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서 해설] (1) 이사야서라는 거대한 광산 앞에서 안소근 실비아 수녀
“성경 전체에 나오는 모든 것과 인간의 혀가 말할 수 있는 모든 것, 그리고 인간의 이해력이 받아들일 수 있는 모든 것이 이 책에 담겨 있습니다”(성 예로니모의 《이사야서 주해》 서문에서).
이사야서는 섣불리 다가가기가 두려울 만큼 방대한 책입니다. 그래서 성 예로니모는, “내가 주님의 모든 신비를 포함하는 이 성경 책의 내용을 몇 마디 말로 다 취급하려 한다고 생각해선 안 됩니다”라고 말합니다. 이사야서는 분량만 많은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도 오랜 기간에 걸쳐 형성된 책으로, 이스라엘 역사에서 중요한 여러 사건을 증언합니다. 신학적으로도 큰 비중을 차지하며, 신약성경에 미친 영향도 지대합니다. 구약의 여러 예언서 가운데 한 권만 공부하려 한다면 가장 좋은 방법이 이사야서를 공부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이사야서가 유배 전, 유배 중, 유배 후의 세 시기를 전부 거치면서 형성되어 각 시대 예언의 특징을 모두 나타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바빌론 유배 기간만 오십 년입니다(기원전 587-538년). 한 사람이 유배 전부터 유배 후까지 예언자로 활동했으리라고 생각하기는 어렵습니다. 더구나 이사야가 예언자로 부르심을 받은 때가 우찌야 임금이 죽던 해 곧 기원전 740년경이라고 한다면(이사 6,1 참조), 그가 유배 때까지 살 수도 없습니다. 결국 이사야서는 한 사람이 쓴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전통적으로 한 사람이 이 책을 모두 썼다고 생각했습니다. 신약성경에서도 마찬가지로 예를 들어 마태오 복음서에서는 이사 40,3과 53,4을 인용하면서, 루카 복음서에서는 이사 61,1을 인용하면서 그것을 이사야 예언자의 말이라고 합니다. 40장 이후에는 이사야 자신이 쓴 것이 없는데도, 이를 구분하지 않는 것이지요. 이러한 견해가 18세기까지 정설이었습니다. 물론 예외는 있습니다.
11세기 이븐 에즈라(Ibn Ezra)나 17세기 바뤼흐 스피노자(Baruch Spinoza)의 경우 이 책이 한 사람에 의해 작성된 것이 아니라는 견해를 내놓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극소수의 예외적인 주장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는, 66장 전체가 “아모츠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의 임금 우찌야, 요탐, 아하즈, 히즈키야 시대에”(이사 1,1) 쓴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렇다면 이사야서 전체가 기원전 8세기를 배경으로 하는 셈입니다.
크게 세 시대로 구분되는 이사야서
19세기에 이르러서는 이 책이 한 사람에 의해 작성된 것이 아니라는 견해가 점점 강해졌습니다. 무엇보다 문제가 되는 것은 시대적 배경이었습니다.
이사야서 39장에는 히즈키야 임금이 병에 걸렸다가 나았을 때 바빌론에서 사절단이 찾아온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그들이 다녀간 후 이사야는 히즈키야를 만나, 히즈키야가 사절단에게 보여 준 왕궁의 모든 기물을 바빌론에게 빼앗기게 될 것임을 선고합니다. 유다 왕국의 멸망을 예고한 것이지요. 그런데 여기에서 이야기가 뚝 끊깁니다. 히즈키야 이후의 다른 임금들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고, 이사야도 더 이상 등장하지 않습니다.
이어지는 40장에서는 갑자기 어조가 밝아지면서 “위로하여라, 위로하여라, 나의 백성을”(40,1)이라는 말로 유배에서 해방될 때가 되었음을 알립니다. 유다 왕국이 무너질 때까지 역사와 유배 초기에 대한 내용은 없습니다. 39장과 40장 사이에 백오십 년 이상의 시대 격차가 있습니다. 또 39장까지 유다 왕국을 위협하는 외세는 아시리아인데 40장부터는 바빌론이 문제가 됩니다. 바빌론을 무너뜨린 페르시아 임금 키루스의 이름이 정확하게 언급되기도 합니다(44,28; 45,1). 키루스는 기원전 6세기 후반 인물입니다. 그래서 1-39장과 40-66장은 서로 다른 시대에 작성되었다는 이론이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40-66장도 다시 두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40-55장에서는 바빌론을 떠나 고국으로 돌아가는 것에 대해 주로 이야기하는 반면, 56-66장은 이미 이스라엘 땅에 돌아와 있는 상태에서 말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56장 이후로는 시온의 재건에 대해 말하며 바빌론보다 유배에서 돌아온 이들의 공동체 내부 문제들이 주제로 다뤄집니다.
지금은 이렇게 이사야서를 세 부분으로 나누는 견해를 거의 모든 이가 받아들이기 때문에, 《성경》에도 1장에는 “이사야 예언서 제1부”, 40장에는 “이사야 예언서 제2부”, 56장에는 “이사야 예언서 제3부”라고 표시되어 있습니다. 대략 이사야 예언서 제1부(1-39장)는 기원전 8세기, 제2부(40-55장)는 유배 중, 제3부(56-66장)는 유배 이후에 작성되었다고 봅니다. 그러나 조심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앞부분에도 더 늦은 시기에 만들어진 본문이 삽입되어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예로 이사 24-27장의 경우, 이사야 예언서 제1부에 속해 있지만 제2부보다도 늦은 시기의 것으로 앞쪽에 끼어들어 온 것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자동적으로, 몇 장이라는 것만 보고 시대를 단정 지을 수는 없습니다.
씨앗처럼 뿌려진 하느님의 말씀
이사야서가 모두 이사야가 쓴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당황스러우세요? 교회도 처음에는 당황스러워했습니다. 특히 20세기초 교회는 근대주의의 영향으로 이성적인 학문의 도구로 신앙을 파헤치는 것을 경계했고, 그래서 나날이 발전하던 성경 연구에 대해서도 상당히 조심스러운 입장을 취했습니다. 그러한 맥락에서 교황청 성서위원회는 1908년에 이사야서의 저자가 한 사람이 아니라는 주장은 근거가 불충분하다고 선언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1940년대 이후에 들어와서는 이서야서의 세 저자 이론을 거의 기정사실로 받아들이지요.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는, 왜 후대 사람들이 이사야 예언자의 책에 손을 대었는가를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처음에는 “아모츠의 아들 이사야”(이사 1,1)라는 인물이 이사야서를 썼습니다. 그가 쓴 책에는 하느님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었고, 그것은 살아 있고 힘이 있는 말씀이었습니다(히브 4,12 참조). 그런데 시간이 흘렀습니다. 시대가 달라졌고 이스라엘 백성이 처한 상황도 달라졌습니다. 과거에 이사야 예언자가 예고했던 심판은 이미 이루어졌고, 유다 왕국은 멸망했습니다. 그러면 이제, 이사야 예언자가 기록했던 말씀은 어떻게 될까요? 이백 년 전에 선포된 말씀을 흠 없이 보존하면 그것으로 전부일까요?
후대의 편집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이 살아 있다면, 이백 년 전 아모츠의 아들 이사야 시대에만 살아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그들의 시대에도 살아 있어야 하고, 그래서 그 말씀은 지금도 의미 있는 말씀으로 울려 퍼져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과거에 예언자가 선포한 말씀을 그들의 시대에서 새롭게 해석했습니다.
이 모든 작업은 성령의 영감 아래 이루어졌습니다. 예언서에서 성령의 영감은 예언자가 자신의 입으로 직접 한 말에만 작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의 여러 책에서, 저자 문제와 경전성 문제는 별개입니다. 복음서에서 예수님께서 직접 하신 말씀만, 서간들 가운데 바오로 사도가 직접 쓴 것만 성령의 감도로 기록된 성경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예언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의 영감은 이사야라는 한 사람에게만 한정되지 않습니다. 살아 있는 하느님의 말씀이 이사야를 통하여 이 세상에 들어오고, 그 말씀이 지닌 생명력은 여러 세기를 거치면서 자라납니다. 씨앗처럼 뿌려진 하느님의 말씀이 자라나 나무가 된 것이 지금 우리 앞에 있는 이사야서입니다.
이사야서는 그 오랜 과정을 거치면서 풍요로워졌습니다. 그리고 이사야서라는 책이 완성된 후에도, 특히 신약성경을 통해 다시 새롭게 해석되면서 더욱 충만한 의미를 지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성 예로니모는 첫머리에 인용한 《이사야서 주해》 서문에서, “사실 이사야서에는 주님이 동정녀에게서 탄생하신 임마누엘로, 놀라운 여러 가지 일과 기적을 행하시고 죽으시고 묻히셨으며 부활하신 분으로, 그리고 만백성의 구세주로 예언되어 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이사야서는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땅 속에 층층이 만들어진 광산과 같습니다. 이제 그 광산의 입구에 발을 들여놓아 봅시다.
* 안소근 수녀는 성 도미니코 선교 수녀회 소속으로 로마 교황청 성서대학에서 수학하였고, 현재 대전가톨릭대학교와 가톨릭교리신학원에서 가르치고 있다. 《아름다운 노래, 아가》, 《굽어 돌아가는 하느님의 길》 등을 썼고, 《약함의 힘》, 《예수님은 누구이신가》 등 여러 책을 옮겼다.
[성서와 함께, 2016년 1월호(통권 478호)]
[이사야서 해설] “아모츠의 아들 이사야”(1,1) 안소근 실비아 수녀
요즘 나온 책들은 대개 표지 안쪽에서 저자를 소개합니다. 그런데 이사야서에는 이사야를 소개하는 구절이 없습니다. 추리 소설을 읽듯이 이사야서 본문을 읽으면서 이사야에 관한 정보를 어느 정도 찾아낼 뿐입니다. 그 첫 번째 정보가 이사야서 첫 구절의 말씀입니다.
“아모츠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의 임금 우찌야, 요탐, 아하즈, 히즈키야 시대에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하여 본 환시”(1,1).
이사야는 누구인가?
여기 나오는 “아모츠의 아들”이라는 표현은 우리에게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어떤 사람을 구별할 때 누구의 아들, 누구의 손자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하는데 꼭 그 아버지가 유명한 인물이어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이어서, 그가 예언자로 활동한 때가 “우찌야, 요탐, 아하즈, 히즈키야 시대”라고 말합니다. 기원전 8세기입니다. 언제 태어났는지는 알 수 없고, 예언자로 활동한 시기만 어느 정도 알아볼 수 있습니다. 6장에서 말하듯이 그가 “우찌야 임금이 죽던 해에”(6,1) 부르심을 받았다면 기원전 740년의 일이고, 36-37장에 기록되어 있는 산헤립의 침공은 히즈키야 시대인 기원전 701년에 벌어진 사건입니다. 히즈키야 시대의 일들이 약간 더 소개된 38-39장에서 이사야에 대한 기록이 끝나는 것을 보면, 이사야는 그 무렵까지 예언자로 활동했던 것 같습니다.
본문은 그의 출생지나 출신 배경에 대해서도 명확하게 말하지 않습니다. 이사야서의 내용과 문체를 통해 추정해 본다면 교육을 상당히 받은 고위층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는 임금이나 대신들을 어렵지 않게 만납니다. 길을 가다가 임금과 만나서 이야기하는 것,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요. 예루살렘을 중시하고 하느님께서 다윗을 선택하셨음을 강조하는 것만 보아도 그가 예루살렘 귀족 출신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는 결혼했고 적어도 아들 두 명을 두었습니다.
좀 더 이야기해 보면, 그가 예언자로 부르심 받은 때를 정확히 규정하는 데 다소 문제가 있습니다. 6,1은 “우찌야 임금이 죽던 해”인 기원전 740년에 그가 부르심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1,1과는 달리 우찌야 임금 때 예언자로 활동했을 가능성이 거의 없습니다. 그것이 아니라면 6장의 소명담 이전에 이사야가 이미 활동을 시작했어야 합니다. 이런저런 추측을 해볼 뿐, 더 이상은 단정 지을 수 없습니다. 어떤 경우이든, 이사야서에 기록된 말씀 가운데 확실하게 우찌야 시대의 것으로 알아볼 수 있는 말씀은 없습니다. 이사야 예언서 제1부에 주로 등장하는 임금들은 아하즈와 히즈키야이고, 이사야가 정치적 문제에 대해 발언하고 개입한 때도 주로 이 시기입니다.
이사야가 활동한 시대의 상황
기원전 740년부터 40년간, 이사야는 예언자로 활동했습니다. 이 시대의 상황을 한 단어로 요약하면, ‘아시리아’입니다. 이런 저런 전쟁과 나라와 인물들이 등장하겠지만, 이사야 예언자뿐만 아니라 기원전 8세기의 북 왕국 이스라엘과 남 왕국 유다에 생긴 모든 문제의 근원은 아시리아입니다. 나날이 팽창하던 아시리아의 세력이 얼마만큼 커졌느냐에 따라 국제 정세가 변했습니다. 이사야가 활동을 시작하기 전인 기원전 745년에 아시리아 임금이 된 티글랏 필에세르 3세는 강력한 군주로서, 무엇보다 팽창 정책을 추진했습니다.
