복 국가를 무자비하게 다루었기에, 정복된 군주들은 기회만 되면 저항 방법을 모색했습니다. 일례로 시리아(다마스쿠스)의 르친과 에프라임(이스라엘)의 페카가 동맹을 맺어 연합 세력을 형성합니다. 그들은 아시리아를 견제할 수 있는 세력인 이집트와 연계하기 위해 이스라엘과 이집트 사이에 있는 유다를 끌어들이려 했습니다. 유다 임금 아하즈가 이를 거부하자 르친과 페카 임금은 동맹을 맺어 유다를 침략합니다. 이사야는 아하즈 임금에게 아시리아 군대의 힘에 의지하지 말고 하느님의 도움을 믿으라고 권고하였으나, 이를 믿지 못한 아하즈는 이사야의 조언을 거부한 채 하느님 대신 아시리아에게 해방의 손길을 기대하고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임금의 이러한 결정을 만류한 이사야 예언자는 해방자로 부른 아시리아가 오히려 정복자가 될 것임을 암시하는 예언을 내놓습니다(7,18-25; 8,1-10 참조). 결국 아시리아의 개입으로 마무리된 시리아-에프라임 전쟁은 시리아와 북이스라엘 왕국의 패배로 종결됩니다. 그러나 그 결과 유다 임금 아하즈는 아시리아 제국의 봉신(封臣)이 되고 맙니다. 결국 유다는 이사야가 염려한 대로 아시리아의 지배 아래에 들어가고, 안전을 보장받는 대신 공물을 바쳐야 하는 봉신 국가로 전락합니다.

 

아시리아 제국처럼 해방자를 자처하며 약소국을 점령하여 봉신 국가로 만든 예를 필리핀의 역사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필리핀은 400년간 스페인의 식민 지배를 받았을 뿐 아니라 미국에 의해 50년, 일본에 의해 10년간 식민 지배를 받는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세 나라는 모두 해방자임을 자처했습니다. 스페인은 무지몽매함에서 필리핀을 구한다며 들어왔고, 미국은 스페인의 억압에서 필리핀을 구하겠다는 명목으로 점령했습니다. 일본 역시 미국에게서 필리핀을 구하는 해방자라며 식민지로 삼았고, 다시 미국이 일본에게서 필리핀을 해방시킨다는 명목을 들이대며 재점령하였습니다. 아시리아도 유다에게 해방자로 나타났으나 유다는 진정한 해방을 얻지 못합니다. 이사야 예언자가 충고한 대로 하느님을 믿기보다 인간의 힘에 의지하고 그 손을 잡아 오히려 속박을 받게 된 것입니다.

 

6,8 “내가 누구를 보낼까?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가리오?”

 

이사야는 히브리어로 ‘여사야후’인데, ‘하느님께서 구원하시다’ 또는 ‘하느님은 구원이시다’라는 뜻입니다. 이처럼 ‘이사야’라는 호칭에 하느님의 업적 또는 예언자의 소명이 담겨 있습니다. 이사야가 하느님께 예언자로 부름받는 장면을 보겠습니다. 이사야서에 담긴 방대한 내용에 비해 이사야 예언자를 알 수 있는 정보는 많지 않습니다. 그는 여예언자와 혼인해서 두 아들을 두었다고 소개됩니다. 두 아들의 이름은 유다에 대한 심판과 희망에 대한 예언을 함의하는데, 두 이름에서 암시하듯 이사야서를 읽다 보면 심판과 희망을 동시에 전하는 예언을 만나게 됩니다.

 

1-5장은 이스라엘의 죄악상에 대한 경고를 기술합니다. 특별히 5,1-7에 기록된 ‘포도밭 노래’는 이스라엘 백성의 죄와 하느님의 심판을 언급합니다. 이어 6장에서 예언자의 정당성을 입증하는 소명을 밝힙니다. 이 소명 사화는 이사야에 관해 알 수 있는 중요한 기록으로, 그 광대한 이야기에 쓰인 동사 ‘보다(응시하다), 듣다, 말하다’에서 역동성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가 주님께서 영광스러운 어좌에 앉으신 것을 보고 자신을 ‘입술이 부정한 사람’으로 고백하자(6,5 참조), 사랍들이 그의 입술에 타는 숯을 대고 “너의 죄악은 사라졌다”(6,7)고 말하여 그는 죄를 용서받습니다. “내가 누구를 보낼까?” 하는 주님의 소리를 듣고 망설임 없이 “제가 있지 않습니까? 저를 보내십시오”(6,8) 하고 대답합니다. 그리고 이사야는 희망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 처한 이스라엘 백성을 보고 “주님, 언제까지입니까?”(6,11)라고 묻습니다.

 

이사야의 소명 사화에서 두드러지는 역동성을 ‘조각’과 연관지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조각가는 염두에 둔 어떤 형상을 사용되는 재료에 따라 더하거나 빼는 방법으로 완성해 갑니다. 예를 들어 밀랍이나 흙 같은 재료는 덧붙이는 방법으로 형상을 만들고, 대리석과 같은 돌로 된 재료는 만들고자 하는 형상에 따라 그것을 떼어 냅니다. 조각은 그림과 같이 한 면만 보는 것이 아니기에 모든 각도에서 제작되어야 합니다. 그 마력(?) 때문에 미켈란젤로는 돈을 빨리 벌 수 있는 그림을 그리라는 아버지의 성화를 뿌리치고 조각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미켈란젤로와 같이 유명한 조각가의 작품에는 모조품이 많습니다. 진품은 손상되지 않도록 박물관 같은 안전한 곳에 보관하고, 그 대신 거리나 광장에 모조품을 세워 쉽게 볼 수 있도록 합니다. 그러나 모조품은 진품을 절대 따라올 수 없습니다. 진품의 장중함과 정교함에는 예술가의 혼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언자는 그 안에 하느님의 말씀이 담긴 정교한 하느님의 작품입니다(에페 2,10 참조). 예언자도 자신을 하느님의 말씀으로 형상화하지 않는다면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참된 예언자가 될 수 없습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주님을 뵙고, 말씀을 듣고, 주님께 “저를 보내십시오”(6,8)라고 말함으로써 사방에서 자기를 조각하듯 하느님의 심판과 구원 계획에 역동적으로 참여합니다. 참예언자가 되어 가는 이사야의 소명 이야기를 접하면서, 조각품이 예술가의 손에서 완성되듯 우리의 모습이 조각가이신 하느님 손에서 뭉툭한 채로 떨리거나 깎이지 않도록 좀 더 장중하고 정교하게 다듬어지기를 희망합니다.

 

9,1 어둠 속을 걷던 백성이 큰 빛을 봅니다.

 

7장에는 임마누엘의 표징이 등장하고, 9-11장에는 장차 태어날 통치자의 구체적 위용과 활약이 설명됩니다. 임마누엘에 대한 약속은 아시리아의 무력에 직면한 급박한 상황에서 주어집니다. 하느님께서 두려움을 느끼는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하신다는 것을 확신시키고 그들이 처절하게 신앙고백을 할 것을 촉구합니다. 왕권이 그의 어깨에 놓이고 ‘주님의 영’으로 가득한 그는 하느님과 함께 사람들 사이에서 평화의 왕국을 이루는 일꾼으로 소개됩니다. 그는 주님을 경외하는 자, 가난한 사람의 인권을 보장하고 악인을 위압하며 정의로 재판하는 자입니다. 이는 고대 이스라엘에서 임금이 수행하던 역할입니다.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임금의 출현과 평화를 일구는 광경은 우리가 기뻐하며 구원의 샘에서 물을 길으리라는 굳건한 희망을 남겨 놓습니다. 두려움과 불신에 차서 아시리아의 군사력에 의존하는 잘못을 범한 아하즈 임금과 달리 이민족들의 심판 예언 이후에 등장한 아하즈의 아들 히즈키야 임금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함으로써 예루살렘의 구원과 회복을 체험합니다(38장 참조). 이사야 예언자는 현재 직면한 정치적 긴장과 불안한 미래에서 구원을 찾는 길은 아시리아 제국의 힘이 아니라 오직 하느님 자비의 손길에 달렸다고 거듭 강조합니다.

