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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이승용 시인 / 스민다는 것 참 좋은 것 같다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5. 24.

이승용 시인 / 스민다는 것 참 좋은 것 같다

 

 

  어둠은 빛에 스미고

  어제는 다시 오늘에 스미고

  당신은 내게 스미듯

  나 당신께 스민다

 

  시간을 계절에 스며들어

  겨울을 여는 것이다

  또한 침묵에 스며들어

  봄이 자라는 것이다

  모든 것에는 금이 있다

  사랑도 스미는 것이다

  틈으로 스미는 일로서

  새로운 무엇이 여는 것이다

 

  스미지 않고서는 닫힌 마음을 열 수 없고

  언 땅을 열 수 없는 것처럼

  틈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스며든 풀잎에는 생기가 있다

  스며든 사람 사이에는 이해가 있다

 

  스며들 수 있는 사람은 사랑을 안다

  이파리의 떨림이

  나비의 흔들림이

  모두가 스미는 일로서 꽃이 핀다

  스며든 새벽이 있어 눈을 뜨고

  맑고 깨끗한 아침을 맞는 중이다

  스민다는 것은 착한 영혼이다

  부드럽고 고운 혼이다

 

  스민다는 것은 참 좋은 것 같다

 

시집『춤추는 색연필』(시문학사, 2012) 중에서

 

 


 

 

이승용 시인 / 한 그루 꽃처럼 나무처럼

 

 

  푸른 줄만 알았던 단풍이

  붉은 줄만 알았던 가을 단풍이

  노란 빛도 가지고 있다는 걸

  가까이 가서야 알았다

 

  느티나무의 시듦이 가지 끝에서부터

  옷을 벗는다는 걸

  멀리 가서야 알았다

 

  자기보호를 위해 독한 향을 뿜는 은행나무처럼

  각자의 빛이 어우러져 무지개가 되는 일처럼

  머리에서 가슴까지 내려오는 일에

  얼마나 많은 시름과 경계를 두어야 했던가

 

  가을에 물드는 나무는 안다

  바람은 부질없는 죄

  지금 여기서 누리는 웃음이 꽃이라는 걸

  한 그루 꽃처럼 서 있는

  저 나무는 안다

 

시집『춤추는 색연필』(시문학사, 2012) 중에서

 

 


 

이승용 시인

숭의여자대학교 응용미술과와 아주대하교 교육대학원 국어교육락과 졸업. 1990년  《시문학》을 통해 등단, 시집으로 『춤추는 색연필』(시문학사, 2012)가 있음. 현재 한국현대시인협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