이스라엘과 유다 가운데, 아시리아의 영향을 먼저 받게 된 쪽은 이스라엘입니다. 위협을 느낀 이스라엘은 아람(시리아)과 동맹을 맺어 아시리아에 맞서려 하지만 역부족입니다. 유다 임금이었던 아하즈는 여기에 동조하지 않고 오히려 아시리아와 손을 잡으려 합니다. 이에 아시리아는 아람을 멸망시키고 이스라엘도 공격합니다. 히즈키야 시대에 와서는 아시리아가 이스라엘을 멸망시키기에 이릅니다(기원전 722년). 아시리아의 도움을 받은 유다도 아시리아에 종속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유다가 고분고분히 아시리아를 섬기려 하지 않자, 아시리아는 유다를 공격합니다. 기원전 701년에 유다를 침공한 산헤립은, 예루살렘을 함락시키지 못했으나 그 밖의 온 땅을 쑥밭으로 만들어 놓습니다.
이사야 예언서 제1부의 구조
이 시기에 이사야가 전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는 이사야 예언서 제1부는 아래와 같이 몇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주석 성경》 참조).
1-12장 이스라엘과 유다에 관한 예언들 13-23장 다른 민족들에 대한 신탁들 24-27장 소위 ‘이사야의 묵시록’ 28-33장 이스라엘과 유다에 대한 약속과 위협을 담은 신탁들 34-35장 또 다른 묵시록적 단편들 36-39장 산헤립의 침공 당시 이사야의 활동
그런데 조심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1-39장이 모두 아모츠의 아들 이사야가 선포한 말씀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여기에도 나중에 덧붙여진 부분이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24-27장과 34-35장은 기원전 8세기의 것이 아니고 분명 더 늦은 시기에 삽입된 부분입니다. 실제 이사야 예언자와 연관된 부분이 많다고 여겨지는 대목은 주로 1-12장입니다. 이 부분은 천천히 읽을 것입니다. 중요한 본문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13-23장에 나타난 다른 민족들에 대한 신탁에는 서로 다른 시기의 본문들이 섞여 있습니다. 예컨대, 주로 아시리아에게 심판을 선고하던 본문에는, 바빌론에 대한 심판을 예고한 후대의 본문들이 덧붙어 있습니다. 이 부분에서 하느님의 통치와 심판이 이스라엘과 유다에만 국한되지 않음을 보여 줍니다.
이어지는 24-27장은 13-23장과 달리, 특정한 나라들이 아니라 온 땅에 대한 심판을 선고합니다. 이사야가 쓴 것도 아니고 엄밀히 말하면 묵시록도 아니지만, 온 세상의 종말에 대한 심판을 예고한다는 점 때문에 ‘이사야의 묵시록’이라 일컬어지기도 합니다.
28-33장의 특징은 불행 선언입니다. 어떤 사람들이 불행하다고 선언한다면 그것은 결국 심판 선고이지요. 그리고 34-35장은 다시 종말을 이야기합니다. 심판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한편으로 놀라운 미래를 그려 보이기도 합니다. 이 부분은 아마도 후대에 이사야서 본문들을 연결하기 위하여 삽입된 것으로 보입니다.
36-39장은 히즈키야 시대에 행해진 이사야의 활동을 전합니다. 여기서 이사야 예언서 제1부가 끝납니다. 그 마지막 장면에서(39장) 이사야는 히즈키야에게 바빌론이 예루살렘 성전을 약탈할 것이라고 예고합니다. 이사야서에는 유다 왕국의 멸망과 유배에 대한 기록이 없지요. 그 모두를 대신하는 것이 바로 이 예언자의 선고입니다. 이사야서의 편집자는 이 선고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예언자가 선고했으니 그대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하고, 곧바로 40장에 유배 끝 무렵의 선포를 붙여 놓은 것이지요.
산헤립의 침공 이후 이사야가 어떤 활동을 했는지 성경이 전하는 바는 없습니다. 그를 따르던 제자들이 있었고 그의 예언을 기록하고 보존하여 전수한 이들도 있었으나, 그의 말에 귀 기울인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외경에서는 이사야가 히즈키야의 뒤를 이은 므나쎄 임금 때에 죽임을 당했다고 말합니다. 므나쎄는 다윗 왕조에서 가장 나쁜 평가를 받는 임금이니 그럴 수도 있겠지만, 이사야의 죽음에 관한 일을 역사적으로 확인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임금들이 이사야가 전한 하느님의 말씀을 거북해했다는 사실입니다. 앞으로 본문을 읽어 가면서 이를 확인하게 될 것입니다. 현실 문제에 매여 있는 임금들과 당장 눈앞의 이익을 계산해야 하는 정치 지도자들에게 이사야의 말은 결코 편안하지 않았습니다. 유배 전의 모든 예언자가 그랬듯이 이사야도 하느님을 믿지 못하는 유다와 그 임금들에게 심판을 선고하고, 어쩌면 무모하게 보이는 믿음을 요구했습니다. 이사야는 이들에게 대담한 믿음을 갖지 못한다면 무너지고 말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어떨까요? 우리의 믿음은 이런 도전을 견뎌 낼 수 있을까요? 이사야는 하느님을 믿는다는 것이 그렇게 녹록한 일이 아니라고 말하고, 우리도 어쩌면 이사야의 말이 듣기 싫어 적당히 얼버무리고 이 책을 덮어 버리고 싶어질지 모릅니다.
[성서와 함께, 2016년 2월호(통권 479호)]
[이사야서 해설]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하여 본 환시”(1,1) 안소근 실비아 수녀
이사 1,1-2,5을 읽어 보면,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하여 본 환시” 전체의 요약을 미리 볼 수 있습니다. 이는 마치 성가 반주를 할 때에 전주에서 노래의 첫 부분과 끝 부분을 들려주는 것과 같습니다.
1,1-31에서는 주로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을 선고하고, 2,1-5에서는 “세월이 흐른 뒤에”(2,2) - 1장에서 선고한 심판이 다 이루어지고 또 그 후에 - 이루어질 구원된 예루살렘의 모습을 그려 보입니다. 즉 1,1-2,5의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하여 본 환시”는 심판을 거쳐 그 후에 구원이 이루어지리라는 내용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이사 1-66장 전체의 요약이자 이스라엘 예언사 전체의 요약이기도 합니다. 대략 아래와 같이 정리해 볼 수 있습니다.
구약성경 예언의 역사는 ‘심판–구원’의 흐름
구약성경의 예언자들을 크게 둘로 나누면 유배 전 예언자들과 유배 후 예언자들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유배 전 예언자들은 대체로 심판을 선고합니다. 북 왕국 이스라엘에서 활동했던 아모스와 호세아, 그리고 남 왕국 유다의 이사야, 예레미야 등이 유배 전 예언자들입니다. 이스라엘이 이렇게 살다가는 망한다는 것이 그들의 선포 내용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귀 기울이지 않습니다. 지금 잘 지내고 있으니 망할 리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노아 시대에도 사람들은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는 날까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마태 24,38) 하다가 멸망했다고 하지요. 예언자의 시대에도 그랬습니다. 북 왕국 이스라엘도, 남 왕국 유다도 예언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고 결국 무너지고 맙니다.
그런데 이렇게 나라가 무너지고 나면 예언자들은 즉시 구원을 선포하기 시작합니다. 제2이사야 이후로 여러 예언자가 멸망한 이스라엘을 향해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다시 살려 주신다고, 우리를 버리신 것이 아니라고 외칩니다. 멸망 선포를 믿지 않았던 이들이 멸망 후의 구원 선포는 잘 믿을까요? 그럴 리가 없습니다. 그래도 예언자들은 희망을 선포합니다.
구약성경 예언의 역사를 조망해 보면, ‘심판–구원’이라는 큰 흐름을 볼 수 있습니다. 이 구분은 매우 뚜렷해서, 에제키엘 예언서 같은 경우 책 한 권 안에서 선포 내용이 중간에 바뀝니다. 에제키엘이 예루살렘 함락 이전부터 그 직후까지 활동했기 때문이지요. 기원전 592년경에 예언자로 부르심을 받은 그는 기원전 587년까지 멸망을 예고합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이 함락된 후부터 기원전 571년경까지 구원을 선포합니다.
이사야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크게 본다면 1-39장이 심판 선고이고 40-66장이 구원 선포입니다. 1-39장은 기원전 8세기, 유배 이전이니 다른 유배 전 예언자들과 마찬가지로 전체적으로는 심판을 선고합니다. 아모츠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하여 본 환시”(1,1)의 내용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심판 선고입니다. 그러다가 유배 중에 작성된 이사 40,1에서는 “위로하여라”라는 하느님의 말씀을 출발점으로 하여 어조가 완전히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하느님께서 “위로하여라” 하셨으니 예언자는 백성을 위로하기 시작합니다. 이제 심판이 다 이루어졌으니 위로의 때가 왔음을 알리라는 것이 40장 이후의 내용입니다.
심판 선고에서 구원 약속으로
예언자들은 남들이 태평하다고 할 때에는 멸망을 예고하고, 남들이 이제 다 망했다고 주저앉아 있을 때에는 구원을 선포합니다. 마치 청개구리 같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심판 선고가 갑자기 구원 약속으로 전환될 수 있을까요? 이것을 이해하는 것이 구약의 예언서 전체를 이해하는 열쇠입니다(그렇기에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심판을 선고할 때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유배 전 예언자들은 “이스라엘이 이렇게 살다가는 망한다”고 선포했습니다. ‘이렇게’ 살기에, 즉 이스라엘이 하느님께 등을 돌리고 악행을 저지르고 있기 때문에 심판을 선고합니다. 멸망의 원인은 이스라엘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살다가 과연 멸망하고 나면 어떻게 됩니까? 더는 심판을 선고할 일이 없습니다. 그래서 예언자들의 선포 내용이 달라집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이미 멸망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하느님에게서 멀어져 있습니다. 그러면 무엇을 선포해야 할까요? 회개하라고 외쳐 볼까요? 회개하라고 외친 것은 유배 전 예언자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멸망을 통해서 자신들이 예언자들의 설교를 듣고 회개할 능력조차 없었음을 깨닫습니다. 말하자면 이스라엘은 파산했습니다. 이제는 내 힘으로 하느님과의 계약에 충실하고 우리의 구원을 보증할 수 있다고 여길 수 없게 되었습니다. 돌아온 아들이 “저는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루카 15,21)라고 말했던 것처럼, 이스라엘은 다윗 왕조가 무너지고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었을 때 이제는 끝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 시점에서 예언자가 선포할 수 있는 것은 하느님께서 베풀어주시는 구원입니다. 멸망의 원인은 이스라엘에 있었지만, 구원의 원인은 이스라엘에 있을 수 없습니다(이 말은 앞으로 무수히 듣게 될 것입니다). 구원받을 만한 자격이 된다고 스스로 내세울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철저한 실패를 겪고 절망에 빠져 있을 때 예언자들은 이것이 끝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돌아온 아들을 아버지가 변함없이 사랑하는 아들로 받아들인 것과 같이 하느님은 이스라엘의 손을 놓지 않으셨고 아직도 이스라엘을 사랑하신다고, 그래서 구해주신다고 선포합니다.
멸망을 통한 구원
예언자들의 선포 내용을 보면, 예언서들에 나타난 이스라엘의 역사는 ‘멸망을 통한 구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스라엘은 멸망하기 전 적당한 시점에서 예언자들의 말을 듣고 길을 돌이켜 멸망을 피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덕분에 예언자들도 고생을 많이 했고, 이스라엘도 고생을 많이 했고, 하느님도 고생을 많이 하셨습니다(이렇게 말해도 된다면).
그러지 않을 수 없었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면 늘 돌아온 아들의 비유가 생각납니다. 작은아들이 집을 떠나지 않았다면, 방탕한 생활에 빠지지 않고 재산을 날리지 않았다면, 아들도 아버지도 고생을 덜 했겠지요. 하지만 그랬더라면 그 아들은 끝까지 아버지를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말하자면 작은아들도 ‘파산’을 겪었고, 이 체험을 통해서 아버지가 어떤 분이신지를 알았습니다. 이스라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사야서도 우리에게 바로 그것을 보여 줍니다.
이사야서는 세 부분으로 되어 있어 유배 전, 유배 중, 유배 후의 예언을 다 읽을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이사야 예언서 제1부(1-39장)에서 선포되는 심판은 구원을 향한 역사의 한 단계가 됩니다.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하여 본 환시”(이사 1,1)는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고하는 것이었지만, 그 멸망은 새로운 시작을 위한 과정이 될 것입니다.
더 작은 범위 안에서 살펴본다면, 이사 1,2-2,5에서도 우리는 그와 같은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1장의 심판 선고가 최후가 아님을,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것은 예루살렘의 멸망이 아니라 “충실하던 도성”(1,21)의 본모습을 되찾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멸망을 통한 구원. 어쩌면 달갑지 않은 말입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무상의 사랑은 내가 가장 가난해지는 순간에 가장 절실하게 깨달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죄에 떨어지고 좌절을 겪는 순간이 조건 없이 베푸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발견하는 순간이 됩니다. 그 순간을 알아볼 수 있도록 예언자들은 우리의 눈을 열어 줍니다.
[성서와 함께, 2016년 3월호(통권 480호)]
[이사야서 해설] “세월이 흐른 뒤에”(2,2) 안소근 실비아 수녀
이사 2,2에서는 “세월이 흐른 뒤에 이러한 일이 이루어지리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세월이 흐른 뒤에”라고 번역된 구절은 사실 여러 가지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히브리어 표현을 그대로 번역하면 “날들 후에”입니다.
그리스어 칠십인역에서는 “마지막 날들에”로 옮깁니다. 여기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곳에서도 칠십인역은 히브리어 성경에 비하여 늦은 시대의 관심사인 종말론에 큰 관심을 두지요. 본래의 히브리어 표현을 이렇게 이해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현대에도 “날들 후에”가 종말을 나타내는 고정된 표현이라고 보는 학자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말이 역사 안에서 구체적으로 이루어질 미래를 뜻한다고 보는 것이 더 일반적인 해석입니다. “날들 후에”, 곧 지금 흘러가고 있는 역사가 더 흘러 어떤 특정한 날들이 지나고 나서 그다음에 일어날 일들을 2,2-5에서 묘사한다는 것이지요. 다른 말로 하면, “날들 후에”는 1장에서 예고된 심판이 있은 다음을 지칭합니다.