 

[성서와 함께, 2014년 7월호(통권 460호)]

 

 


 

 

[말씀과 함께 걷는다 – 이사야서]

절망에서 희망으로 바뀌는 제2이사야서

황미숙 마리루갈다 수녀

 

 

현실에서도 그렇지만 영화와 연극, 심지어 짧은 드라마나 에피소드를 보고 들을 때 이야기가 전개되는 과정에서 우여곡절이 있더라도 그것이 ‘해피엔딩’으로 끝나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낍니다. 이사야 예언서 전체에서 ‘제2이사야서’라고 명명하는 40-55장은 ‘유배’라는 파란만장한 역사에서 해피엔딩을 예고합니다. 마치 해방에 대한 희망으로 접어드는 관문 같습니다. 이렇듯 제2이사야서에는 새로운 역사의 시작을 알리는 말씀이 담겨 있습니다.


바빌로니아에서 페르시아로

 

난공불락일 것 같은 아시리아 제국이 쇠락의 길로 접어들더니, 기원전 609년 마침내 바빌로니아에게 패하여 근동의 패권이 급속히 바빌로니아로 옮겨갑니다. 얼마 후 바빌로니아의 임금으로 등극하는 네부카드네자르 장군이 기원전 605년에 카르크미스 전투에서 이집트마저 제압하여 지중해 연안 지역도 바빌로니아의 세력 하에 놓이게 됩니다. 이스라엘 역시 그 휘하에 들어갑니다.

 

바빌로니아는 예루살렘을 함락하여 성전을 파괴하고 많은 유다인을 바빌로니아로 끌고 갑니다(기원전 586년).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은 고국을 떠나 바빌로니아로 유배되는 고통과 수모를 겪습니다. 그러나 거대한 제국을 형성하며 이스라엘 백성에게 참담한 고난을 준 바빌로니아도 아시리아처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맙니다. 바빌로니아는 강력한 임금이었던 네브카드네자르가 죽은 뒤(기원전 552년) 쇠퇴하기 시작하여 기원전 539년 페르시아의 키루스 임금에 의해 멸망합니다.

 

일반적으로 기원전 586년 바빌로니아의 예루살렘 점령부터 기원전 538년 페르시아 임금 키루스에 의해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귀환 허락(‘키루스 칙령’)이 내려진 때까지를 ‘바빌로니아 유배 시기’라고 지칭합니다. 40-55장은 바로 그때 바빌로니아에서 유배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들려준 이야기입니다. 제1이사야 예언자가 활동한 기원전 8세기에서 약 200년이 지난 기원전 6세기경에 자서전적 정보가 거의 없는 이름 모를 예언자, 제2이사야 예언자가 활동합니다. 따라서 40장부터는 제1이사야서에서 펼쳐진 장면과 사뭇 다르게 무대가 바뀌고 등장인물도 다양해집니다.

 

하느님의 백성으로 거듭나는 시련의 시간

 

유배 생활을 하는 이들에게 전해진 제2이사야서는, 낯선 이방인의 땅으로 끌려가 고통당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위로하는 희망의 말씀으로, 새벽 동이 터 오르는 듯 찬란하게 선포됩니다. 다시 고국으로 귀환할 수 있다는 소식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기쁜 소식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겪은 ‘유배’에 대한 이해 없이는 그들에게 선포된 이 희망의 메시지가 얼마만큼 큰 기쁨을 안겨 준 생명의 말씀이었는지 가늠하기가 어렵습니다.

 

예언자가 선포한 이 희망의 말씀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얼마나 기쁜 소식이었는지를 제가 마음으로 이해한 때는 오랜 시간이 흐른 뒤였습니다. 유배라는 상황을 몸과 마음으로 체득하면서 비로소 그 깊이를 알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신학교에서 예언서를 배울 때 책과 강의를 통해 ‘유배’의 역사적 상황과 그에 따른 이야기를 접할 기회가 많았습니다. 게다가 시험을 준비하면서 유배에 대한 외형적 지식을 머릿속에 차근차근 정리해 두었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이 겪은 유배를 잘 알고 있다고 착각했습니다.

 

몇 년이 지나 주님께서 제게 열어 놓으신 길은 외국 유학이었습니다. 6개월간 서둘러 언어를 배우고 입학했을 때, 로마의 아름다운 풍경도 제 눈에는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광야에 홀로 던져진 것 같다는 느낌밖에 없었습니다. 수업 첫 날, 세계 각지에서 온 학생 140명과 함께 듣는 강의실에서 ‘교수님 가까이에서 들으면 더 잘 들리지 않을까’라고 생각하여 맨 앞줄에 앉았습니다. 간혹 아는 단어들이 귀에 들어왔지만, 모든 안테나를 다 동원해도 무엇을 설명하는지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녁에 집에 돌아오면 다른 학생들보다 피로감을 더 많이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학교를 오가며 활짝 웃고 사진 찍는 관광객들을 보면서 그들은 저와 다른 세상에서 사는 사람같이 느껴졌습니다. 석 달이 지나 12월이 다가오자 여러 수업과 세미나 발표, 매주 내야 하는 숙제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마음이 부대껴 등굣길이 골고타 언덕을 오르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구약을 가르치는 교수님이 ‘유배’에 대해 설명하셨는데 묘하게도 강의 내용의 대부분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하느님께 의탁하는 믿음 없이는 잠시도 살 수 없는 상황이 매일 전개되던 낯선 땅에서의 삶이 이스라엘 백성의 유배 생활과 같다고 느끼게 한 것입니다. 강의 내용이 제 마음에 점점 크게 울려 와 눈물까지 맺혔습니다. 그때부터 이사야 예언자가 유배된 백성에게 전해 주는 메시지가 얼마나 큰 ‘위로와 희망이 되는 말씀’이었는지 비로소 가늠할 수 있었습니다.

 

“위로하여라, 위로하여라, 나의 백성을”(40,1)

 

제2이사야서가 시작되는 40,1부터 하느님의 위로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쏟아집니다. 그들의 죄와 잘못으로 고국을 떠나 유배 생활을 하였으나 하느님께서는 ‘복역 기간이 끝나고 죗값이 치러졌다’고 선언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예언자에게, ‘이스라엘 백성이 주님의 용서를 받았다는 것’과 ‘확신에 찬 해방과 구원의 기쁜 소식을 그들을 향해 외치라’는 소명을 주십니다. 이제 주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하느님의 다스림이 유배된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실현될 것입니다(40,5 참조).

