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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이 시인 / 통하다
나 세월을 더듬어 대대손손 여자를 터득한 책이 되었네. 그 누가 세월을 후히 베풀어 젖은 몸의 서사가 되었고 그 누가 없어 꽃피워보지 못한 금서가 되었네. 사람이 나를 잊자 얼굴은커녕 발목도 잊혔네. 입술을 축이며 차렵이불 속에서 혈흔처럼 빨간 줄 그었네. 어두컴컴한 내 속이 통어(統御)할 수 없어 조여들었지. 속세의 사람이 날 잊었으므로 시든 꽃을 못 버리는 꼴로 남아 못내 못 여민 꽃시절 지니고 그 시절 일리 없건만 자꾸만 비집고 들어가 달궈놓은 몸을 얹었네. 귓볼에서 목덜미까지 열기가 피고 별과 달과 한 여자가 울어볼 만한 밤으로 화(化)해버렸네. 빨간 실로 연인은 묶인 채* 만난다했지만 한평생 이야기 속으로 몸 감추는 삶도 있지. 희희낙락 농락도 우스워진 나이여, 한갓 피조물 책을 값지게 할 이 누구냐. 나를 만지지 마시게, 만지지 마시게,
나이 먹을수록 어쩐지 두꺼워 보이는 금서네. 당신 손에 달렸네.
* 다자이 오사무,『쓰가루․ 석별․ 옛날 이야기』에서.
웹진 『시인광장』 2016년 11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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