2,2-5에서 그려 보이는 것은 그날들 후에 나타날 예루살렘의 모습입니다. 그때에 “주님의 집이 서 있는 산”(2,2)인 시온 산은 세상의 어떤 산보다도 높아지고, 모든 민족이 예루살렘에 있는 주님의 집으로 모여와 주님의 길을 배우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일은 지금이 아니라 “날들 후에” 있을 일들입니다.
충실하던 도성이 어쩌다…
지금 예루살렘의 모습은 2,2-5에서 말하는 먼 훗날의 모습과 거리가 멉니다. 이사야서 1장에서 예루살렘에 심판을 선고하는 것은 그 때문이었습니다. “충실하던 도성이 어쩌다 창녀가 되었는가?”(1,21) 창녀가 되었다는 것, 이사야 예언자보다 앞서 특히 호세아가 사용했던 비유입니다. 신랑이신 주님께 충실해야 할 아내 이스라엘이, 다른 무엇을 따라가고 있다는 의미이지요. “나는 너희 하느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될 것이다”(예레 7,23)라고 맺어진 계약 관계에 금이 갔다는 뜻입니다.
“충실하던 도성”이라는 말을 잘 뜯어보면, 또 과거의 언젠가는 예루살렘이 충실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공정이 가득하고 정의가 그 안에 깃들어 있었는데”(1,21), 그런데 그 충실하던 도성이 온갖 죄로 더럽혀졌습니다. 1장은 그 죄들을 열거합니다. 미물인 소와 나귀도 임자를 아는데 예루살렘은 아버지이신 하느님을 알아뵙지 못하고 거역하였습니다(1,2-3). 사람들은 하느님께 숫양과 황소 등 많은 제물을 바치지만, 그들의 손이 피로 가득하기에 하느님은 그 제사를 마다하시고 그들의 기도도 듣지 않으십니다(1,10-17). 고아의 권리를 존중하지 않고 과부를 돌보아 주지 않는 예루살렘이 바치는 제물을 하느님은 역겨워하십니다. 특히나 사회의 지도층은 부패하여 뇌물을 찾으며, 재판관들은 힘없는 이들의 권리를 찾아 주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1,23).
1,29에 언급된 “참나무”와 “정원”은 사람들이 다른 나라의 관습을 받아들여 우상을 숭배했음을 말해 줍니다. 풀과 나무가 겨울이면 죽었다가 봄이면 다시 살아나는 것을 보면서 가나안과 메소포타미아의 여러 민족은 겨울에 죽었던 신들이 봄이면 되살아나 풍요를 가져다준다고 생각하고 그 신들을 통하여 농사의 풍요를 기원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어느새 예루살렘 사람들이 그러한 우상숭배를 시작해 버렸습니다. 다 망하게 생긴 자신의 처지를 알지도 못합니다. 온통 성한 데가 하나도 없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만신창이가 되었는데도, 하느님께 살려 주시라고 애원하기는커녕 더 맞으려고 계속 반항하고 등을 돌립니다(1,4-8). 이스라엘의 죄악 때문에 땅까지 황폐해졌습니다(1,7). 이것이 이스라엘이 처해 있는 ‘파산’ 상태입니다. 이스라엘에는 출구가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남겨 주신 이들
이렇게 길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예언자는 또 청개구리 같은 소리를 합니다. “만군의 주님께서 우리에게 생존자들을 조금이나마 남겨 주지 않으셨더라면 우리는 소돔처럼 되고 고모라같이 되고 말았으리라”(1,9). 소위 ‘남은 자들’이 있습니다!
이 구절은 심판 선고 속에 파묻혀 휙 읽고 지나갈 말씀이 아닙니다. ‘남기다’(야타르)라는 단어가 갖는 신학적 무게 때문입니다. 이사야를 포함한 유배 전 예언자들은 전체적으로 심판을 선고하지요. 그런데 그 심판이, ‘남김 없이’ 완전히 멸망시켜 없애 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온통 황폐해진 땅이어도, 하느님은 작은 무리를 남겨 주십니다. 그리고 그들에게서 새로운 시작이 이루어집니다. 이러한 사상이 처음 나타나는 스바니야서에서는, 하느님께서 예루살렘에서 “거만스레 흥겨워하는 자들”(스바 3,11)을 모두 없애시고 “가난하고 가련한 백성”(스바 3,12)을 남기시리라고 말합니다. 이사야서에서도 남은 자 사상은 중요한 주제가 됩니다. ‘남은 자’라고 하기보다 ‘하느님께서 남겨 주신 이들’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하겠지요. 그들이 있기에 새로운 시작이 가능합니다. “세월이 흐른 뒤에”(이사 2,2) 시작될 새 역사는 다른 곳이 아니라 “주님의 집이 서 있는 산”(2,2), “시온, 예루살렘”(2,3)에서 이루어질 것이고, 다른 사람들이 아니라 주님의 빛 속에 걸어가는 “야곱 집안”(2,5)에게서 이루어질 것입니다. 믿기 어렵더라도 그러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찌꺼기를 걸러 내시고 불순물을 없애시며, 예루살렘을 다시 예전과 같은 “정의의 도읍”, “충실한 도성”으로 회복시키실 것이기 때문입니다(1,25-26).
주님의 빛 속에 걸어가자!
“세월이 흐른 뒤에”(2,2), 그러한 정화가 이루어진 다음에는 지금 눈앞에 펼쳐진 예루살렘을 보면서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웅대한 미래가 펼쳐질 것입니다.
2,2-5의 단락은 이사야서의 뒷부분에 가서 더 전개될 주제들을 담고 있습니다. 다른 민족들에 대한 이스라엘의 사명, 그리고 다른 민족들이 예루살렘으로 순례를 오게 된다는 주제는 이사야 예언서 제1부(1-39장)보다 각각 제2부(40-55장)와 제3부(56-66장)에서 주로 나타납니다. 예언서 전체의 서두에서 그 결말을 미리 예고하는 것이지요.
“주님의 집이 서 있는 산”(2,2). 1장에서 시온이 주로 도성으로 제시되었다면 이 단락에서는 ‘산’으로 이해됩니다. 땅에서 가장 높은 곳인 산은 하늘과 땅을 잇는 곳입니다. 더구나 “주님의 집이 서 있는 산”은 하느님께서 지상에서 거처하시는 곳이기에 다른 어떤 산보다도 직접 하늘로 연결됩니다. “세월이 흐른 뒤에”, 예루살렘이 저지른 수많은 죄악이 멸망을 통해 정화된 다음에, 그때에는 모든 민족이 바로 그 예루살렘, 창녀가 되었던 바로 그 도성으로 모여들어 그곳에서 주님의 법을 배울 것입니다. 모든 이들이 예루살렘으로부터 주님의 가르침을 배우기에, 그곳으로부터 온 세상에 평화가 전파되어 나갈 것입니다.
믿기 어려운 일입니다. 하느님께 단죄받고 심판받았던 바로 그 도성이 하느님의 법을 온 세상에 전파하는 곳이 된다는 것은, 개인으로 친다면 흉악범이던 사람이 큰 고통을 통해 변화되어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교사가 되는 것에 비길 수 있을까요? 그런데 2,2-5는 아직 정화되지 않은, 아직 흉악범과 같은 예루살렘에 장차 그런 날이 오리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하느님의 눈으로 바라보는 예언자의 말입니다. 온통 맞아 터진, 상처투성이 예루살렘에 예언자는 엄청난 미래를 말합니다. 그 이유는 명백합니다. “오너라, 우리 시비를 가려 보자”하시는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의 죄를 따지시는 것이 아니라 “너희의 죄가 진홍빛 같아도 눈같이 희어지고 다홍같이 붉어도 양털같이 되리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1,18).
예루살렘에 요구되는 것은, 믿기 어려운 그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지금은 손이 피로 가득한 불의한 도성이라 할지라도, 그 죄를 눈같이 희게 만드시는 하느님의 능력을 믿는 것입니다. 나의 죄에서 눈길을 돌려 용서하시는 하느님을 바라볼 때, 예루살렘은 빛 속을 걷게 될 것입니다.
“야곱 집안아 자, 주님의 빛 속에 걸어가자!”(2,5)
[성서와 함께, 2016년 4월호(통권 481호)]
[이사야서 해설] “그 그루터기는 거룩한 씨앗”(6,13) 안소근 실비아 수녀
햇볕이 잘 드는 창가에 겨우내 화분을 들여 두었습니다. 난방까지 하니 온실이 따로 없습니다. 화초는 잘 자라다 못해 비실비실해졌습니다. 힘이 없이 가늘고 길어지더니 똑바로 서 있지도 못하게 되었습니다. 세워 보려고 애를 썼지만 잎은 더 약해졌습니다. 봄이 되었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남은 길은 하나입니다. 뿌리만 남기고 깨끗이 잘라내고, 봄바람을 맞으며 튼실하게 새로 자라나기를 기다려야 합니다. 이사야를 불러 파견하신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뜻하신 계획은 바로 그런 것이었습니다.
이사야서 6장은 이사야가 거룩하신 하느님을 뵙고 예언자로 파견되는 장면을 전합니다. “우찌야 임금이 죽던 해”(6,1), 기원전 740년 무렵입니다. ‘요탐이 임금이 되던 해’가 아니라 “우찌야 임금이 죽던 해”라고 표현한 것이, 의미가 없지 않은 듯합니다. 그때 이사야가 본 것이 “높이 솟아오른 어좌에 앉아 계시는 주님”이었기 때문입니다. 어좌에 앉아 계시다는 말은 임금이라는 뜻이지요. 하늘 높이 임금으로 앉아 계신 주님과 죽어서 왕좌를 떠나는 인간 임금들이 대비됩니다. 이사야는 예언자로 활동한 40년 동안 여러 임금을 만나지만, 그들은 모두 덧없이 죽어갑니다. 거룩하신 하느님만이 영원한 통치권을 쥐고 계십니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만군의 주님!”(6,3) 이사야서의 하느님을 한 마디로 묘사한다면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이라는 호칭은 이사야서에서 특징적으로 나타납니다. 이 호칭은 이사야 예언서 제1부만이 아니라 제2부와 제3부에서도 계속 사용되어 후대의 편집자들이 기원전 8세기의 예언자와 같은 신학을 이어갔음을 드러냅니다. 하지만, 이사야서 이외의 다른 책들에서는 거의 나타나지 않는 호칭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잘 알려져 있듯이 히브리어에서 ‘거룩하다’는 단어는 ‘분리하다, 따로 떼어 놓다’라는 어근에서 유래하지요. 하느님의 거룩하심은 그분의 절대성, 초월성을 의미합니다. 인간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하느님, 그분의 영역에 인간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하느님이십니다.
이러한 하느님의 거룩하심 때문에, 하느님을 뵈었던 이사야는 “큰일났구나. 나는 이제 망했다”(6,5)라고 말합니다. “제가 있지 않습니까? 저를 보내십시오”(6,8) 하고 용감하게 대답했던 이사야의 소명 사화에서는 다른 예언자들의 경우와 달리 ‘이의 제기’라는 요소가 매우 약합니다. 하지만 “나는 이제 망했다”는 이사야의 말을 일종의 ‘이의 제기’로 볼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부르심 앞에 자신을 아이라고 말했던 예레미야(예레 1,6)와 마찬가지로, 부르시는 하느님 앞에서 자신의 부당함을 고백하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성(聖)과 속(俗)의 분리입니다. “입술이 더러운 백성 가운데 살면서” 하느님을 뵈었으니 이제 망했다는 말은, 속된 세상에 속한 인간이 거룩한 하느님의 영역을 침범했으니 죽음을 피할 수 없으리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스스로 부당하다고 느끼는 이사야를 합당하게 만들어 주십니다. 하느님께서 어떤 사명을 맡기고자 인간을 부르실 때, 스스로 그 부르심에 합당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 예언자들의 ‘이의 제기’는 빈말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자격을 갖추고 있어서 하느님의 부르심에 자신 있게 나설 수 있는 이들이 아니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바오로 사도에게 “나의 힘은 약한 데에서 완전히 드러난다”(2코린 12,9)고 말씀하시지요. 부르심 받은 이들이 약했기에 그 안에서 하느님의 능력이 활동합니다. 그들이 하느님의 도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사명을 맡기실 때 그 사명을 수행하기 위하여 필요한 모든 은총도 함께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사야의 소명과 사명
이제, 하느님께서 당신의 일을 위해 보낼 사람을 찾으시는 것을 본 이사야는 “제가 있지 않습니까?”(6,8) 하고 나섭니다. 가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이렇게 응답합니다. 하느님께 정말 넓은 마음을 보입니다. 대단한 믿음입니다. 저는 사람들이 무엇인가 부탁을 하려고 전화를 하면, “안 될 것 같지만 한번 얘기는 해 보세요”라고 말합니다. 무엇을 부탁할 것인지 보고 대답하겠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하느님께도 흔히 그렇게 합니다. 무엇을 요구하실 것인지 먼저 밝혀 주시면, 그 조건을 보고 응답할지 여부를 결정하려 합니다. 그런데 이사야는, 무엇을 명하시든 하느님의 뜻대로 행하겠다고 응답합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제가 가겠습니다”라고 하지 않고 “저를 보내십시오” 하고 말씀드립니다. 파견은 내가 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보내시는 것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그가 해야 하는 것은 그 자신의 일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맡기시는 사명입니다.
