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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주 시인 / 홀수의 새벽
강 아래쪽에 끝없이 삼림이 펼쳐졌다. 누군가는 꿈꾸기를 멈춰 버린 폐허일지 모른다고 했다. 진흙은 깊은 수렁이었고
숲을 지탱하는 호흡이 무한히 반복되고 있었다
아흐레의 밤이 지났고 우리의 꿈은 불가능한 밤의 연속이었다 무화과 열매 속에서 새의 울음소리가 들렸고 각자의 새벽이 시작되는 중이었다
이방인들이 불면을 견디며 모국을 향해 혼잣말을 하는 동안 겨울을 뚫고 끝내 봄은 올 테지만
동그랗고 던지기 좋은 크기의 달을 기다렸다 던졌던 달이 되돌아오는 동안 검지로 하늘을 가리키면 얼굴도 성별도 모르는 별이 돋아났다
검지에 묻은 마음은 한없이 조용했다. 모든 것이 우연이며 세계 속에 얼마나 많은 우연이 마음에서 시작되는지 알지 못했다
시간과 공간이 이루는 대칭에 따라 돌아가고 돌아오는 철새는 모두 겨울의 말을 주고받았다
서로가 서로를 반영하며 계절은 끝없이 자라고 있었다
계간 『문예바다』 2018년 봄호 발표
강주 시인 / 꺾꽂이
여기까지와 여기부터의 차이
나뭇가지를 꺾어 마음에 묶고 대답을 기다립니다 정수리에서 쏟아지는 빛과 의문들 거울 속엔 밀림이 우거지고
나는 겨울을 지나고 있습니다 겨울을 지나면 겨울이 아닐 것처럼
빛의 자음과 모음을 결합해 사물을 만들고 사물 속으로 걸어 들어가 몸에서 발을 떼어 놓고 몸에서 손을 떼어 놓고 몸에서 하나씩 몸을 분리합니다
몸에서 몸을 떼어낼 때 멀리 있던 마음이 달려옵니다 손뼉을 치는 손들이 조용해집니다
눈꺼풀은 문장이 되고 밀물과 썰물은 오랫동안 주고받는 것을 배우며 서로를 읽고 지웁니다
뿌리는 괄호를 뚫고 나아가는 새로운 지도입니다 사물 속에서 발을 꺼내자 동서남북이 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렸습니다
계간 『사이펀』 2018년 봄호 발표
강주 시인 / B와 B′의 심야
어둠이 허리띠를 풀었다 군중이 흘렀고 뒷모습은 낱자이거나 문장을 이루었다
병원과 회사와 장사꾼과 가수와 주부와 학생이 진열되어 있는 건물들이 흔들렸다. 노선의 혼선과 잡음이 간이역에 모였고
불길 속으로 사람을 던졌으니 걷잡을 수 없었고 사람은 스스로 내던질 수 있는 단어였나 뒷모습만 기억하는 사람들 속에
하나의 단어가 문장이 되고 책이 되는 과정 속에 몇 사람을 더 던져야 하나 어둠에서 시작한 끈을 잡고 아침이 될 때까지 끈은 몇 번의 전율을 느꼈나 너는 앞모습 따윈 단 한 줄도 쓰지 않고
앞모습은 건물 속에 진열되어 있는 그 누구나이며 얼마든지 드라마와 다큐멘터리와 영화와 음악과 미술이어서 사람들 속에서 가깝고도 멀며 모든 것이 말이 되면서 동시에 말이 안 되는
이상기후가 계속되었다
얼굴에 붉은 입술이 맺힌 사람들. 서로를 뚫어져라 부딪치는 사람들. 허리띠에 구멍이 하나 더 생겼고
109쪽을 힘껏 찢었다
계간 『사이펀』 2018년 봄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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