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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리 시인 / 우리는 또 무엇으로
지나가면 다시 오지 않을 햇빛, 바람, 구름인데 몇 시간 째 구석에 앉아 그냥 바라보고만 있다.
한 사람이 아파서 다 아프고 그 한 사람은 아픈 것도 모르고
햇빛 든 자리 온기가 식어가고 있을 때
라디오를 진행하는 사람은 어느 젊은 가수의 죽음을 말하며 내내 울먹였다.
우리는 또 무엇으로 살고 있는가.
대신 아파줄 수가 없는 이것도 사랑이라고,
차라리 치득치득 쌀이라도 문질러야 되지 않는가
제 이름 불린 듯 나뭇잎들은 우르르 구석으로 몰려가고 다시 구석을 비워주고 있다.
우리가 믿었던 것이 그저 버티는 것 외에 아무 의미가 되지 못한다는 걸 알았을 때
도리어 아픈 사람이 성한 사람을 위로하고 있었다.
젊은 가수가 죽었다는데
국화꽃이파리는 돌돌 말리어 제 안을 다시 파고든다.
계간 『시산맥』 2015년 봄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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