그런데 그 사명이 이상합니다. 백성은 듣고 또 듣되 깨닫지는 말아야 하고, 보고 또 보되 깨치지는 말아야 합니다. 이사야는 아예 그 백성이 마음과 귀와 눈을 닫게 해야 합니다.
“돌아와 치유되는 일이 없게 하여라”(6,10).
무슨 일을 시키실 것인지도 모르고 나섰더니, 기쁜 소식을 전하라는 것이 아니라 멸망을 선포하라고 이르십니다. 회개를 설교하여 백성이 마음을 돌이키게 하라고 말씀하시는 것도 아닙니다. 백성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기는 해야 하지만, 그들이 그 말을 듣고 마음을 바꾸게 하기 위해서 전하는 것은 아닙니다.
에제키엘의 경우도 이와 비슷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에제키엘을 보내시면서, 백성이 그의 말을 듣지 않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분은 그 사실을 미리 알고 계셨습니다. 그런데도 예언자가 침묵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이 듣든, 또는 그들이 반항의 집안이어서 듣지 않든, 자기들 가운데에 예언자가 있다는 사실만은 알게 될 것이다”(에제 2,5). 이사야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백성이 귀를 기울일 것이라서, 회개할 것이라서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하느님께서 그에게 맡기신 일이 선포이기에 선포할 따름입니다. ‘듣든 듣지 않든’ 그것은 예언자의 몫이 아닙니다.
그루터기에서 새로운 시작을
언제까지 그래야 할까요? 하느님께서는 ‘온 땅이 황폐해질 때까지’라고 말씀하십니다. “아직 그곳에 십분의 일이 남아 있다 하여도 그들마저 다시 뜯어 먹히리라”(6,13). 백성이 모두 쫓겨 가고, 그나마 남아 있던 십분의 일마저 다시 뜯어 먹힐 때까지 가야 합니다. 그때가 되어야 사람들은 비로소 그 예언자들의 사명이 무엇이었는지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멸망을 겪은 이스라엘은 비로소 자신의 무능을 깨닫게 됩니다. 철저한 실패를 겪고 나서 이스라엘은, 그들 자신의 힘으로는 하느님과의 관계를 유지해 나갈 수 없음을 깨닫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이 멸망할 때까지 마냥 손을 놓고 기다리시지 않았습니다. 북 왕국 이스라엘에서는 아모스와 호세아가, 남 왕국 유다에서는 이사야와 미카, 그리고 예레미야 등의 예언자들이 모두 이스라엘에게 경고했습니다. 그런데도 백성은 예언자들의 말을 듣고 마음을 돌이켜 하느님께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멸망하고 나서야 그 백성은, 예언자들이 실패하지 않았으며 그들의 사명이 하느님의 계획에 들어 있었음을 알게 됩니다.
하느님의 계획은 신비롭습니다. 멸망이 끝은 아닙니다. “그 그루터기는 거룩한 씨앗이다”(6,13). 그루터기만 남으려면 나무가 모두 베어져야 합니다. 다시는 살아나지 않을 것처럼, 그 밑동만 남아야 합니다. 그렇게 되어야 그 밑동에서부터 새로운 시작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멸망을 통한 구원. 이것이 예언자들의 역사에서 알아볼 수 있는 구원의 길이었습니다. 그 많은 경고에도 멸망을 피하지 못했음을 알게 될 때, 이스라엘은 구원이 자신들의 능력으로 이루어지는 일이 아님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이사야가 자신은 거룩하신 하느님의 예언자가 되기에 부당함을 알았기에 자신의 능력이 아닌 하느님의 능력으로 예언자 소명을 다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은 자신의 무능을 진심으로 깨닫고 난 후에 하느님의 능력과 그분의 은총에 의지하여 새 역사를 열어 갈 것입니다. 이렇게 되려면 그루터기만 남는 순간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이사야가 부르심을 받을 때 하느님께서는 미리 말씀하십니다.
“그 그루터기는 거룩한 씨앗이다.”
[성서와 함께, 2016년 5월호(통권 482호)]
[이사야서 해설] “예루살렘을 치러 올라왔지만”(7,1) 안소근 실비아 수녀
“당장 국가 안보상의 위기가 닥친다고 합시다. 미국에 의지할까요, 중국에 의지할까요?” 이 질문에 대답하지 않으셨다면 다음 질문은 건너뛰셔도 됩니다. 하지만 이 질문에 대답하셨다면 두 번째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사십 년 후에도 그 나라에 의지 할 수 있으리라고 확신하십니까?” 이런 질문들이 한심하다고 생각하셨다면 이사야서 7장의 가르침을 이미 절반은 이해하신 것입니다.
이사야가 “우찌야 임금이 죽던”(6,1) 기원전 740년에 부르심을 받았다고 하면, 그 후 5년 정도 지났을 때에 아하즈가 임금으 로 즉위합니다. 이사야서 해설을 시작할 때 시대 배경을 간략하게 살펴보았지만, 이제 아하즈가 임금이 된 직후의 국제 정세를 좀 더 자세히 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당시 근동의 역사를 좌우하던 나라는 아시리아였습니다. 한마디로 아시리아는 힘이 센 나라였습니다. 이사야서에서도 아시리아 군대에 대하여 “그들은 암사자처럼 포효하고 힘센 사자들처럼 함성을 지른다. 으르렁거리다 먹이를 잡아채 끌어가면 아무도 빼내지 못한다”(5,29)고 말합니다. 특히 기원전 745년에 티글랏 필에세르 3세가 임금이 된 이후로, 아시리아는 무섭게 세력을 떨치기 시작했습니다. 아시리아의 잔인함에 관한 이야기들 가운데 일부는 전설적인 내용일 수도 있지만, 아시리아에는 이 지역에서 최초로 직업 군인들로 된 기병 부대가 있었습니다. 군사적인 면에서 다른 나라들과는 수준이 완전히 달랐던 것입니다.
기원전 738년에 아시리아가 시리아(아람)와 북 왕국 이스라엘을 쳐들어와, 이스라엘 임금 므나헴은 상당한 조공을 바쳐야 했습니다. 아시리아의 입장에서, 주변의 작은 나라 하나를 더 무너뜨리는 것은 그다지 큰 관심사가 아니었을 수도 있었겠지요. 종속을 인정하고 조공을 잘 바치면 살려 두었습니다. 조공을 안 바치면 그때부터 단계적으로 주권을 빼앗고 완전히 예속시켰습니다. 하지만 막대한 조공을 바치는 입장에서는, 목숨만 부지해도 감사하다며 가만히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그래서 작은 나라들이 연합하여 아시리아에 맞서려고 시도한 적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임금 페카
“아람 임금 르친과 르말야의 아들인 이스라엘 임금 페카가”(7,1) 손을 잡은 것도 아시리아에 맞서기 위해서였습니다. 본래 시리아와 이스라엘은 우방이 아니라 국경을 맞대고 계속 싸우던 관계였습니다. 아시리아라는 더 강한 공동의 적이 나타났기에 갑자기 같은 편에 서게 된 것뿐입니다.
그런데 작은 나라 둘이 힘을 합쳐도 아시리아에 맞서기에는 역부족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남 왕국 유다를 끌어들이려 합니다. 이들은 요탐 시대에도 유다를 반(反)아시리아 동맹에 가담시키려 했지만, 요탐은 거절했습니다(2열왕 15,37 참조). 유다는 아직 아시리아의 공격을 받지 않았고, 조공도 바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굳이 남의 일에 끼어들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었겠지요.
그 후 이스라엘에서는 프카흐야를 거쳐 페카가 임금이 되었습니다(이스라엘 왕국의 끝 무렵은, 25년 동안 6명이 왕위에 오른 어지러운 시대였습니다). 유다에서 아하즈가 임금이 되자 시리아와 이스라엘은 다시 유다를 설득하려 합니다. 아하즈가 이에 응하지 않자 시리아와 이스라엘은 유다를 공격합니다. “우리가 유다로 쳐 올라가 유다를 질겁하게 하고 우리 것으로 빼앗아 그곳에다 타브알의 아들을 임금으로 세우자”(7,6). 아하즈를 몰아내고 자기들 편이 되어 줄 다른 사람을 유다의 임금으로 세우려고 합니다. 이것이 이사야서 7장의 배경인 시리아-에프라임 전쟁입니다(기원전 736-734).
유다 임금 아하즈
이렇게 시리아의 르친과 이스라엘의 페카가 “예루살렘을 치러”(7,1) 올라왔을 때 유다 임금의 심정은 어땠을까요? 이제 스물이 갓 넘은 젊은 임금 아하즈는 시리아와 이스라엘의 요구를 거절했으나 그들의 침입에 맞설 자신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르친과 페카가 “예루살렘을 치러 올라왔지만 정복하지는 못하였다”(7,1). 영화를 볼 때 이미 그 내용을 알고 있는 사람이 옆에서 자꾸 앞으로 전개될 줄거리를 얘기하면 재미가 떨어지지요. 그런데 이사야서의 저자는 일부러 그렇게 합니다. 예루살렘이 결국은 함락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우리에게 미리 말해 줍니다. 이사야는 그것을 믿었고, 우리도 그것을 믿어야 하고, 아하즈는 그것을 믿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숲의 나무들이 바람 앞에 떨듯 임금의 마음과 그 백성의 마음이 떨렸다”(7,2). 아하즈는 불안합니다. 이사야가 아하즈를 찾아가 만난 곳이 “윗저수지의 수로 끝”(7,3)이라는 것도 불안한 아하즈의 마음을 보여 줍니다. “윗저수지”는 기혼 샘에서 나온 물을 모아 두는 곳입니다. 예루살렘에서는 그 물을 끌어다 썼습니다. 예루살렘이 포위될 때 버틸 수 있으려면 그 저수지에 물이 있어야 합니다. 더구나 적군이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그 저수지를 차지하면 예루살렘은 독 안에 든 쥐가 되고 맙니다. 아하즈가 저수지를 살핀다는 것은 이미 머릿속으로 전쟁을 계산하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그 순간에 주님의 말씀을 전하는 예언자가 임금 앞에 나타납니다.
“진정하고 안심하여라, 두려워하지 마라”(7,4). 하느님께서 이사야를 통해 아하즈에게 전하신 말씀입니다. 참 비현실적인 말씀 아닐까요? 아하즈는 그보다 훨씬 구체적인 방책을 원합니 다. 저수지의 방비를 확인하고, 전쟁에 대비하려 합니다. 7장 본문에는 나오지 않지만, 이 전쟁 때에 아하즈는 엄청난 일을 저지르고 맙니다. 그는 아시리아에 도움을 청했던 것입니다. 시리아와 북 왕국 이스라엘이 아시리아에 거슬러 일어나려 할 때, 유다는 그들의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들보다 훨씬 더 강대국인 아시리아에 손을 내밉니다. “저는 임금님의 종이며 아들입니다. 올라오시어, 저를 공격하고 있는 아람 임금과 이 스라엘 임금의 손아귀에서 저를 구해 주십시오”(2열왕 16,7). 이것이 아하즈가 아시리아 임금 티글랏 필에세르 3세에게 했던 말입니다. 그는 자기 발로 찾아가 아시리아에 굴복했고, 많은 조공을 보냈습니다(2열왕 16,7-10). 티글랏 필에세르 3세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아시리아의 제단을 본뜬 제단을 예루살렘 성전에 세우기도 했습니다.
물론, 티글랏 필에세르 3세는 기꺼이 아하즈의 요청에 응답했습니다. 당연합니다. 과거에도 아시리아는 이미 시리아와 이스라엘을 침입했고, 그들을 굴복시켜 조공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아시리아를 거슬러 반란을 일으키려고 했던 것이니까요. 기원전 732년에 티글랏 필에세르 3세는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쿠스를 함락시켰고, 10년 후인 기원전 722년에는 북 왕국 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도 함락됩니다(그때의 아시리아 임금을 성경에서는 살만에세르 5세라고 말하고, 아시리아 실록에서는 사르곤 2세라고 말합니다).
예언자 이사야
처음에 했던 질문을 다시 생각해 봅니다. 아하즈는 어디에 의지해야 했을까요? 아시리아에 의지하는 것이 답이 될 수 있었을까요? 물론 그렇게 해서 유다 왕국은 멸망을 피했습니다. 하지만 유다 임금이 자신을 아시리아 임금의 “종이며 아들”이라고 말했다면, 이미 유다의 운명은 기울고 있는 것입니다.
무엇을 믿어야 할까요? 이사야는 시리아와 이스라엘이 “타고 남아 연기만 나는 장작 끄트머리”(7,4)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하며 아하즈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합니다. 아시리아도 믿고 의지할 대상은 되지 못합니다. 사십 년이 지나기 전에, 시리아와 북 왕국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아시리아는 아하즈의 아들 히즈키야가 통치하고 있는 유다를 공격할 것입니다. 아시리아가 유다의 요청을 들어준 것은 유다를 위해서가 아니라 아시리아 자신의 세력 확장을 위해서였습니다. 너무나 뻔한 국제 관계를, 아하즈는 왜 보지 못했을까요?
이사야는 예루살렘이 공격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아하즈에게 “너희가 믿지 않으면 정녕 서 있지 못하리라”(7,9)고 말합니다. 전쟁 속에서 하느님을 믿으라는 이사야가 더 비현실적입니까, 아니면 강대국 아시리아의 도움을 받으려는 아하즈가 더 비현실적입니까?
[성서와 함께, 2016년 6월호(통권 483호)]
[이사야서 해설] “임마누엘”(7,14) 안소근 실비아 수녀
조선 시대에 임금이 어느 날 갑자기 세자 책봉을 서둘렀다면,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임금이 병에 걸렸거나, 반란의 조짐이 있었거나, 어떤 식으로든 왕권이 흔들렸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세자 책봉은 왕권을 안정시키는 조처가 될 수 있었습니다.