 

하느님의 통치가 실현된다는 것은 권능과 사랑으로 오시는 하느님께서 그들 가운데 계시다는 ‘현존’을 고백하게 합니다(40,9-10 참조). “벌레 같은 야곱아 구더기 같은 이스라엘아!”(41,14)라고 표현하듯 이스라엘 백성은 보잘것없는 민족이었으나 하느님께 선택되어 거룩한 백성, 하느님의 백성이 된 것입니다. 주님의 능력을 믿고 벌레 같은 처지에서, 그들을 속박하는 모든 것에서 벗어나 훌훌 털고 일어선다면, 강대한 민족이 될 것이므로 그분을 믿고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제2이사야 예언자는 역사의 주인이신 하느님이 창조주이심을 누누이 강조합니다. 창조주 하느님께서는 역사를 거듭 새롭게 창조하시는 분이라는 신앙을 놓치지 않고 새로운 이집트 탈출에 대해 희망을 품게 합니다(43,16-21 참조). 그 희망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유배라는 비참한 처지에서도 하느님의 백성으로 존속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위로와 용기를 줍니다.

 

주님의 종의 노래

 

제2이사야서에서 두드러지는 대목은 ‘주님의 종의 노래’입니다. 보통 ‘종’이라는 말은 희망 없는 타율적 구속(拘束)의 대명사처럼 들립니다. 그리스어에서 ‘노예’ 또는 ‘종’은 모욕과 멸시, 천대를 함의하는데, 이는 자유를 최상의 가치로 여긴 그리스 문화권에서는 오히려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사야 예언자는 이 용어를 사용하였을까요? 히브리어로 쓰인 구약성경에서 ‘종’이라는 말은 하느님과의 수직 관계에서 하느님에게서 특별한 소명을 받은 자를 일컫습니다. 그래서 모세와 여호수아, 사무엘과 다윗 같은 인물에게 붙여졌습니다. 따라서 구약성경에서 ‘주님의 종’은 하느님의 온전한 신뢰를 받고 권위를 위탁받은 자를 일컫는 호칭으로 정착됩니다. 이사야 예언자 역시 ‘종’의 그리스어 의미가 갖는 천대와 모욕이 아니라, ‘하느님의 온전한 신임과 권위를 지닌 자’를 표현하여 ‘주님의 종’의 위상을 드러냅니다.

 

‘주님의 종’과 관련하여 제2이사야서에서 다루는 중요한 메시지는 ‘고통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네 번이나 등장하는 ‘주님의 종의 노래’를 통해 이사야 예언자가 ‘고난’이라는 모티브를 얼마나 강조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42,1-9; 49,1-7; 50,4-11; 52,13-53,12 참조). 멸시받고 배척당한 ‘주님의 종’이 겪는 고통은 단순히 그 자신의 죄로 인한 형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대신해서 겪는 ‘대속’의 고통으로 제시됩니다. 죄가 없는데도 타인을 대신하여 고통당하고 멸시받으면서도 묵묵히 자기 일을 수행하는 주님의 종. 우리도 하느님 말씀에 순종하고 자신을 내놓을 때 이미 ‘주님의 종’의 사명을 수행하는 것입니다.

 

제2이사야서의 마지막 장인 55장은 40-54장에 대한 결론입니다. 바빌로니아의 귀양살이를 마치고 나오라는 하느님의 초대에 응답하고, 하느님의 백성으로 새롭게 출발하라고 촉구합니다. 따라서 마지막 구절에서는 바빌로니아에서 나오는 이스라엘의 모습을 보며 산과 언덕과 나무들이 노래하고 손뼉 치고 환호하며, 하느님의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기쁨을 총체적으로 표현합니다.

 

[성서와 함께, 2014년 8월호(통권 461호)]

 

 


 

 

[말씀과 함께 걷는다 – 이사야서]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여 준 제3이사야서

황미숙 마리루갈다 수녀

 

 

탈무드에 따르면, “하느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 열 개 분량의 아름다움을 세상에 내려 주셨는데 그중의 아홉은 예루살렘의 몫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 표현을 보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예루살렘이 얼마나 소중한 곳인지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은 그저 하나의 평범한 도성일 수 없습니다.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영혼이 그곳에 거하시는 하느님을 그리워하는 아름다운 도성, 하느님께 선택된 민족으로서 자부심을 갖게 하는 도성입니다.

 

키루스 칙령, 유배민들의 귀환

 

비잔틴 시대에는 예루살렘 남서쪽에 위치한 힌놈 골짜기와 티로페온 골짜기 하단 고원 지대를 ‘시온 산’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자주 언급되는 시온 산은 일반적으로 하느님의 성전이 자리 잡은 예루살렘을 총괄하는 말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이스라엘 민족의 구심점이었기에 유배를 마치고 귀환한 유다인들은 성전과 성벽의 재건에 온 힘을 기울였습니다. 제3이사야서는 이렇게 유배 이후 팔레스티나에 형성된 공동체와 관련됩니다. 예루살렘 도성과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 대한 약속의 성취에 초점을 맞춥니다.

 

페르시아의 황제 키루스는 기원전 539년 바빌로니아를 멸망시키고, 이듬해인 538년 유다인들이 고국으로 돌아가도록 허락하는 ‘키루스 칙령’을 내립니다. 따라서 제3이사야서의 시대적 배경은 유다인들이 유배에서 풀려나 팔레스티나로 귀환하여 성전을 재건하는 페르시아 시대입니다. 이렇게 하여 제2이사야서의 예언이 성취됩니다.

 

귀환 길이 열렸으나 모든 유배민이 고국으로 돌아간 것은 아닙니다. 유배 생활이 어렵기는 했지만 시간이 흘러 유배 2세대가 주류를 이루게 되자 유배지의 삶이 오히려 친근하고 익숙해져 모든 사람이 귀환을 열망하지는 않았습니다. 언어 면에서도 그렇고 경제 면에서도 비옥한 메소포타미아 평야가 팔레스티나 땅보다 살기가 더 수월하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귀환한 유다인 대부분은 야훼 신앙에 열성을 가진 사람이거나 페르시아의 관료로 파견된 이였습니다. 그들은 여러 차례에 걸쳐 고국으로 귀환합니다.

 

키루스 칙령이 포고된 직후인 기원전 538년에 세스바차르의 인도 아래 소수의 유다인이 귀환합니다. 그 뒤 기원전 520년경에 즈루빠벨의 지도하에 귀환합니다. 즈루빠벨은 키루스 임금의 후계자인 캄비세스(기원전 530-522년)가 유다 총독으로 임명한 사람입니다. 즈루빠벨과 귀환한 사람들은 그들의 목적대로 제일 먼저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는 일에 착수합니다. 페르시아는 이집트의 공격에 대비할 최전선이 예루살렘이었기 때문에 예루살렘 성을 재건하는 데 인색하지 않았습니다.

 

페르시아 임금 다리우스 1세(기원전 522-486년)는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도록 허락하는 칙령을 선포합니다. 총독인 즈루빠벨과 대사제 예수아가 온 힘을 다하여 애쓴 결과 기원전 515년 성전 재건이 이뤄집니다. 기원전 445년에는 느헤미야가 페르시아의 군사 및 다른 유다인 관리들과 함께 파견됩니다. 그의 가장 큰 목적은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고 성전 예배를 개혁하는 일이었습니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에 당도하여 주변의 반대와 방해를 무릅쓰고 단기간에 예루살렘 성벽 재건을 완성하였습니다. 그 후 페르시아 궁정에서 서기관으로 근무하던 에즈라가 5천 명 정도의 유다인과 함께 기원전 458년과 398년 사이에 귀환합니다. 이처럼 귀환은 한 번에 이루어지지 않고 인도자가 바뀌면서 네 차례에 걸쳐 시행되었습니다.

