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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진 시인 / 몽유_sleep walk
그가 앞서 걷고 있다. 수도원의 붉은 벽돌처럼 단단하게 봉쇄된 등을 내게 보인 채 균열된 밤의 틈에 속수무책으로 침입하고 있다.
그는 이 세상에 없는 표정 나는 그를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내게 그는 모든 처음인데 그가 나 때문에 화가 났으면 좋겠다.
그는 내가 멀어지면 잠시 멈췄다가 가까워지면 다시 걷기를 반복한다. 달이 뜨고 죽은 벌레들이 배를 내밀어 공중으로 떠오르는 차갑고 아름다운 밤에 사분음표처럼 일정하게 조율되는 그와 나의 거리. 차갑고 아름다운 거리.
그의 등이 거짓말이라고 생각한 순간. 그에게서 돋아난 커다란 날개가 촛농처럼 뚝,뚝, 녹아내린다. 도달하지 못한 채 스스로 소멸되는 전언들.
눈을 감고 입술을 깨물어 봐도 이 걸음을 포기할 수 없어 나는 절룩거리며 뒤따라 걷다가 발끝부터 조금씩 사라져가고 영원히 뒤에서 걷는 나 때문에 비로소 이 슬픔이 완성된다.
내가 최초로 그의 꿈을 꾸었을 때 그는 날짜변경선을 지나며 잠깐 내 생각을 했다,고 했다.
구름이 뚝,뚝, 손가락들을 부러뜨려 시간 속으로 던져 넣었다.
사랑한다는 마음이 들면 왜 미안해질까. 우리는 낙타처럼 걷고 있는데 서로의 눈을 바라보지도 입을 맞추지도 않는데
구름의 손가락들이 물 밖으로 던져진 물고기처럼 파닥거린다. 살아있음이 질식할 것만 같다.
어제는 내 손이 그의 얼굴을 쓰다듬었다,고 했다. 그보다 먼저 그의 손이 내 몸을 감쌌다,고 생각했다. 불확실한 사랑이어서 나와 그는 우리라는 말로 묶일 수 없다.
어느 먼 나라에서 두 손으로 자신의 팔을 안은 채 굳어버린 미이라를 보았을 때 그는 나를 떠올렸다,고 했다. 그토록 안고 싶은 사람이 그토록 죽고 싶은 감정들이 있었다.
과거로부터 온 마음이 온 몸의 마디마디를 뚝,뚝, 부러뜨린다.
그는 여전히 앞장 서서 걷고 있고 기도 대신 손가락들을 신에게 바치며 나는 이 슬픔을 완성하기 위해 영원히 뒤에서 걷는다.
웹진 『시인광장』 2017년 11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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