“표징을 청하여라”(7,11)
시리아-에프라임 전쟁 때에, 유다에 쳐들어온 아람 임금 르친과 이스라엘 임금 페카는 “타브알의 아들을 임금으로 세우자”(7,6)라고 했습니다. 유다 임금 아하즈는 왕위를 위협받고 있습니다. 종묘사직이 아니, 다윗 왕조가 불안합니다. 이때 임금의 마음은 “숲의 나무들이 바람 앞에 떨듯”(7,2) 떨렸다고 했습니다. 이사야는 이것이 믿음의 문제라고 말합니다. 다윗 왕조와 예루살렘을 선택하신 하느님을 믿을 수 있는가? 아하즈의 믿음이 시험을 받고 있습니다.
이제 하느님께서 그의 믿음에 또 하나의 도전장을 던지십니다. “너는 주 너의 하느님께 너를 위하여 표징을 청하여라”(7,11). 지금 하느님은, 불안해하는 아하즈의 불신을 드러내 보이십니다. 아하즈는 주님을 시험하지 않겠다는 훌륭한 이유를 대며 표징을 청하지 않습니다. 그가 하느님을 성가시게 한다는(7,13) 이사야의 반응에서 알 수 있듯이, 표징을 청하지 않은 것은 훌륭한 믿음의 증거가 아니었습니다. 하느님 편에서 아무 말씀이 없었는데 그가 표징을 청했다면 그것은 주님을 시험하는 일이 될 수 있었겠지요. 유딧기에서 날짜를 정해 놓고 하느님께서 개입하시는지 시험하려 하던 배툴리아 주민들에게, 유딧은 그러한 시도가 사람에 지나지 않으면서 하느님의 자리에 서려고 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유딧 8,12 참조). 그러나 아하즈의 경우는 이와 다릅니다. 그는 하느님께서 표징을 보여 주시려 하는 것을 거부함으로써 하느님과 직접 대면해야 하는 믿음의 시험을 피하려 했습니다. 표징을 보여 주신다면 아하즈는 그 표징에 대해 자신의 믿음을, 또는 불신을 표명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애써 숨기고 있는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내기 싫었을 테지요. 그러나 그 도전은 피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그에게 자신의 불신을 보게 하십니다.
“젊은 여인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7,14)
하느님께서 그에게 보여 주시는 표지가, 아들의 탄생입니다.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리라”(마태 1,23)는 마태오 복음은 잠시 잊어야 합니다. 아하즈의 입장에서 이사야의 선포를 들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일차적으로 이 표징은 아하즈에게 주어집니다. 그런데 칠백 년도 더 지난 다음에 예수님께서 태어나시리라는 것은 아하즈에게 주어지는 표징이 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리스어 번역본인 칠십인역에서는 이 구절을 “동정녀가 잉태하여…”라고 옮기지만 히브리어 본문에 사용된 단어는 꼭 처녀를 지칭하는 단어가 아닙니다. 결혼했든 하지 않았든 그저 젊은 여인을 가리킵니다. 더구나 그 단어 앞에 관사가 붙어 있어(“그 젊은 여인”), 이사야와 아하즈는 그 여인이 누구인지 알고 있음을 드러냅니다.
그렇다면, 그 여인은 누구일까요? 여러 가지 의견이 있지만 가장 일반적으로는 아하즈의 아내라고 생각합니다. 유다교 전통에서는 늘 이 “젊은 여인”이 아하즈의 아내 아비야를 가리키고 태어날 아기는 히즈키야였다고 보아 왔습니다. 물론 절대적으로 확실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상당히 가능성 있는 해석입니다.
실망하셨나요? 글쎄요, 아하즈라면, 표징이 칠백 년 후에 주어지리라고 했다면 더 난감했을 것입니다. 지금 문제는 다윗 왕조가 불안하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순간에 아하즈에게 아들이 태어난다면 그것은 왕조의 미래를 보증해 주는 약속의 표지가 될 수 있습니다. 표징이라고 해서 꼭 동정녀 잉태 같은 기적이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어쩌면 평범하게 보이는 한 아기의 탄생도, 위기 상황에서는 대단히 중요한 표징이 될 수 있습니다. 어쩌면 다윗 왕조가 무너질 수도 있는 위기에 아하즈의 아내가 아들을 낳는다면, 아하즈가 조선 시대 임금이라면 그 어린 아기를 바로 세자로 책봉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 아기는 “임마누엘”,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심을 보여 줍니다.
“주님께서 몸소 여러분에게 표징을 주실 것입니다”(7,14)
그런데 하느님을 믿지 못하여 그분을 성가시게 했던 아하즈에게 하느님께서 주신 표징은(7,13 참조) 구원의 표징이었을까요, 심판의 표징이었을까요? 흔히는 구원의 표징이라고 생각합니다. 아기의 탄생은 분명 기쁜 일이었을 것이고, 더구나 “임마누엘”이라는 이름은 위험에 처한 다윗 왕실에 하느님께서 함께 계심을 말해 줍니다. 그 아기가 “엉긴 젖과 꿀을” 먹게 되리라는 것도 풍요의 약속으로 볼 수 있고, “임금님께서 혐오하시는 저 두 임금의 땅은 황량하게 될 것입니다”(7,16)라는 선언 역시 시리아-에프라임 전쟁을 일으킨 두 나라에 대한 심판 선고이니 아하즈에게는 좋은 소식이겠지요.
하지만 이사야가 아하즈에게 말하는 어조는 차갑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느님을 성가시게 한 아하즈에게 하느님은 과연 어떤 대답을 하시리라고 예상할 수 있을까요? 아기가 태어나리라는 이사야의 선포는 “이걸 봐라!”라는 식의 경고가 될 수도 있습니다. “젖과 꿀”이 꼭 좋은 음식을 뜻하는 것은 아니라고 보기도 합니다. 농사가 잘되면 빵과 포도주를 먹겠지요. “아시리아의 임금을 시켜”(7,17)라는 어구가 후대에 첨가된 것이라고 보아, “에프라임이 유다에서 떨어져 나간 날 이후 겪어 본 적이 없는 날들”이 큰 재앙을 뜻한다고 보기도 합니다. 어쩌면, 모든 것은 아하즈의 믿음에 달려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하즈가 믿음으로 하느님께 의탁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임마누엘의 탄생은 예수님의 상처를 확인하려 했던 토마스 사도가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요한 20,28)이라고 고백했던 것처럼 그에게 그 믿음을 온전히 끌어안는 계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가 마음을 닫고 계속 하느님 아닌 다른 무엇에 의지하려 하고 있었다면, 하느님께서 보여 주시는 표징은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서 바오로를 말에서 떨어지게 하신 것과 같이(사도 9,3-4) 그를 꺾어 놓으시는 하느님 권능의 심판이 되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토마스에게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요한 20,29)라고 말씀하시듯이, 표징은 아하즈의 약한 믿음을 위해서 주어집니다. 다윗 왕조를 지켜 주시는 분이 하느님이심을 아하즈가 믿고 그분께 모든 것을 맡길 수 있도록, 이 위기의 때에 장차 그의 왕위를 이어갈 아들을 세상에 보내 주신 것입니다.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마태 1,23)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심을 보여 주는 표징, 마태오 복음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그 표징임을 알려 줍니다. 히브리어 성경에는 “젊은 여인”이라고 쓰여 있었지만 칠십인역 그리스어 이사야서에는 이미 “동정녀가 잉태하여…”라고 번역되어 있었고, 마태 1,23에서는 그 이사야서의 말씀을 인용합니다.
신약성경 본문에 더 익숙한 그리스도인들은, 이사야가 아하즈에게 예고한 임마누엘의 탄생이 예수님을 가리키지 않고 아하즈의 아들을 가리킨다는 설명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하기도 합니다. 이를 이해하려면 이사야서의 한 구절에 몰두하기보다 구약과 신약이 어떤 관계에 있는지를 멀리서 바라보는 것이 좋습니다.
구약에서 하느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당신 자신을 서서히 계시하셨습니다. 당신께서 그들과 함께 계심을, 역사의 여러 사건을 통해서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나 “여러 번에 걸쳐 여러가지 방식으로 조상들에게 말씀”하셨던 하느님께서는 “이 마지막 때에는 아드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히브 1,1-2). 예수님은 그 하느님의 모습을 남김 없이 보여 주십니다. 아하즈에게 함께 계시겠다고 약속하신 하느님은, 때가 찼을 때 동정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친히 이 세상에 오시어 우리와 함께 머무르십니다. 그분 안에서, 하느님께서 가장 온전한 의미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아하즈에게 주셨던 표징보다 무한히 분명한 증거가 여기에 있습니다.
[성서와 함께, 2016년 7월호(통권 484호)]
[이사야서 해설] “우리에게 한 아기가 태어났고”(9,5) 안소근 실비아 수녀
“동해 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애국가 가사가 처음 지어진 때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임시정부 시절에 사용된 것은 분명합니다. 나라를 잃은 사람들이 불렀을 애국가는, 80년대 텔레비전 방송이 시작되고 끝날 때 흘러나왔던 애국가와는 다른 느낌을 주었을 것입니다. 독립군들이 불렀을 애국가! 지금 우리에게 없는, 그러나 있어야 할 어떤 것을 노래하는 비장함이 느껴지지요. 그런데 저는, 이사 8,23-9,6의 ‘태어난 아기’에 대한 말씀을 들을 때면 그런 비장함이 느껴집니다. 왜 그럴까요?
“한 아기가 태어났고”(9,5)
8,23-9,6과 11,1-9은 7장의 임마누엘 예언에 이어지는 것으로서, 훌륭한 임금에 대한 기대를 표현합니다. 앞서 7,14의 임마누엘이 일차적으로 아하즈의 아들 히즈키야를 가리켰던 것처럼, 이 본문들도 가장 먼저 히즈키야를 떠오르게 합니다.
그런데 그 “평화의 군왕”(9,5)이 다스리는 시대는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옛날에는 즈불룬 땅과 납탈리 땅이 천대를 받았으나”(8,23)라는 구절을 보면, 북 왕국 이스라엘이 아시리아의 공격에 시달리던 때를 나타내는 듯합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 영화롭게 되리이다”(8,23)라고 하니, 아직은 완전히 성취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9,5에 따르면 그 아기는 태어났고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장차 임금이 될 그 아기가 태어났다는 뜻일 수도 있습니다. “젊은 여인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7,14)라고 했었지요. 그 표징이 이제 주어진 것일 수 있습니다.
더 가능성이 큰 것은, 지금 임금이 즉위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는 이유는 9,5에 임금의 여러 호칭이 언급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고대 이스라엘의 주변 문화에서는 임금이 즉위할 때, 그에게 여러 호칭을 부여하곤 했습니다.
아기가 태어났다는 표현도 임금의 즉위를 배경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와 유사한 내용을 군왕 시편인 시편 2편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 시편에서는 하느님께서 “내가 나의 임금을 세웠노라!”(시편 2,6) 하고 선포하시므로 임금의 즉위를 위한 시편이라고 여겨지는데, 여기서 하느님은 그 임금에게 “너는 내 아들, 내가 오늘 너를 낳았노라”(시편 2,7) 하고 말씀하십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파라오의 아들이 태어날 때부터 신의 아들로 간주되었지만, 이스라엘에서는 임금이 즉위하는 때가 그가 하느님의 아들로 입양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이사야서의 이 본문을 임금의 즉위라는 맥락에서 읽으려고 합니다.
“평화의 군왕”(9,5)
그 임금에게 주어지는 호칭들을 하나씩 살펴봅시다. 9,5에는 “놀라운 경륜가, 용맹한 하느님, 영원한 아버지 평화의 군왕”(9,5)이라는 이름들이 언급됩니다. “놀라운 경륜가”는 한 마디씩 번역하면 ‘놀라움의 기획자’입니다. 이 말은 ‘놀라운 기획자’라고 이해할 수도 있고 ‘놀라운 일을 기획하는 자’라고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용맹한 하느님”은 당황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하느님의 호칭을 임금에게 적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10,21에서는 같은 표현이 하느님께 적용됩니다(“용맹하신 하느님”으로 번역됨).
하느님의 호칭이 사람들의 이름으로 쓰이는 예는 구약성경의 다른 곳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심지어 시편 45,7에서는 임금에게 “오, 하느님 같으신 분!”이라고 하고 있는데, 이것도 번역을 다듬은 것일 뿐 원문은 “하느님!”입니다. “영원한 아버지”도 현대인의 감각에는 과도하게 보일 수 있지만, 본래의 의미는 임금이 백성의 아버지라는 뜻입니다.
“평화의 군왕”이라는 호칭도 난점이 있기는 합니다. ‘군왕’이라고 번역된 단어가 사실 임금을 뜻하지 않고 고위 관리를 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유다인들은 장차 올 메시아 임금을 ‘평화의 임금’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평화는 그 임금의 중요한 특징입니다.
여기서 질문을 던져 봅니다. 이 호칭들은 과연 얼마나 현실적일까요? 다윗 왕조의 임금들 가운데 히즈키야가 ‘비교적’ 훌륭한 임금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만일 그가 임금으로 즉위할 때 이러한 이름들을 그에게 붙여 주었다면, 그의 임기 말엽에는 실망했을지도 모릅니다. 이사야 예언자 또한, 아시리아군이 쳐들어올 때 이집트에 의지하려 하고(31장) 나중에는 바빌론과도 손을 잡아 보려 했던(39장) 히즈키야를 꾸짖을 것입니다.
이제 9,5의 호칭들을 읽을 때에 느껴지는 비장함의 정체가 무엇인지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그 비장함은, 히즈키야든 누구든 다윗 왕조의 어느 임금도 이러한 호칭에 제대로 부합하지 못했다는 데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호칭들에서, 이사야 예언자의 선포가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를 느낍니다.