 

열정적인 야훼 신앙을 가진 귀환자들이 돌아왔을 때 팔레스티나에는 유배의 공백을 메우며 살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유다 땅에 이미 자리 잡고 살던 사람들은 귀환자들이 돌아와 주인 행세를 하는 모습이 ‘굴러 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내는 것’ 같아 보여 반감을 드러냈습니다. 귀환자들은 그들이 올바로 신앙 생활을 하지 않는다고 판단하여 그들을 경시하였습니다. 따라서 귀환자들과 그곳에 살던 현지인들은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2이사야서가 바빌로니아에서 유배 생활을 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이야기인 반면, 제3이사야서는 현실의 어려움으로 인해 갈등하고 분열하는 상황에서 좌절과 실망에 빠진 유배 이후의 공동체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입니다.

 

제3이사야서는 귀환 후 겪는 갈등과 투쟁을 반영하듯 빛과 어둠, 축복과 저주, 구원과 심판 등 상반되는 두 이미지를 대비시킵니다. 고국으로 귀환했으나 공동체의 첨예한 대립으로 암담하기만 한 현실에서 예언자는 오히려 희망을 제시합니다. 그가 제시한 이 희망의 원천은 이스라엘을 떠나지 않은 하느님의 권능이 마침내 이스라엘을 회복시키리라는 믿음에 근거합니다.

 

새로운 공동체(56-59장)

 

제3이사야서의 서두를 여는 56,1-8은 뒤에 나오는 66,15-24과 짝을 이루며 새롭게 형성될 공동체의 구성원이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 제시합니다. 하느님의 백성이 될 수 있는 길을 야곱의 후손으로 제한하지 않고 하느님을 섬기는 만민에게 열어 놓습니다. 56장이 “정의를 실천하여라”는 말씀으로 시작되는 것도 하느님의 구원을 체험한 사람들과 하느님을 섬기는 백성은 그에 맞춰 부끄럽지 않게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따르려는 이스라엘 공동체가 합당하게 살아갈 다른 예로 ‘참된 단식’을 알려 줍니다.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단식은, 자유를 잃은 이에게 자유를 찾아 주고, 배고픈 이에게 먹을 것을 주는 것입니다(58,6-7 참조). 이는 예배와 의식(儀式)이 진실한 마음을 담은 행동으로 실현되어야 함을 일깨워 줍니다.

 

이렇듯 공정을 지키고 정의를 실천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느님의 백성’에 속할 수 있는 새로운 시대가 도래합니다. 이는 예루살렘(시온) 재건을 위해 새로운 공동체를 만드는 일을 암시하는 것으로 유배 이후 공동체의 성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율법은 이스라엘 공동체에 속하는 것을 금할 뿐 아니라 예배의 기회마저 주지 않던 이방인과 고자를 구체적으로 예로 들며, 새 시대에는 거룩한 백성에 속하지 못하던 사람들도 하느님께 와서 순종하면 받아들이겠다고 혁신적으로 표현합니다. 이제 새롭게 형성할 공동체는 ‘선민(選民)’이라는 특권 의식에 젖었던 과거의 폐쇄된 집단이 아니라 만민을 위해 열린 공동체입니다. 이로써 이방인이라도 믿음과 순종을 통해 하느님의 백성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의 싹을 보여 줍니다.

 

일어나 비추어라(60-62장)

 

62장에서는 예루살렘이 의인화되어 나타나며, 예루살렘의 회복을 넘어서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모습을 표현합니다. 예루살렘은 여러 차례 새로운 이름으로 불리었지만, 오늘날까지 그 원래 이름이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 불립니다. 60,1-3에서는 이러한 고도(古都) 예루살렘이 정의와 평화를 이룩하여 만국의 빛이 되라고 촉구합니다. 그러나 빛의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먼저 회개해야 합니다. 새로운 하느님 백성을 형성하기 위해 회개가 꼭 필요하기에 조건 없이 은혜를 선포한 제2이사야서와 달리 제3이사야서는 회개를 강조합니다. 회개한 사람들이 이루는 새로운 공동체의 중요성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사야는 여기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고 예루살렘의 머리 위에 주님의 영광의 빛이 떠올랐으니 그 빛을 받아 일어나 비추라고 선포합니다. 이는 정의와 평화를 이룩하려는 하느님의 역사(役事)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만국의 빛이 되어야 하며, 그렇게 되기 위해 제2이사야서에서 보여 준 주님의 종의 역할을 묵묵히 감당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새 예루살렘(63-66장)

 

제2이사야서에서 새로운 창조에 대해 예언한 것과 마찬가지로(43,14-21; 45,7.12.18; 48,6 참조), 제3이사야서도 새 창조를 강조하여 “새 하늘과 새 땅”(65,17)이라고 표현합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이 요한 묵시록에서는 ‘세상 끝 날’을 암시하지만(묵시 21,1 참조), 제3이사야서에서는 모든 것을 창조하는 하느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전혀 기대할 수 없던 새로운 창조가 일어나는 새로운 시대를 가리킵니다.

 

65장은 결코 실현될 수 없는 한 예로 ‘이상적인 왕이 통치하는 아름다운 세계’, ‘메시아가 통치하는 평화로운 시대의 이미지’(11장 참조)를 활용하여 새로운 사회를 묘사하고, ‘새 하늘과 새 땅’이라는 새로운 창조와 연결합니다. 늑대와 새끼 양이 함께 살아간다는 예언(65,25 참조)은 실현될 수 없는 이야기 같지만, 이사야는 하느님의 창조 능력으로 강자와 약자가 더불어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줍니다.

 

이렇게 상생(相生)하는 새로운 하늘과 땅의 중심은 예루살렘이며, 민족을 가르는 경계를 넘어 “모든 사람이 내 앞에 경배하러 오리라”(66,23)는 말씀으로 이스라엘 민족뿐 아니라 창조주를 믿는 모든 이가 하느님을 경배하게 될 것이라고 보여 줍니다. 하느님을 경배하는 이들은 하느님께서 계신 예루살렘에서 위로를 받으며 마음의 심연에 평화가 강물처럼 흐를 것입니다.

 

[성서와 함께, 2014년 9월호(통권 462호)]

 

 


 

 

[말씀과 함께 걷는다 – 예레미야서]

배반한 자식들아, 돌아오너라

황미숙 마리루갈다 수녀

 

 

자신의 ‘소명’에 따라 사는 것은 하느님께서 나에게 원하시는 대로 사는 것입니다. 그러니 ‘소명을 실현하는 것’은 창조의 목적에 맞는 삶을 의미합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한 사람들은 두려움과 함께 강한 갈망 또는 열정을 체험합니다. 따라서 외적 난관이 있더라도 부르심을 부인하거나 거부할 수 없게 됩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 중에 하느님께 받은 소명을 실현해 가는 대표적 인물이 아브라함과 모세일 것입니다. 예레미야 역시 인간으로서 겪는 어려움을 딛고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했습니다.

 

역사적 배경

 

예레미야 예언자는 양지에서 평탄하게 산 사람이 아닙니다. 고통스러운 음지에서 자신의 소명을 충실히 실현한 사람입니다. 앞서 만나 본 이사야 예언자에 버금갈 정도로 파란만장하게 살아온 하느님의 사람입니다. 예레 1,1은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약 5km 떨어진 곳에 있는 레위 지파의 도시 벤야민 땅 아나톳에서 예레미야가 사제 힐키야의 아들로 태어났다는 사실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11,21.23 참조). 그가 예언직의 소명을 받기 전에 어떻게 살아 왔는지는 전해 주지 않습니다. 그가 태어날 때 므나쎄 임금이 통치하고 있었는데, 그때는 유다가 친親아시리아 정책을 펴며 온갖 종류의 이교 제의와 관습을 강요한 시기였습니다(기원전 696-642년).

