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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신승민 시인 / 전갈

by 파스칼바이런 2019. 5. 27.

신승민 시인 / 전갈

 

 

      죽음이 개운하게 피어나는 노을 진 사막.

      흑전갈 한 마리가 봉분 없는 묘역을 걷는다.

      조마조마한 늙은 곱사등이여

      신성불가침의 외로운 종말이여

      자갈처럼 씹히는 어스름에 떠밀려

      혈혈단신 애증의 흙바람을 건너왔으니

      네 여로(旅路)는 수난 많은 형극(荊棘)이어라.

       

      잔병(殘兵) 같은 다리로 자근자근 밟아온

      굽고 비틀린 풍찬노숙의 세월 동안

      드높던 결기는 아지랑이에 녹아 흩어지고

      용맹은 묵중한 그늘 아래 곤두박질쳤도다.

       

      젊음은 모래폭풍 속의 갈 길 먼 노역(勞役)

      한 칼 꽂을 영지(領地)조차 거두지 못해

      들끓던 독샘 가물어 터져버린 꼬리는

      패주(敗走)에 찢긴 조야한 기치(旗幟)가 되고

      우악스런 집게발은 야음에 타고 녹슬어

      쇠락한 군벌(軍閥)의 부월(斧鉞)로 남았구나.

       

      생이란, 그저 각자 다른 권태와 후회이거늘

      또다시 누추한 갑주(甲冑)를 해거름에 담금질하며

      어기적어기적 아직도 외길 걷는 까닭이 무엇이냐.

      가거라, 남획을 꿈꿀 수 없는 유리걸식이여.

      신기루처럼 어른거리는 이승을 걷어내고

      떠나라, 이젠 타향도 고국도 다 부질없으니

      네겐 차마 서운할 것도 없는 먼지뿐이다.

       

      아수라를 삼킨 깊고 먼 낙일(落日)이 어찌

      보이지 않는 여생(餘生)의 목줄을 아쉬워하랴.

      적막하게 미행해 오는 황천(黃泉)을 두려워하랴

      솟을 수도 꺼질 수도 없는 불운한 투지(鬪志)

      고성(古城)의 그림자처럼 끝 모를 언덕에 어릴 뿐이노라.

 

웹진 『시인광장』 2016년 7월호 발표

 


 

신승민 시인

1992년 서울에서 출생. 한양대학교 한국언어문학과 졸업. 2015년 《심상》, 《미네르바》로 시 등단, 2016년 《문예바다》로 평론 등단. 시집으로 『죽은 시계를 차는 밤』, 장편소설 『權道, 勢家의 길』, 『主君과 宰相』 등이 있음. 제45회 천마비평상, 제17회 의정부 문학 대상, 제1회 월간문학 한국인 창작문예상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