“그의 왕권은 강대하고”(9,6)
이제 그 임금의 통치에 대한 묘사를 좀 더 살펴봅시다. 대략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영원한 왕권과 평화입니다.
그는 다윗의 왕좌에서 강대한 왕권을 행사할 것이며, 이제부터 영원까지 그 왕국을 굳게 지켜 갈 것입니다(9,6 참조). 이 내용은 2사무 7장에 전해지는 나탄의 예언에 가깝습니다. 다윗이 하느님께 집(성전)을 지어 드리려고 했을 때, 하느님은 오히려 당신께서 그에게 영원한 집(왕조)을 주겠다고 약속하십니다. 나탄의 이 예언은 구약성경에서 대단히 중요한 본문입니다. 메시아 사상의 근원이 되기 때문입니다.
다윗 왕조가 건재한 동안 이 예언이 왕조를 지탱하는 신학적 기반이 될 수 있었다면, 왕조가 무너진 다음에 이 예언은 하느님의 약속을 믿는 이들에게 희망의 근거가 됩니다. 다윗 왕조가 무너졌어도 하느님의 약속은 무너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부터, ‘다윗의 후손’에 대한 기다림이 싹틉니다.
이사야서의 예언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이제부터 영원까지 … 그 왕국을 굳게 세우고 지켜 가리이다”(9,6)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다윗 왕조는 언젠가는 무너지고 맙니다. 그러면 이 선포는 우리에게 다시 기다림을 남길 것입니다.
“그 평화는 끝이 없으리이다”(9,6)
그 임금의 통치에서 두 번째 특징은 평화입니다. 평화라는 주제는 이 본문에서 매우 중시됩니다. 그 시대에는 “땅을 흔들며 저벅거리는 군화도 피 속에 뒹군 군복도 모조리 화염에 싸여 불꽃의 먹이가 됩니다”(9,4). 이사야서에서 군왕 메시아에 관한 다른 본문인 11,1-9에서도 평화는 메시아 시대의 특징입니다. “늑대가 새끼 양과 함께 살고 …”(11,6).
그러나 예언자가 “앞으로는”(8,23) 이렇게 되리라고 노래하는 것은 지금의 현실은 그렇지 않기 때문입니다. 멍에, 장대, 부역 감독관의 몽둥이, 저벅거리는 군화, 피에 뒹군 군복. 어디서 이런 표현들이 나왔을까요? 네, 현실에서 나왔습니다.
현실이 정말로 평화롭다면 피에 뒹군 군복을 불에 태울 필요가 없습니다. 피에 뒹군 군복이 없을 테니까요. 지금 이사야가 눈앞에 보고 있는 현실은 끝없는 전쟁으로 뒤흔들리고 있는 세상입니다. 부역 감독관의 몽둥이가 부서지고 군화와 군복이 불에 타 없어지게 되는 것은 현실에 반대되는 이상입니다. 바로 그래서 이 본문이 비장합니다.
“만군의 주님의 열정이 이를 이루시리이다”(9,6)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더라도, 하느님의 약속은 살아 있습니다. 다윗 왕조가 무너진 후에라도 하느님은 이 약속을 이루십니다. 이사야서에 이 본문이 남아 있는 것은 그러한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신약성경에서 이 약속들이 이어짐을 봅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래아에서 복음을 선포하실 때 “이민족들의 지역”(8,23)인 갈릴래아에서 “어둠 속을 걷던 백성이 큰 빛을 봅니다”(9,1; 마태 4,15-16 참조). 마리아에게서 태어날 아기는 “조상 다윗의 왕좌”에서 “영원히 다스리시리니 그분의 나라는 끝이 없을 것”(루카 1,32-33)입니다.
이 일이 “만군의 주님의 열정이”(9,6) 이루실 일이기에, 인간의 역사에서 그 실현이 불완전하게 보인다 하더라도 언젠가 그 기다림은 꼭 성취됩니다. 이사야서의 예언은 그 실현을 향해 가는 길 위의 이정표였습니다.
[성서와 함께, 2016년 8월호(통권 485호)]
[이사야서 해설] “내 백성 이집트야, 내 손의 작품 아시리아야, 내 소유 이스라엘아” (19,25) 안소근 실비아 수녀
오래전 어느 잡지에서, 매달 주제를 바꿔 가며 빈칸에 넣고 싶은 말을 공모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를테면 ‘나에게 가족은 [ ]다’라는 식의 문장에, 각자 떠오르는 단어를 쓰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이사야가 살던 시대 유다 왕국의 주민들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고 상상해 봅시다. ‘[ ]에 대한 신탁.’ 참고로 이사야서에서 신탁은 거의 심판 선고입니다.
민족들에 대한 심판(13-23장)
기원전 8세기, 하느님께서 어떤 나라를 심판하신다면, 당시 유다인들은 어느 나라를 가장 먼저 떠올렸겠습니까? 그것은 아마도 기원전 8세기 근동 지방의 가장 큰 세력, 모든 전쟁의 원천, 나훔이 그 수도를 “피의 성읍”(나훔 3,1)이라고 불렀던 나라, 아시리아일 것입니다. 아모츠의 아들 이사야가 활동하던 시대, 전쟁에 시달리던 유다인들은 ‘아시리아에 대한 신탁’을 기다렸을 것입니다.
아모스서, 에제키엘서 등 여러 예언서에서 이스라엘이 아닌 다른 민족들에 대한 심판이 선고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사야 예언서 제1부에서 그러한 민족들에 대한 심판은 13-23장에 모여 있습니다. 이 부분에서 특징적으로 사용되는 단어가 ‘신탁’입니다. 성경의 다른 책들에서 ‘신탁’이 꼭 심판 선고만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지만(말라 1,1), 이사 13-23장에서는 일정하게 심판 선고를 도입하는 맥락에서 사용됩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아시리아에 대한 신탁’이 없습니다. 이 ‘신탁’들은 바빌론에 대한 신탁(13,1–14,23), 모압에 대한 신탁(15,1–16,14), 다마스쿠스에 대한 신탁(17,1-11), 이집트에 대한 신탁(19,1-25), 바닷가 광야(바빌론)에 대한 신탁(21,1-10), 에돔족(두마)에 대한 신탁(21,11-12), 드단족(아라비아)에 대한 신탁(21,13-17), ‘환시의 계곡’에 대한 신탁(22,1-14), 티로에 대한 신탁(23,1-18)으로 구분되어 있고, 도입하는 말이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필리스티아에 대한 신탁도 있습니다(14,28-32).
우리의 추리력을 동원해 본다면, 아시리아에 대한 심판이 없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바빌론에 관한 신탁”(13,1)이 힌트입니다. 이 신탁들 가운데 많은 부분이 이사야의 시대가 아니라 더 늦은 시기에 작성되었다는 것이지요.
13-23장 전체가 같은 시대, 같은 저자에 의해 작성된 것으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바빌론 임금의 종말을 고하고(14,3-21) 이스라엘의 귀향을 선포하는 단락은(14,1-2) 명백하게 더 늦은 시대를 배경으로 합니다.
아시리아에 대해서는(10,5-19)
이사야서에서 아시리아에 대한 심판을 선고하지 않았을 수는 없습니다. 아시리아에 대한 심판 선고는 더 일찍, 10,5-19에 나옵니다. 이사야 자신도 40년이나 활동했고 내내 아시리아는 위협적이었으므로 정확한 연대를 말하기는 어렵지만, 이 단락에서 아시리아는 하느님의 “진노의 막대”(10,5)라고 일컬어집니다.
엄청난 군사력을 지녔던 아시리아는 주변의 여러 나라를 짓밟았습니다. 시리아-에프라임 전쟁 때 유다의 아하즈는 아시리아의 힘을 빌려 시리아와 북 왕국 이스라엘을 막아 냈습니다. 하지만 나라가 망하지 않고 명맥을 이어갈 뿐 그 이후 남왕국 유다는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종교적으로나 사실상 아시리아의 영향을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이러한 아시리아가 하느님의 도구였다고 말합니다. 하느님은 “나는 그를 무도한 민족에게 보내고, 나를 노엽게 한 백성을 거슬러 명령을 내렸으니”(10,6)라고 말씀하십니다. 아시리아가 대단해서 세상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시리아의 손에 들린 몽둥이는(10,5) 하느님을 믿지 못했던 당신 백성에 대한 하느님의 분노였습니다.
그런데 아시리아는 그러한 사실을 알지 못하고 ‘내 손의 힘으로, 내 지혜로’(10,13) 세상을 정복했다고 여겼습니다. 우상을 섬기는 다른 나라들을 멸망시킨 것과 똑같이 이스라엘도 자기 힘으로 굴복시켰다고 믿었습니다. 하느님이 자신을 도구로 쓰신 것을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은 그 교만을 벌하십니다. “도끼가 도끼질하는 사람에게 뽐낼 수 있느냐?”(10,15) 하느님은 아시리아가 자신의 위치를 깨닫도록 그 영화가 사라지게 하시고 그를 멸망시키십니다(10,16-19). 인간이 자신에게 능력을 주시는 하느님을 알아 뵙지 못하고 스스로 잘난 줄 알 때, 하느님은 그를 꺾으시는 것입니다.
언젠가 아시리아는, 자신이 지녔던 그 막강한 힘도 오직 하느님에게서 온 것이었음을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그 힘을 올바로 사용하지 않고 불의와 억압을 저지른 잘못에 대해 값을 치러야 할 것입니다.
“인간의 거만한 눈은 낮아지고 사람들의 교만은 꺾이리라. 그날 주님 홀로 들어 높여지시리라”(2,11). 역사를 쥐고 계시는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의 주권이 드러나는 순간입니다.
“바빌론에 관한 신탁”(13,1)
13-23장에서 선포되는 여러 민족에 대한 심판 역시 같은 신학을 배경으로 합니다. 모압, 필리스티아, 이집트는 그렇다 치고 저 멀리 에티오피아까지(18,1-7), 이러한 민족들에게 신탁이 내린다는 것은 그들도 하느님의 지배하에 있음을 의미합니다.
우리나라의 국법은 우리나라의 국민을 대상으로 하지요. 바다 건너 다른 나라에 사는 사람을 우리나라 법정에서 재판하지는 않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티로와 시돈과 시리아가 하느님의 통치 영역이 아니라면, 어떻게 그 민족들에 대해 하느님이 심판을 선고하실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이사야 예언서 제2부에 가면 더 중요하게 부각될 주제입니다. 땅에 구역이 나누어져 있어서 여러 신이 자신의 구역과 자기 백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온 세상 모든 민족이 한 분이신 하느님의 통치 아래 있다는 것입니다.
13-14장에 실려 있는 바빌론에 관한 신탁은 이미 바빌론이 메디아인들에 의해 멸망하게 될 것까지 예고하고 있습니다(13,17 참조). 물론 기원전 8세기의 본문이 아니라 유배 중의 본문입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선포되는 내용은 앞서 아시리아에 대해 선포된 내용을 이어갑니다. 달리 표현한다면, 기원전 8세기에 아시리아에 대해 선포되었던 말씀이 더 늦은 시기에는 아시리아와 같은 역할을 하는 바빌론에 선포되는 것입니다.
바빌론 역시 “나는 하늘로 오르리라. 하느님의 별들 위로 나의 왕좌를 세우고 북녘 끝 신들의 모임이 있는 산 위에 좌정하리라. 나는 구름 꼭대기로 올라가서 지극히 높으신 분과 같아져야지”(14,13-14)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느님의 통치권을 인정하고 그분의 도구로써 땅을 다스린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하느님의 위치에 앉으려고 한 것입니다. 그러다가 “저승으로, 구렁의 맨 밑바닥으로”(14,15) 떨어집니다.
“복을 받아라, 내 백성 이집트야”(19,25)
6,13의 “그 그루터기는 거룩한 씨앗이다”라는 말씀에서 보았듯이, 하느님이 이스라엘을 치실 때 그 목적은 멸망이 아니라 구원이었습니다. 그러면, 다른 민족들을 치실 때는 어떨까요?
하느님이 아시리아를 꺾으시고 바빌론을 치신 것은 그들이 거룩하신 하느님의 통치권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심판의 목적은 그들이 하느님을 알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에 하느님은 “복을 받아라, 내 백성 이집트야, 내 손의 작품 아시리아야, 내 소유 이스라엘아!”(19,25) 하고 말씀하십니다. “내 백성”, “내 손의 작품”은 본래 이스라엘에 적용되는 표현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전통적인 원수였던 이집트와 아시리아가 하느님을 알게 될 때 하느님은 그들을 강복하십니다. “그날에 이스라엘은 이집트와 아시리아에 이어 세 번째로 이 세상 한가운데에서 복이 될 것이다”(19,24).
이스라엘이 이 말씀을 얼마나 받아들이기가 얼마나 어려웠을지 생각해 보십시오. 심판 선고에 ‘[ ]에 대한 신탁’이라는 제목이 있다면 이스라엘은 분명 그 빈 자리에 ‘이집트’, ‘아시리아’를 써넣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느님은, 그들에 대한 심판마저도 그들이 당신을 알아 구원을 얻는 길이 되게 하십니다.
[성서와 함께, 2016년 9월호(통권 486호)]
[이사야서 해설] “주님인 나는 이 포도밭을 지키는 이”(27,3) 안소근 실비아 수녀
열 살쯤이었던 것 같습니다. 저녁놀이 유난히 붉었던 어느 날, 동네 뒷산이 온통 빨갛게 보였습니다. 왠지 무섭고 두려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직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던 요한 묵시록의 표현들도 생각났습니다. 해가 흔들리고 달이 붉어진다고 했던가요? 함께 있던 친구 중 몇몇은 이 밤이 지나고 나면 세상이 멸망해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습니다. 땅이 붉게 물들고 사람들은 모두 죽어 텅 비어 있는 장면이 눈앞에 그려졌습니다. 이것이 바로 어린 제가 ‘묵시록’에 비추어 상상했던 지구의 종말이었습니다.