 

예언서의 서두에 “예루살렘 주민들이 유배될 때까지”(1,3)라는 표현이 있는 것으로 보아, 그는 요시야 임금 재위 초기(기원전 627년)부터 예루살렘이 멸망한 후까지 예언 활동을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예레미야는 40년 이상 혹독하게 예언 활동을 한 것입니다.

 

하느님의 눈에서 크게 벗어난 므나쎄 임금이 죽고 그의 아들 아몬이 두 해를 다스린 뒤 죽자, 아몬의 어린 아들 요시야가 왕위를 계승합니다. 요시야 임금은 아시리아가 쇠락하는 시기에 하느님과 맺은 계약을 회복하고자 이교의 제의 장소들을 파괴하는 등 중대한 종교 개혁을 단행합니다.

 

예레미야가 소명을 받을 무렵 아시리아 제국의 속국들은 계속 떨어져 나가고 조공 상납도 중지되었습니다. 마침내 아시리아의 수도 니네베가 바빌론 제국에 포위당하는 와중에 이집트는 시리아와 팔레스티나의 주변국들을 굴복시켜 지역의 지배권을 회복하고자 시도합니다. 이때 파라오 느코와 므기또에서 싸우던 유다 임금 요시야가 전사하고 여호야킴이 왕권을 계승합니다. 요시야 임금이 갑작스럽게 죽자 종교 개혁은 곧바로 중단되었습니다(기원전 609년). 이집트 역시 바빌론 제국에 패하여 시리아-팔레스티나 지역의 지배권을 바빌론에 넘겨주게 되었습니다.

 

유다를 포함한 시리아-팔레스티나의 주변국들은 바빌론의 속국이 된 후에도 국제 정세에서 영향력을 상실한 이집트에 기대어 바빌론의 지배에서 벗어나고자 했습니다. 이러한 어리석은 시도로 바빌론 군대가 처음 예루살렘 성문에 다다랐습니다(기원전 597년). 유다의 여호야킨 임금이 재빠르게 바빌론 제국에 굴복하였기에 예루살렘 성이 공격당하지는 않았으나, 여호야킨은 유다의 지도자들과 함께 바빌론에 유배되었습니다. 바빌론 군대는 떠나기 전에 요시야의 아들 치드키야를 유다의 새 임금으로 세웠습니다. 그러나 복종하지 않는 속국을 엄하게 다루던 바빌론은 치드키야가 충성 맹세를 어기고 도주하자 그를 끝까지 추격해 보복했습니다.

 

치드키야의 불복종으로 예루살렘 성은 공격당하고 성전은 불에 타 사라졌습니다. 이로써 면면히 이어오던 다윗 왕조의 통치는 종말을 고하고, 상당수의 백성이 유배되었습니다. 예루살렘이 파괴되고 성전이 사라진 후 많은 백성은 메소포타미아 지역뿐 아니라 여러 곳에 흩어져 살게 되었습니다. 이렇듯 예레미야는 유다의 마지막 시기에 예루살렘에서 활동했습니다. 말년에 그는 강제로 이집트에 끌려갔고 그 후에는 흔적을 알 수 없습니다(43,5-44,30 참조). 전승에 의하면 이집트에 가서 돌에 맞아 죽었다고 합니다.

 

총 52장으로 구성된 예레미야서의 첫 부분(1-25장)은 유다와 예루살렘의 심판에 관한 신탁이 주를 이룹니다. 두 번째 부분(26-45장)은 예언자의 사명 수행에 관한 이야기와 이스라엘 백성에게 선포되는 구원의 약속을 담고 있으며, 이어 예루살렘이 함락된 후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세 번째 부분(46-51장)은 이방 민족들에 대한 신탁을 담고 있으며, 마지막 52장은 역사 부록부분으로 예루살렘이 함락되는 과정을 보도합니다. 이처럼 다양한 내용을 담은 예레미야서에서 첫 번째로 주목을 끄는 것은 예레미야의 소명 이야기입니다.

 

1,6 아, 주 하느님 저는 아이라서 말할 줄 모릅니다.

 

예레미야의 소명 이야기(1,4-19 참조)는 머리글(1,1-3 참조) 다음에 바로 나옵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에 기꺼이 응답한 이사야와 달리 예레미야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주저하며 회피합니다. 예언자의 소명을 수행하기에 자신이 부적절하다고 역설하며 핑계를 대기도 합니다(1,6 참조). 우리가 예레미야 예언자를 친근하게 느끼는 것은 이러한 인간적 모습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그의 모습이 곧 우리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하느님께서 주시는 소명을 기꺼이 따르고자 하면서도 소명을 수행할 수 없을 것 같아 주저합니다.

 

예레미야의 소명 이야기는 하느님의 예언자로서 사명을 수행할 힘이 그의 능력이 아니라 순종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분명히 말해 줍니다(1,7ㄴ 참조). 먼저 예레미야는 하느님의 말씀이 그에게 내렸다고 진술하여 예언직의 기원을 하느님께 두고, 그가 하느님께서 보내신 참된 예언자임을 밝힙니다.

 

그러면 하느님께서는 언제부터 예레미야를 당신의 사람으로 부르셨을까요? “모태에서 너를 빚기 전에 나는 너를 알았다. 태중에서 나오기 전에 내가 너를 성별하였다. 민족들의 예언자로 내가 너를 세웠다”(1,5). 하느님께서는 네 가지 동사(빚다, 알다, 성별하다, 세우다)를 나열하시며 예레미야가 기억하기 전부터 그를 불렀다고 하십니다. 이는 예레미야가 당신 앞에 설 때까지 오랫동안 정성껏 돌보셨다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자신의 의지에 앞서 하느님의 돌봄이 있었기에 부르심에 응답한 것입니다.

 

3,14 돌아오너라. 주님의 말씀이다. 내가 너희의 주인이다.

 

이어지는 2장의 시작 부분은 절절한 사랑을 고백하는 분위기를 느끼게 합니다. 이는 마치 호세아 예언서와 유사합니다. 이스라엘이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광야에서 순수하고 온전한 사랑으로 하느님을 따르고 응답하던 시절을 회상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회상의 목적은 현재 이스라엘 백성이 우상 숭배에 빠져 하느님과의 계약을 저버리고 타락의 길을 가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기 위해서입니다.

 

여기서 예레미야는 이스라엘의 두 가지 잘못을 지적합니다. ‘생수의 원천이신 하느님을 저버리고 계약을 어긴 잘못’과 ‘물이 고이지 못하는 갈라진 웅덩이를 판 것’입니다. 이는 그들이 우상 숭배에 빠졌다는 뜻입니다.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는 궁극의 목적은 ‘심판’이 아니라 ‘회개’입니다. 따라서 예레미야는 7장에 진술되는 ‘성전 설교’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회개할 것을 촉구합니다.

