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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연 시인 / 종(種)과 종 사이
나는 또 미안해하고 미안해하는 마음으로 돌아와 냉장고 앞에 서 있다.
토마토 안에 개구리가 거북이가 앉아 있는지 토마토는 더 이상 물러지지 않는다. 물러서지 않는다.
이미 다른 계절이 오고 있다.
사랑도 아니고 모욕도 아니고 손에 들려 있던 것이 사실도 아니고 겉옷도 아니었다면
저녁의 어스름은 내 어깨 위에 손을 얹었을 것이다.
늙은 여자의 고요한 뺨처럼 수줍음이 사라진 오후의 장미 따위 조용히 지나치고 말았을 그 골목 그 어디에도 창문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메마른 나무 테이블을 가운데에 두고 서로의 눈으로 가슴을 오래 겨누었을지라도
우리는 또다시 헤어졌을 것이다.
아무리 찾아도 왔던 길이 나타나지 않아 내 손아귀에 잡힌 손금을 찾아 나서는 동안 내 이름은 내가 불렀고 네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잠깐 사이 우리의 상황은 많이 달라져 있다.
가까워질수록 멀어지는 사람의 신발을 생각하기도 하고 바라보기도 하는 저녁 무딘 칼로 버터를 자른다. 사각의 후라이팬에 버터를 녹인다. 버터가 지글지글 끓고 있다.
나는 짐작하고 또 짐작한다.
쉽게 보이는 것이 쉬워 보이는 것이 감자라고
내 어깨 위에 포트스잇을 붙인다.
버터는 버터를 벗어나고 나는 점점 작아지거나 마침표가 없는 문장이 되어져 겨우 포스트잇에 붙어서 늙어갈 지 모르는 저녁.
자유도 아니고 풀잎도 아닌
내 이름을 부른다.
웹진 『시인광장』 2016년 7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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