‘묵시록’이란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묵시록은 요한 묵시록입니다. 사실 ‘묵시록’은 특정한 종류의 글을 지칭하는 전문용어입니다. 묵시문학을 정의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많은데, J. 콜린스의 정의에 따르면 묵시록은 ‘이야기로 된 틀’을 지닌 계시문학의 한 종류로, 다른 세계의 중개자를 통해 수령자인 인간에게 계시가 전달됩니다. 시간상으로는 종말의 구원을 묘사하고, 공간적으로는 초자연적 세계, 초월적 세계를 다룹니다.
좀 더 쉽게 말하자면 이야기로 된 틀이 있는 문학작품에서, 숨겨진 비밀을 알려 주듯 감추어진 어떤 내용을 인간에게 전해주는데, 그 사이에 천사나 설명해 주는 사람이 끼어 있다는 것이지요. 대개는 마지막 때의 일(종말)을 이야기하고, 천상 세계나 우주여행 같은 것이 자주 등장합니다.
‘소위 이사야의 묵시록’
24-27장을 ‘소위 이사야의 묵시록’이라고 합니다. 조심해야 합니다. ‘소위’라는 단어를 빠뜨리면 의미가 전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소위 이사야의 묵시록’은 묵시록일까요? 아닙니다. 이사야가 썼을까요? 아닙니다. 묵시록도 아니고 이사야가 쓰지도 않았는데 남들이 이사야의 묵시록이라고 부르니까 정확한 걸 좋아하는 사람이 ‘소위’라고 앞에다 붙인 것입니다.
묵시록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위의 정의에 비추어 본다면, 일단 ‘이야기로 된 틀’이 없습니다. 요한 묵시록에는 요한이 파트모스 섬에 유배를 갔다가 어느 주일에 어떤 소리를 들었다고 말하지요(묵시 1,9-10). 다니엘서에서는 다니엘과 세 친구가 바빌론 궁중에 뽑혀 활동하게 되었다고 하지요(다니 1장). 이것이 설화적 틀입니다. 그런데 24-27장에는 그런 것이 없습니다. 또, 이사야가 본 환시를 설명해 주고 천상 세계의 신비를 설명해 주는 천사 같은 존재도 없습니다(다른 세계의 중개자). 즈카 1-7장의 환시에서는 천사가 환시의 의미를 풀이해 주지요. 이사야서에는 그런 것이 없습니다. 천상 세계도 언급되지 않습니다. 한마디로, 묵시록이라고 말하기에는 결격 사유가 많습니다.
‘이사야의’ 묵시록이라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이사야서를 처음부터 읽고 계신 분들을 위해 편의상 이 부분을 지금 다루고 있기는 하지만, 24-27장은 제2이사야(40-55장)보다도 늦은 시기에 쓰인 것으로 보입니다. 이사야서에, 그것도 이사야 예언서 제1부 중간에 들어와 있으니 읽는 사람들은 이사야가 썼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면, 왜 이 부분을 ‘소위 이사야의 묵시록’이라고 하는 걸까요? 그것은 무엇보다도, 묵시문학 작품들에 흔히 나타나는 것과 같은 표현들을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묵시록이 무엇인지에 대한 콜린스의 정의가 아니라 제가 어렸을 때 요한 묵시록에서 받았던 인상을 기준으로 생각한다면, 땅이 뒤흔들리고 갈라진다는 24-27장의 표현들은 여지없이 묵시문학으로 분류될 만한 것들입니다. 물론 제 어린 시절의 인상이 정확한 것은 아니었고, 이사야서의 이 부분을 묵시록이라고 부르는 것도 정확한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소위’ 이사야의 묵시록이라고 하는 것이지요.
“땅이 마구 부서진다”(24,19)
정확히는 묵시록이 아니지만, 이 부분(24-27장)에는 분명 13-23장의 민족들에 대한 심판 부분과 구별되는 특징이 있기는 합니다. 13-23장을 읽을 때에는 심판이 어느 나라 또는 민족에 대한 심판인지에 주의를 기울였습니다. 그런데 24-27장에서는 아시리아나 바빌론 같은 어떤 한 민족이 아니라 땅 전체가 뒤집힙니다.
“보라, 주님께서 땅을 파괴하고 황폐시키시며 그 표면을 뒤엎고 주민들을 흩으신다”(24,1).
“혼돈의 도시”(24,10)가 언급되기는 하지만 그것이 어느 도시를 가리키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여러 가지 의견이 제시되었지만 본래 저자는 특정한 도시를 지적하려 하지 않은 듯합니다.
특정 민족에 대한 심판 선언은 최초의 예언서인 아모스서를 비롯한(아모 1-2장) 여러 예언서에 나타나는 전형적인 특징이지만, 온 땅에 대한 선고는 이보다 더 늦은 시기에 나타난 특징입니다. 이 점 때문에도 이 부분은 이사야가 직접 쓴 것이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북 왕국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아시리아가 언젠가는 멸망하리라는 선고, 남 왕국 유다를 무너뜨린 바빌론 역시 다른 나라에 의해 무너지게 되리라는 선고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땅을 뒤흔드시어 온 세상에 최종적인 심판을 하시리라는 것, 말하자면 역사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역사 자체를 뒤엎는 심판, 이것이 이 부분의 특징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땅’의 의미에 대해서는 여러 설명이 있습니다. 인간이 사는 곳, 인간 세상 등등을 지칭한다고 하지요. 글쎄요, 땅은 절대 꺼지지 않을 것이라고 우리가 믿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요한 묵시록에서는 “땅의 주민들”이라는 표현을 여러 차례 사용합니다(묵시 3,10; 6,10; 8,13; 11,10 등). “땅의 주민들”은 땅에 집을 짓고 사는 사람들, 땅이 자기 집인 줄 알고 사는 사람들을 뜻합니다. 땅이 세상의 전부인 줄로 생각하고 살던 사람들에게 언젠가 그 땅이 무너지리라고 합니다(24,19). 이 세상의 무엇인가를 절대적인 것으로 여기고 살아가지만, 언젠가 절대적인 그것 곧 ‘땅’이 꺼지고 마는 것입니다.
“땅이 마구 부서진다”(24,19)는 묵시문학적 경고는 우리에게, 이 세상의 어떤 대단한 세력도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설마 땅이 꺼지랴?’ 생각하는 우리에게 땅마저도 꺼질 날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 묵시문학입니다.
“만군의 주님께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임금이 되시어”(24,23)
땅이 꺼지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땅이 꺼진 다음에는 무엇이 올까요? 땅도 꺼지는 때가 있을 것입니다. 인간의 역사도 끝나는 날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종말’은 또한 ‘완성’의 때이기도 합니다.
13-23장에서 민족들에 대한 심판의 끝이 이집트와 아시리아까지도 하느님의 백성으로서 하느님을 섬기게 되는 것이었다면, 24-27장에서도 마지막 모습은 어렸을 때 제가 상상했던 지구 종말처럼 그저 황량한 붉은 벌판이 아니라 “만군의 주님께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임금이 되시어”(24,23)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것입니다.
그날 “만군의 주님께서는 이 산 위에서 모든 민족들을 위하여 살진 음식과 잘 익은 술로 잔치를, 살지고 기름진 음식과 잘 익고 잘 거른 술로 잔치를 베푸시리라”(25,6)는 것이 24-27장이 그려 보이는 마지막 날의 모습입니다. 술과 음식이 넘치는 잔치는 가득한 풍요로움을, 부족함이 없는 완성을 상징하지요.
그날에는 주님의 포도밭인 이스라엘을 위하여 전과 다른 노래를 부르게 될 것입니다. 포도밭 노래(5,1-8)에서 하느님께서는 정의와 공정이 아닌 피 흘림과 울부짖음의 열매를 맺는 포도밭을 황폐하게 내버려 두겠다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 심판이 다 이루어지고 나면, ‘땅’까지 다 흔들리고 나면, 하느님께서 “주님인 나는 이 포도밭을 지키는 이”(27,3)라고 선언하실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느님과 평화를 이룰 때, 하느님은 그 포도밭에 시간마다 물을 주시며 아무도 그 포도밭을 해치지 못하도록 밤낮으로 지키실 것입니다.
이사야서를 읽을 때도, ‘묵시록’을 읽을 때에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심판은 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하시는 모든 일은 구원을 위한 길이라는 사실입니다.
[성서와 함께, 2016년 10월호(통권 487호)]
[이사야서 해설] “불행하여라!”(28,1) 안소근 실비아 수녀
지하철역에서 종종 범죄 신고 전화번호를 알리는 포스터를 볼 때가 있습니다. ‘긴급 신고’는 112번, ‘신고 상담’은 110번입니다. 눈길을 끄는 것은 포스터의 사진들입니다. 같은 모델이 전화하고 있지만, 그 모습이 다릅니다. 110번(신고 상담)에선 수화기를 들고 차분하게 말하는 모습이지만, 112번(긴급 신고)에선 수화기를 들고는 있으나 시선은 다른 어딘가를 쳐다보면서 다급하게 소리치는 모습입니다. “불행하여라!”(28,1)라는 예언자들의 선포는 이 ‘긴급 신고’에 해당합니다. 누군가가 범죄를 저지르는 것인지 아닌지 의심스러워서 경찰서에 전화해 물어보는 것이 아니라, 당장 눈앞에 큰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소리치는 것입니다.
행복 선언과 축복, 불행 선언과 저주
28-35장의 특징은 ‘불행 선언’입니다(28,1; 29,1; 29,15; 30,1; 31,1; 33,1). “불행하여라!”의 히브리어 첫 단어인 ‘호이’는 본래 조가(弔歌)에 사용하는 탄식 - 이미 죽은 사람에 대해 슬퍼하며 탄식하는 것 - 입니다. 여러 예언서에 “불행하여라!”라는 표현이 많은데, 이는 이미 멸망한 것이나 다름없는 사람들 또는 성읍을 향한 탄식입니다.
이 불행 선언은 행복 선언과 대비해 볼 수 있습니다. 시편에 자주 나타나고, 마태오 복음과 루카 복음에서도 나오는 행복 선언은(“행복하여라!”) 축복과 구별됩니다. ‘축복’이 장차 복을 받으리라는 예고라면, ‘행복 선언’은 지금 복을 누리는 사람에 대한 경탄입니다. 복음서의 행복 선언은 어느 정도 미래지향적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하느님 나라의 도래를 말하는 신약의 특성 때문이고, 본래 구약의 행복 선언은 현재의 행복에 대한 진술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저주’가 장차 일어날 불행을 말하는 것이라면 ‘불행 선언’은 이미 벌어진 일, 지금 겪고 있는 불행을 말하는 것입니다. ‘호이’가 이미 죽은 사람에 대한 탄식이라는 점에서 생각할 수 있듯이, “불행하여라!”라는 예언자들의 선언은 장차 겪게 될 심판의 선고라기보다 이미 불행에 빠져 있는, 아니면 멸망이 이미 눈앞에 닥친 이들에 대한 선언입니다. 예언자들은 110번의 ‘신고 상담’이 아니라 112번의 ‘긴급 신고’를 하고 있습니다. 그 멸망이 불을 보듯 훤하기 때문입니다.
누가 불행한가
그러면 28-35장에서는 누구를 불행하다고 할까요? 28-35장의 ‘불행 선언’(28,1; 29,1; 29,15; 30,1; 31,1; 33,1)을 하나하나 짚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28,1에서는 “불행하여라, 에프라임 주정꾼들의 거만한 화관! 그 화려한 아름다움을 잃고 시들어 버린 꽃! 술에 빠진 자들의 머리 위에, 기름진 골짜기 위에 자리 잡은 것!”이 불행하다고 말합니다. “화관”은 사마리아로 북 왕국 이스라엘이 멸망하기 전을 배경으로 합니다. 아시리아의 침략으로 멸망이 다가오는데도 상류층은 사치와 퇴폐를 일삼으니 사마리아는 불행합니다. 술 취한 이들의 머리 위에 있는 거만한 화관, 시든 꽃이라는 비유들이 매우 생생합니다. 전쟁 때문에 불행하다기보다, 위험이 다가오는 것을 모르고 술에 취해 거만을 떨고 있는 현실이 어쩌면 더 불행할 것입니다.
29,1에서는 “불행하여라, 너 아리엘아, 아리엘아 다윗이 진을 쳤던 도성아!”라고 말합니다. “아리엘”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지만, 예루살렘을 가리킨다는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본문이 단순하지 않아 여기서 말하는 아리엘의 불행은 아시리아 임금 산헤립의 침공을 가리키는 것일 수도 있고, 네부카드네자르에 의한 예루살렘의 함락을 가리킬 수도 있습니다(만일 그렇다면 이 본문은 이사야가 직접 쓴 것이 아니라 후대에 편집된 본문이라는 뜻이지요). 이 본문은 불행 선언으로 시작하지만 마지막에는 하느님께서 구해 주시리라는 것으로 끝나기 때문에 짧게 설명하기 어렵지만, 시작 부분에 불행을 선언한 이유는 예루살렘이 종교적인 축제를 거행하면서도 하느님의 뜻은 찾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29,15은 “불행하여라, 자기네 계획을 주님 모르게 깊이 숨기는 자들!”이라고 말합니다. 이사야는 자신의 뜻과 계획에 따라 살길을 찾는 예루살렘을 불행하다고 말하는데, 이것은 예루살렘이 멸망을 피하려고 다른 나라에 군사 원조를 청하는 등 인간적인 방법으로 살길을 도모하면서 하느님의 계획과는 다른 자신들의 계획을 추구했기 때문입니다.