 

아시리아의 침입으로 예루살렘 성전은 풍전등화의 위기를 맞지만, 산헤립이 성전 침공을 포기하고 물러가자 백성 사이에 ‘성전 불가침’에 대한 미신이 강한 환상으로 남았습니다. 더욱이 요시야 임금의 개혁 이후 지방의 성소와 산당들을 제거하고 모든 종교 의식을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거행하도록 하는 ‘예배의 중앙 집중화’가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예레미야는 성전 설교를 통해 성전 불가침설은 거짓이며, 행실을 고치지 않고 ‘이는 주님의 성전이다’라고 하는 것은 공허하다고 강조합니다.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이 무너질 수 없다’는 거짓 환상을 깨뜨리기 위해 ‘실로’를 예로 듭니다(7,14 참조). 에프라임 산지에 위치한 실로는 솔로몬 성전이 세워지기 전 이스라엘 민족의 예배 중심지였습니다. 그곳에 성막이 세워졌고, 사무엘기에 나오는 사제 엘리 시대에는 종교의 중심지로서 매년 중대한 절기마다 순례지가 되었습니다(1사무 1,3 참조). 필리스티아인들에게 계약 궤를 빼앗기고 사제 엘리가 죽은 후, 실로는 종교 중심지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었고 다시는 회복되지 못했습니다.

 

몇 해 전 지리학 수업의 한 과정으로 실로를 답사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자식이 없어 괴로워하던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가 울면서 예배드리러 올라가던(1사무 1장 참조) 실로를 떠올리며 낭만적 풍경을 그려 보았는데, 막상 당도하니 생각보다 훨씬 더 황폐하여 그곳이 한때 이스라엘 민족의 예배 중심지였다는 사실을 믿기 어려웠습니다. 예레미야는 과거의 예배 중심지로서 영화를 누리던 실로가 폐허가 된 것을 언급하면서 예루살렘 성전도 난공불락을 보장할 수 있는 곳이 아니며 성전이 파멸의 운명에 놓여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하여 예루살렘 성전은 영원하리라는 환상에 젖어 회개를 미루지 말고 서둘러 주님께 돌아오라고 호소합니다.

 

[성서와 함께, 2014년 10월호(통권 463호)]

 

 


 

 

[말씀과 함께 걷는다 – 예레미야서]

예레미야의 탄원은 믿음의 고백

황미숙 마리루갈다 수녀

 

 

예레미야 예언서의 독특한 특징 가운데 하나는 예언자의 전기(傳記) 자료가 두드러지게 많다는 점입니다. 예레미야가 어머니 배 속에서 나오기 전에 이미 성별되었다고 진술하는 시작 부분부터 동족에 의해 강제로 이집트로 끌려간 것을 다루는 마지막 부분까지 그의 삶 전체가 예레미야서에 담겨 있습니다. 따라서 예레미야 예언자의 소명 역시 그가 존재하기 시작한 첫 순간부터 그의 삶 전체를 포괄합니다.

 

예레미야는 온몸을 바쳐 예언직에 투신했습니다. 그리하여 그가 하느님께 올린 탄원과 기도, 예언직을 수행하며 겪은 고통과 내면 체험은 그의 온 생애가 예언직에 봉헌되어 예언서를 형성했음을 보여 줍니다. 이러한 예레미야서를 읽을수록 예언자가 자신의 소명을 성취하는 일은 일정 기간만 행하고 그치는 한시적 업무가 아니라, 자신의 인격 전체를 투신하여 종신토록 수행해야 할 거룩한 사명이라고 이해하게 됩니다.

 

예레미야의 삶 전체가 예언직에 봉헌되었다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진술하는 것은, 그가 전한 말씀뿐 아니라 그 말씀의 전달자를 중시하고 그에게 크게 관심을 두었음을 의미합니다. 그가 예언직을 수행하며 토로한 솔직한 고백과 내면 체험을 꼽자면 11-20장에 등장하는 다섯 편의 ‘고백록’(11,18-12,6; 15,10-21; 17,12-18; 18,18-23; 20,7-18 참조)일 것입니다. 한 예언자의 고뇌와 그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고백을 안다는 것은 그가 전한 예언을 아는 것이기도 합니다. 신앙 체험을 살펴볼 수 있는 다섯 편의 고백록을 통해 예레미야라는 사람과 그가 전한 말씀을 좀 더 깊이 이해해 보고자 합니다.

 

예레미야의 첫 번째 고백록(11,18-12,6 참조)

 

‘고백’이라는 말을 들으면 마음속에 숨겨둔 절절한 사랑과 굽히지 않는 충정을 상대에게 갖가지 방법으로 전하려는 노력이 떠오릅니다. 고백은 단순히 말로만 전달되지 않고 글과 노래와 춤 등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하느님께 드리는 예레미야의 절박한 고백은 색채가 다소 다릅니다. 탄원과 탄식, 의혹과 신뢰, 감사와 고뇌로 어우러져 마치 ‘탄원 시편’과 유사하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과 계약을 맺어 그분의 백성이 되었으나 그분께 충실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예레미야는 하느님과 그들의 관계를 밝히고, 우상에게 바치는 제사가 그들의 안전을 보장해 주지 못한다는 점과 불충함에 대한 대가로 재앙을 당하리라는 말씀을 선포했습니다(11,4-17 참조). 백성의 불충(不忠)은 예레미야가 전하는 하느님 말씀에 대한 그들의 불순종으로 드러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예레미야가 하느님을 향해 절규하는 첫 번째 고백록은, 두 번에 걸친 탄원(11,18-20; 12,1-4 참조)과 그 탄원에 대한 하느님의 응답(11,21-23; 12,5-6 참조)으로 구성됩니다. 하느님과 예레미야가 대화하는 형식으로 구성된 첫 번째 고백록은, 주님께서 예레미야를 해치려는 적들의 계획을 예레미야에게 알려 주시어 그 계획이 성공하지 못한 데 대한 감사의 고백으로 시작합니다(11,18 참조). 이어 예레미야는 자신이 처한 불의한 상황을 묘사하고 자신을 박해하는 적들의 악한 행동에 대해 탄원합니다. “저는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순한 어린 양 같았습니다”(11,19). 이는 예레미야가 자신은 어린 양처럼 연약하고 순진하며 무죄하고 악의가 없기에 동향인 아나톳 주민들이 그를 없애려는 끔찍한 음모를 꾸밀 줄은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표현입니다.

 

예레미야는 “당신께 제 송사를 맡겨 드렸으니 당신께서 저들에게 복수하시는 것을 보게 해 주소서”(11,20)라고 하느님께 복수를 요청합니다. 이러한 복수 요청은 특이하게도 다섯 편의 고백록에서 모두 나타납니다(11,20; 15,15; 17,18; 18,21-23; 20,12 참조). 이는 예언자를 없애려고 불의한 음모를 꾸미는 이들에게 항거하여 복수하려는 마음을 접은 어린 양처럼 무죄하고 약한 사람이, 누구보다 정의를 사랑하시는 하느님께 의탁하고 신뢰하는 마음으로 토로하는 절규입니다. 하느님께서 불의한 자들에게 행하시는 복수는 곧 정의를 회복하는 것임을 믿기 때문입니다. “어찌하여 악인들의 길은 번성하고 배신자들은 모두 성공하여 편히 살기만 합니까?”(12,1)라는 예레미야의 질문은 ‘왜 착하고 신실한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행복을 누리지 못하고 오히려 악인들이 행복을 누리느냐’는 의미로, 구체적 삶에서 발생하는 문제에 대한 탄원입니다. 이는 현시대에도 하느님께 계속 던지는 질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놀랍게도 두 가지 질문으로 대답하십니다(12,5 참조). 이 응답은 욥 38-41장에 나오는 장면과 유사합니다. 곧 하느님의 심오한 지혜와 섭리를 다 헤아릴 수 없는 인간이 자신의 생각을 훨씬 뛰어넘어(이사 55,8-9 참조) 행해지는 하느님의 계획에 부당하다고, 왜 그러시냐고, 그 이유를 밝히시라고 요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부조리한 현실에서도 하느님을 향한 믿음을 놓치지 않고 사랑과 정의를 끊임없이 실행해야 한다는 것으로, 결국 예레미야의 첫 번째 고백은 ‘믿음’이라는 문제로 종결됩니다.