30,1은 “불행하여라, 반항하는 자식들!”이라고 선포합니다. 여기서도 불행하다는 말을 듣는 것은 예루살렘입니다. “그들은 계획을 실행하지만 그것은 나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며 동맹을 맺지만 내 뜻에 따라 한 것이 아니다”(30,1). 여기서 말하는 “계획”은 아시리아의 공격을 받은 유다가 이집트에 도움을 청하려는 것을 말합니다. 하느님의 계획을 알려고도 하지 않고 제 뜻대로 세운 계획은 성공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러한 시도는 수치가 되고 말 것입니다.
왜 불행한가
31,1은 불행한 이유가 가장 분명히 드러나는 듯합니다. “불행하여라, 도움을 청하러 이집트로 내려가는 자들! 군마에 의지하는 자들! 그들은 병거의 수가 많다고 그것을 믿고 기병대가 막강하다고 그것을 믿으면서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을 바라보지도 않고 주님을 찾지도 않는다.” 군마로 대표되는 인간적인 힘에 의지하는 이들의 불행, 이사야서에서 되풀이되는 주제입니다. 인간적인 힘에 의지하는 이들은 멸망하고 말리라고, 이사야는 처음부터(2장) 인간의 교만을 경고했습니다.
크게 본다면, 28,1 이후의 불행 선언들은 모두 인간적인 것에 의지하는 이들을 불행하다고 선언합니다. 사마리아는 경제력을 믿고 사치에 빠져 있으며, 예루살렘은 군사력에 의지하려고 먼저는 아시리아에, 나중에는 이집트에 손을 내밉니다. 그러나 이러한 인간적인 힘은 구원을 주지 못합니다. 그들이 의지하는 그 힘들은 모두 곧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아니, 아시리아나 이집트는 처음부터 유다가 도움을 청하지 말았어야 할 나라들이었습니다. 아시리아는 시리아와 북 왕국 이스라엘을 쳐서 유다를 살려 주지만 결국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유다를 종속시켰고, 이집트는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집트에 군마를 청하러 가는 것은 금지된 일(신명 17,16)이었고, 예레미야도 이를 반대할 것입니다. 하지만 멸망 직전의 유다는 이집트에 군사 원조를 청할 것이고 결과는 비참하게 끝날 것입니다.
마지막 불행 선언
그러나 아직 하나의 불행 선언이 더 남아 있습니다. 33,1입니다. “불행하여라, 자기는 파괴되지 않았으면서 파괴만 하는 너! 자기는 배신당하지 않았으면서 배신만 하는 너! 네가 파괴를 끝내면 너 자신이 파괴되고 네가 배신을 마치면 너 자신이 배신을 당하리라.”
이 불행 선언이 누구를 향한 것인지는 한마디로 말하기 어렵습니다. 이사야 시대의 파괴자였던 아시리아라고 보기도 하고, 더 늦은 시기를 배경으로 보아 바빌론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어떤 경우든, 유다를 파괴한 이들에게 불행이 선언됩니다. 그들 역시 군사력을 믿었던 이들이고, 하느님의 계획을 따르지 않고 교만해졌던 이들입니다(아시리아의 경우 10,5의 불행 선언 참조).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을 심판하시는 하느님은, 그 심판의 도구가 되었던 이들에 대해서도 불행을 선언하십니다. 이유는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자신의 인간적인 힘을 지나치게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그들을 심판하신 다음에는, 하느님께서 시온에서 임금이 되실 것입니다(33,17-24).
이사야서의 귀결은 언제나 구원이고, 그 구원은 하느님의 나라가 서는 것으로 이루어집니다. 북 왕국 이스라엘이든 남 왕국 유다든 아시리아든 바빌론이든, 자신의 힘을 믿고 교만해진 이들은 불행합니다. 그들은 무너질 것입니다. 루카 복음의 불행 선언이 떠오르지요. 부유한 사람들, 지금 배부른 사람들, 지금 웃는 사람들, 모든 사람이 좋게 말하는 사람들은 불행합니다(루카 6,24-26). 하느님의 나라가 서기 위해서 그들은 무너져야 합니다. 이사야는 그들의 멸망이 다가왔다고 ‘긴급 신고’로 선언합니다. 세상의 눈에는 대단하게 보이는 세력들, 그들은 사실 이미 무너지고 있습니다.
[성서와 함께, 2016년 11월호(통권 488호)]
[이사야서 해설] “아시리아 임금 산헤립이 유다의 모든 성읍으로 올라와서” (36,1) 안소근 실비아 수녀
무슨 일이 일어나도 “두려워하지 마라, 하느님을 믿어라”라고 말하는 예언자. 40년 동안 똑같은 소리를 하는 예언자. 임금과 백성은 이제 그 말이 지겨웠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우찌야 임금이 죽던 해”(6,1), 기원전 740년경에 부르심을 받은 이사야는 시리아-에프라임 전쟁 때에 아하즈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하느님을 믿으라고 말했습니다. 이제 기원전 701년, 산헤립의 침공 때에도 이사야는 아하즈의 아들 히즈키야에게 똑같은 말을 합니다. 그런데 히즈키야는 그 말을 따릅니다.
“아시리아 임금 산헤립이”(36,1)
산헤립의 침공에 관한 36-37장은 2열왕 18-19장과 거의 같습니다. 아마도 이사야서의 편집자가, 이사야 예언자가 등장하는 열왕기의 이야기를 여기에 옮겨 놓은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어떤 말들을 덧붙이면서 그 사건의 의미를 나름대로 해석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본문에는 이사야 예언자가 살았던 시대보다 더 늦은 시기의 신학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히즈키야는 이사야서 앞부분에 나왔던 아하즈 임금의 아들입니다. 열왕기는 히즈키야를 흠이 있기는 하나 상당히 훌륭한 임금으로 평가합니다. 아하즈는 아람과 북 왕국 이스라엘의 공격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강대국 아시리아에 도움을 청했고, 그 결과 그때부터 유다 왕국이 아시리아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히즈키야는 그런 아시리아의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리스티아의 도시 국가들과 연합하여 반(反)아시리아 정책을 추진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집트의 군사 원조도 기대했습니다. 이사야는 이 점에 대해서는 히즈키야에게 반대했지요(30장 참조). 인간적인 힘에 의지해 자신의 방법으로 살길을 도모하려 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상황은 분명 좋지 않았습니다. 아시리아 편에서 히즈키야를 가만히 둘 리가 없습니다. 산헤립은 먼저 필리스티아의 도시들을 공격했고, 이어서 유다로 진출했습니다. “아시리아 임금 산헤립이 유다의 모든 요새 성읍으로 올라와서 그곳들을 점령하였다”(36,1). 인간적인 차원에서는 거의 희망이 없어 보입니다. 히즈키야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네가 무엇을 믿고 … ?”(36,4)
이제 랍 사케의 말을 들어 봅시다. 그는 아시리아 임금의 말을 히즈키야와 그 신하들에게 전합니다. “네가 무엇을 믿고 이렇게 자신만만하단 말이냐? … 뭇 민족의 신들 가운데 누가 제 나라를 아시리아 임금의 손에서 구해 낸 적이 있더냐?”(36,4.18)
고대에는 나라마다 각자 자신들의 신을 섬겼지요. 서로 다른 신을 섬기는 두 나라가 전쟁하는 것은 두 신이 서로 겨루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아시리아는 이미 시리아와 주변의 여러 지역을 정복했습니다. 그 민족들의 신들은 자기 백성을 구해 내지 못했습니다(36,18). 랍 사케의 말은 매우 거만합니다. 그 신들 가운데 누가 제 나라를 ‘아시리아의 신의 손에서’ 구해 냈느냐고 말하지 않고, “아시리아 임금의 손에서” 구해 냈느냐고 말합니다. 아시리아가 다른 민족들의 신들을 꺾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랍 사케는 히즈키야의 신하들과 백성들에게, 히즈키야가 이스라엘의 주 하느님을 믿고 “주님께서 우리를 반드시 구해 내신다”(36,15)고 하더라도 믿지 말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문제는 명백하게 신학적인 차원에서 전개됩니다. 아시리아 군대의 위협 앞에서 하느님을 신뢰할 수 있을 것인가?
랍 사케는 백성을 불안하게 하고 사기를 꺾으려고 거짓말도 합니다. “바로 주님께서 나에게 ‘저 땅으로 공격해 올라가서 그곳을 멸망시켜라.’ 하고 분부하셨다”(36,10). 정말로 랍 사케가 그렇게 믿는 것은 아닙니다. 하느님은 산헤립에게 그렇게 명하신 일이 없습니다. 결국 산헤립은 예루살렘을 점령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랍 사케는 이러한 말로 백성을 동요시킵니다. 위험 앞에서 하느님을 믿으려고 하는 히즈키야와 그 백성을 불안하게 만들려는 것입니다.
그 밖에도 랍 사케는 많은 말로 유다를 조롱합니다. 이집트의 원조를 기다리는 히즈키야에게 이집트는 “부러진 갈대 지팡이”(36,6)라고 말하고, 기마술을 익히지도 못했던 군사들에게 기수들만 마련할 수 있다면 말을 주겠다고 비아냥거리며 그들의 항복을 유도합니다.
“히즈키야 임금은 … 주님의 집으로 들어갔다”(37,1)
이런 말을 들은 히즈키야는 어떻게 대응했을까요? 그는 백성에게 침묵을 명하고, 이날을 “환난과 징벌과 굴욕의 날”(37,3)이라 부릅니다. 히즈키야는 옷을 찢고 주님의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당황하여 두려움에 떠는 것이 아니라, 아시리아가 하느님을 모욕하는 이 큰 수치를 하느님께서 보고 들어주시기를 간청합니다. 히즈키야에게 이 사건은 이미 인간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아시리아에 맞서기 위해 이집트에 의지하려 했을 때 히즈키야는 아직 인간적 차원에 머물러 있었고 그래서 이사야의 비판을 받았습니다. 어쩌면, 하느님을 모독하는 랍 사케의 말을 들으면서 히즈키야는 오히려 문제의 본질을 깨달았는지 모릅니다. 이제 그는 아시리아 사신들의 편지를 들고 주님의 집으로 들어가, 하느님 앞에 그 편지를 펼쳐 놓습니다. 편지를 읽으셔야 할 분, 그 편지에 대응하셔야 할 분은 바로 하느님이십니다.
이어지는 히즈키야의 기도에서(37,14-20), 히즈키야는 랍 사케의 도전에도 흔들리지 않는 자신의 신앙을 하느님 앞에 고백합니다. 다른 나라 신들이 자기 백성을 아시리아 임금의 손에서 구해 내지 못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 이유는 그 신들이 “신이 아니라 사람의 손으로 만든 작품”(37,19)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살아 있는 신이 아니기에 아무런 힘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하느님은 홀로 하늘과 땅을 만드신 분, 온 세상의 유일한 하느님, 살아 계신 주님이시기에 다른 신들과 달리 당신 백성을 구해 주실 수 있으십니다. 그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아시리아의 손에서 구원하실 때, “세상의 모든 왕국이 당신 홀로 주님이심을 알게 될 것입니다”(37,20).
산헤립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을 조롱하였고 그분을 거슬러 군사를 일으켰습니다. 그는 고대인들의 전통적인 이해에 따라, 강력한 아시리아가 주변의 여러 신을 꺾었으며 이스라엘의 하느님도 쉽게 굴복시킬 수 있으리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하느님은 소위 ‘다른 신들’과는 다른 분이었습니다. ‘다른 신들’은 사실 신이 아닙니다. 여러 신이 서로 겨루면서 세상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유일하신 한 분 하느님이 역사의 흐름을 결정하고 실행하십니다. 아시리아가 여러 민족을 멸망시킨 것은 사실이나, 그것 역시 하느님께서 오래전부터 결정하고 계획하여 이제 실행하신 것이었습니다(37,26).
“주님의 천사가”(37,36)
이제 이 전쟁의 결과도 하느님의 결정에 따라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사야서의 본문에서 그 마지막 장면은 아주 짧게 묘사됩니다. 아침이 되어 보니 주님의 천사가 아시리아 진영에서 십팔만 오천 명을 쳤다는 것, 그것이 전부입니다. 오히려 본문에서 더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것은 이 일에 대한 예고입니다. 이사야를 통하여 히즈키야에게(37,30-32), 그리고 산헤립에게(37,33-35) 선포된 하느님의 말씀은, 전쟁의 결과는 그 일이 일어나기 전에 이미 모든 것을 결정하신 하느님의 뜻에 달려 있음을 보여 줍니다. 천사가 아시리아 진영에서 십팔만 오천 명을 칠 때 이스라엘 군대는 무엇을 했을까요? 밤사이에 일어난 일이니 아마 잠을 잤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한 일은 오직 아침에 밖에 나가 그 결과를 확인한 것뿐입니다.
앞에서 산헤립은 히즈키야에게 “네가 무엇을 믿고 이렇게 자신만만하단 말이냐?”(36,4)라고 물었습니다. 히즈키야는 “우리는 주 우리 하느님을 믿소”(36,7)라고 대답합니다. 결국 전쟁의 결과는 인간의 힘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히즈키야가 믿었던 하느님의 결정에 따라 이루어졌습니다. 하느님을 믿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한 일이 없는 이스라엘은 이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사야는 오늘도 내일도 똑같은 말을 할 것입니다. 하느님을 신뢰하라고 말입니다.
[성서와 함께, 2016년 12월호(통권 48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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