 

예레미야의 나머지 고백록

 

예레미야는 두 번째 고백(15,10-21 참조)에서 백성을 위해 전구하거나 그들을 위로하지 않습니다. 임박한 심판, 곧 거룩한 도성인 예루살렘의 파괴를 선포하여 사람들에게서 고립과 소외를 당하고 박해받게 된 자신의 운명을 하느님께 탄원합니다. 그런데도 그는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먹었더니 그 말씀이 기쁨과 즐거움이 되었다고 하면서, 자신이 느끼는 참 기쁨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표현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 먼저 ‘그 말씀을 먹어야 한다’는 의미는, 예언자가 하느님의 말씀을 살과 피로 체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예언자는 누구보다 먼저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먹을 뿐 아니라 우상을 버리고 하느님께 돌아가야 한다는 뜻입니다. 하느님께 돌아가는 ‘회개’도 그분께서 도와주셔야 가능하기에 그것조차 하느님께 의탁할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세 번째 고백(17,12-18 참조)은 하느님을 향한 믿음을 보여 줍니다. 앞의 고백록과 달리 하느님의 응답이 나타나지 않은 채, 하느님의 정의가 실현되고 하느님께 구원되기를 희망하며 올리는 탄원만 서술됩니다. 예레미야는 하느님께 ‘치유’와 ‘구원’을 청하는데, 치유와 구원은 회개를 전제합니다. 하느님께 되돌아가는 유일한 길인 회개는 치유와 구원의 길로 접어드는 시작점과 같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무응답은 네 번째(18,18-23 참조)와 다섯 번째 고백록(20,7-18 참조)에서도 이어집니다. 그러므로 예언자는 하느님의 침묵 앞에서 더 깊은 믿음을 보여야 합니다. 다른 고백록과 공통되고 유사한 점이 많은 네 번째 고백에 이어 등장하는 다섯 번째 고백록은 고백록 가운데 예레미야의 소명 설화와 가장 깊은 연관성을 갖고 있습니다. 극렬한 내면의 고통이 잘 표현된 마지막 고백록에서는 예레미야가 자신이 태어난 날을 저주하는 등 상황이 사뭇 장황하게 전개됩니다. 전반부에 묘사된 고백을 보면 예레미야가 소명에 따라 충실히 행한 예언 활동 전체가 시련과 모욕의 연속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극심해진 시련과 고통 속에서 그는 하느님께 강렬하게 부르짖습니다.

 

고백록 전체가 탄원으로 일관하지 않고 신뢰와 감사의 내용도 담고 있지만, 첫 구절부터 하느님의 꾐에 넘어갔다는 한탄으로 시작하여 마지막에는 고뇌가 가득한 탄식으로 마무리됩니다. 예레미야는 하느님의 예언자로서 누구보다 고난과 슬픔을 견디어 내야 한다는 것을 잘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예언직에 대한 거부가 아니라 예언직에 수반되는 어려움과 고통을 탄식의 말로 표현합니다. 이러한 진솔한 탄식은 그의 인간미뿐 아니라 깊은 고뇌까지 느끼게 합니다.

 

고백록에 수록된 탄원과 절규, 의혹과 불안, 신뢰와 감사 등은 예레미야가 소명을 이뤄 가면서 겪는 체험과 위기를 그대로 보여 줍니다. 마지막 고백록뿐 아니라 그 밖의 고백록도 예레미야의 소명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예언자는 사람들이 자신을 거부하고 박해한다 해도 주님의 말씀을 전해야 하는 신분이기에 자신이 원하는 장소와 선호하는 사람들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보내시는 곳을 찾아가야 합니다. 따라서 예언자는 하느님을 온전히 신뢰해야 합니다.

 

예레미야가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소명에 투신하여 겪은 고난과 박해는 우리에게도 가능한 길입니다. 그는 죽음으로 몰아넣는 박해를 겪으면서도 자기에게 몰입하지 않고 하느님만 바라보았기에 탄원할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예레미야의 탄원은 오히려 ‘믿음의 고백’이 됩니다. 예레미야처럼 하느님을 온전히 신뢰할 때 고통 가운데 호소하는 우리의 탄원도 다른 차원으로 도약하는 믿음이 될 수 있습니다.

 

[성서와 함께, 2014년 11월호(통권 464호)]

 

 


 

 

[말씀과 함께 걷는다 – 예레미야서]

이스라엘의 회복과 구원

황미숙 마리루갈다 수녀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예언자는 크게 세 가지 문제를 다룹니다. 전쟁 문제, 통치자인 임금과 관련한 문제, 일반 백성에 관한 문제입니다. 그중에서 예언자가 특히 강조하고 상기하는 것은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은 계약을 맺었기에 돌이킬 수 없는 관계’라는 점입니다. 과거를 지나간 시간으로 묶어 두지 않는 회상(回想)은 과거를 현재화합니다. 그래서 하나하나 따로 떨어진 점처럼 발생한 일과 흘러간 시간이, 하느님에 의해 과거로부터 계속 이어져 왔음을 한눈에 꿰뚫게 합니다. 이러한 체험은 성경의 세계뿐 아니라 오늘날 우리의 현실에서도 종종 느낄 수 있습니다.

 

과거는 현재의 디딤돌

 

미국 스탠포드 대학교의 2005년 졸업식에서 스티브 잡스가 연설하는 장면을 지난 해에 우연히 보았습니다. 그는 졸업생들에게 인생의 전환점들을 잇는 일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대학을 중퇴하고 우연히 서체를 공부한 경험, 친구와 컴퓨터 사업을 시작한 일 등 인생에서 일어난 크고 작은 사건이 관련성 없는 점같이 보였는데, 10년 후에 돌아보니 너무나도 또렷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볼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살면서 일어나는 일들이 앞으로의 인생에서 어떻게 연결될지 알 수 없으므로, 작은 계기가 미래와 연관될 것을 확신하라고 당부했습니다. 자신 앞에 놓인 작은 일들이 미래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된다고 믿는다면, 자신감을 갖고 최선을 다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연관성 없이 따로 존재하던 점들이 구슬을 꿰듯 하나의 선으로 연결되는 체험을 한 사람이라면 잡스의 말에 공감할 것입니다.

 

다시 예레미야 예언자 이야기를 하자면, 전에도 말했듯이 예레미야는 생전에 사람들에게 지탄을 받고 고달프게 산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전한 하느님의 말씀이 당장 이루어지지 않아 그 진위를 모르는 무지몽매한 동족에게서 배척을 당하고 거짓 예언자로 몰리기도 했습니다(7,25-28 참조). 28장을 보면 거짓 예언자인 하난야와 대립하는데, 예레미야는 유배가 70년 후에 끝날 것이라고 예언하였지만 하난야는 불과 2년 후에 끝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예레미야는 하난야의 예언이 실현되지 않을 뿐 아니라 거짓 예언을 선포한 하난야가 그해에 죽을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28,16 참조).

 

훗날 그의 예언은 그대로 이루어졌지만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은 예레미야가 선포한 예언을 귀담아 듣지 않고, 세월이 흐르고 나서야 그 예언이 참된 하느님의 말씀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그들은 예레미야가 전해 준 하느님 백성에 대한 경고와 심판, 이스라엘의 회복과 구원에 대한 말씀이 하나로 연결되는 말씀임을 뒤늦게 깨닫습니다.

 

희망의 서곡

 

일찍이 예레미야는 전쟁 포로의 상징인 멍에를 자신의 목에 걸어 고국 유다의 멸망을 예고했습니다(27,1-11 참조). 그 예고대로 그는 고국이 쇠퇴하여 바빌론에 의해 포위되고 멸망당하는 암울한 상황을 목격했습니다. 이러한 현실에서 메시아적 구원자에 대해 매우 길게 서술한 이사야와 달리 예레미야는 메시아적 구원자에 대해 거의 언급하지 않으면서 이스라엘의 영광스러운 회복을 말합니다.

 

이스라엘의 구원 신탁이 집중적으로 등장하는 30-33장은 새 계약, 이스라엘의 회복, 새 출발, 주님의 영원한 사랑, 미래의 영광스러운 회복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이 주제가 비록 예레미야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지만, 새 계약의 관점에서 구원과 회복에 관한 중요한 메시지를 다루는 것입니다.

 

영광스러운 회복

 

예언서를 읽다 보면 무시무시한 심판의 말씀 다음에 용서와 회복의 말씀이 언급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는 심판이 아니라 회복에 강조점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심판의 말씀이 심판으로 끝나지 않고 회개의 길로 들어서게 하여, 마침내 용서와 구원으로 이끌기 위한 전주곡처럼 울려 퍼지는 것입니다.

 

예레미야서는 초반부터 계약에 대한 이스라엘의 불충실을 흙탕물이 된 물웅덩이에 비유합니다. 그들이 생수의 원천을 버리고 물이 고이지 못하는 갈라진 저수 동굴을 팠다는 비유로 그들이 저지른 우상 숭배를 지탄합니다(2,13 참조). 이어서 다른 이방신들을 숭배하며 하느님을 저버린 그들의 죄상을 불륜에 비유합니다. 그러나 배반한 아내가 사랑하는 남편에게 돌아가듯 파기된 관계가 회복되도록 하느님께서 여전히 그들을 부르신다고 묘사합니다(3,20-22 참조). 이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이스라엘은 우상을 버리고 하느님과 맺은 계약을 갱신하는 표시로 묵혀 둔 땅을 갈아엎듯 마음의 할례를 받아야 했습니다(4,1-4 참조). 예레미야는 우상 숭배로 하느님과 멀어진 그들에게 잘못된 길을 버리고 하느님께 돌아와 이웃을 사랑하고 주님만 섬기는 데 온 힘을 다하라고 권고합니다.

 

예레미야는 회복의 희망을 저버린 이스라엘 백성에게 “너희가 바빌론에서 일흔 해를 다 채우면 내가 너희를 찾아, 너희를 이곳에 다시 데려오리라는 은혜로운 나의 약속을 너희에게 이루어 주겠다. 나는 너희를 위하여 몸소 마련한 계획을 분명히 알고 있다. 주님의 말씀이다. 그것은 평화를 위한 계획이지 재앙을 위한 계획이 아니므로, 나는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고자 한다”(29,10-11)는 주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이는 하느님께서 유배라는 파멸의 어둠에 이스라엘을 방치해 두지 않으시고, 어둠의 그늘 밑에 있는 그들에게 찾아오시어 새 계획을 시작하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예레미야는 70년이 지난 후에 이스라엘 백성이 고국으로 귀환하리라고 예언(16,14-15; 25,12; 29,10; 50,4-5 참조)할 뿐 아니라, 하느님의 거룩함을 반영하는 새 예루살렘의 모습을 내다보고(31,23-25 참조) 백성이 예루살렘을 ‘주님은 우리의 정의’라는 이름으로 부를 것이라고 말합니다(33,16 참조). 예루살렘은 회복된 민족의 중심이 될 것이고, 그 도성은 완전히 새롭게 건설되어 모든 지역이 거룩한 땅이 되리라고 예언합니다(30,17; 31,38-40 참조). 하느님의 복을 받은 예루살렘의 명성은 널리 퍼질 것이고, 하느님의 도성 예루살렘은 주님의 영광을 세상 모든 민족들에게 전할 것입니다(33,9 참조).

 

영원한 사랑의 표지인 새 계약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과의 계약이 지닌 중대함과 귀중함을 유배지에서 깨닫습니다. 그들이 유배에서 풀려나 귀환한 것은 이집트 탈출 같은 새로운 이정표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죄를 용서받았기 때문에 더 슬퍼할 필요가 없습니다(33,6-8 참조). 영적 치유를 경험하고 평화와 번영의 복을 누릴 이 회복은 공정과 정의를 실행하는 메시아 시대를 암시하는 것으로, 무능한 임금 대신에 다윗 같은 이상적 통치자가 나타날 것임을 의미합니다.

 

사실 예레미야 시대의 다윗 왕조 통치자들은 요시야 임금을 제외하고 모두 그릇된 행동으로 하느님의 마음에 들지 못하였습니다(2열왕 23,32.37; 24,9.19 참조). 여호야킨의 자손들 가운데에서는 다윗 왕좌에 앉아 다스릴 사람이 나오지 않으리라(22,28-3 참조)고 하느님께서 선언하실 정도로 하느님을 기쁘게 하는 통치자가 되지 못한 것입니다. 유다의 마지막 임금 네 명 중 셋은 바빌론으로 끌려가는 수치를 당했습니다(2열왕 23,33-34; 24,15; 25,6-7; 예레 52,31-34 참조). 그러나 새로운 왕을 세워 다스리겠다는 하느님의 약속 때문에 다윗 왕조의 수치는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다시 일으켜 주실 통치자는 불의한 통치자와 달리 백성을 보호하고 정의와 사랑을 실행하여 사람들은 그의 이름을 ‘주님은 우리의 정의’라고 부를 것입니다(23,6 참조).

 

따라서 이 새 날과 새 시대에는 모든 사람의 마음에 새 계약이 새겨지고, 하느님의 법이 내면화되어 주님을 아는 지식이 차고 넘쳐 복을 누릴 것입니다(31,31-34 참조). 새 계약에 대한 약속은 예레미야가 미리 보여 준 이스라엘의 영광스러운 회복입니다(31,31-37 참조). 하느님께서는 시나이 계약에서 당신에 대한 순종과 충성을 요구하셨지만, 새 계약에서는 당신에게서 멀어지려는 백성에게 새 마음을 부어 주시어 당신에 대한 경외심을 심어 주고 백성이 다시는 돌아서는 일이 없도록 하실 것입니다. 곧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을 변화시키기에 옛 계약과 변별되는 새 계약인 것입니다(32,40 참조).

 

또 새 계약에는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다시는 버리지 않으실 것이라는 약속도 포함되어 있어 이스라엘에 대한 주님의 영원한 사랑을 드러냅니다. 딱딱하게 굳은 마음을 변화시켜 주시겠다고 약속한 새 계약은 주님께서 주시는 사랑의 법으로 인간의 살아 있는 마음에 새겨집니다(31,33 참조). 성령의 은총으로 새 계약을 맺은 우리도 사랑이 충만한 새 마음으로 거듭나야겠습니다.

 

[성서와 함께, 2014년 12월호(통권 465호)]

 


 

* 황미숙 수녀는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도회 소속으로 영원한도움 성서연구소에서 소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