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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송은숙 시인 / 환상의 나라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5. 26.

송은숙 시인 / 환상의 나라

ㅡ미하엘 엔데를 그리며

 

 

   그대 사는 세상에선 포크가 사과로 변하기도 한다지*

   끝이 갈라진 포크는 한 그루 나무이고

   사과 속의 사과 씨 안에는

   사과나무 전체가 숨어있어

   포크는 사과이고, 사과는 포크가 되는

   마법의 소원이 이루어지는 세상이라지

   하긴 그래야 공평하지

   사과였던 포크가 포크였던 사과를 콕 찍어보아야

   사과였던 포크의 아픔을

   포크였던 사과도 같이 나눌테니까

   향긋한 살을 여는 은밀한 기쁨을

   사과였던 포크도 누릴 수 있으니까

   마법의 소원이여,

   그렇다면 수도꼭지를 고양이로 변하게 해볼까

   수도꼭지는 매끄럽고 고양이 털도 매끄럽지

   수도꼭지는 빙빙 돌고 고양이도 제 꼬리 잡으려 빙빙 돈다네

   수도꼭지는 똑,똑 소리내고

   고양이는 야옹야옹 운다네

   수도꼭지는 어두운 땅 속을 달려온 물줄기를 가두어 조금씩 조금씩 흘려보내고

   고양이는 어두운 몸 속을 돌아다니는 열망을 찔끔찔끔 흘리고 다닌다네

   그래서 고양이가 수도꼭지가 되어 세면대에 달려있다면

   야옹야옹 소리 내어 물을 흘린다면

   재미있겠지

   컵이 감자가 되고

   감자가 휘파람새가 되고

   휘파람새가 책이 되는 세상

   컵의 기억을 간직한 감자와

   감자의 기억을 간직한 휘파람새와

   휘파람새의 기억을 간직한 책들이

   옹기종기 뒤엉켜 있는 세상

   어느 날 옛시집을 펼쳤을 때

   활자들이 휘파람을 불며 날아가는 세상

 

* 미하엘 엔데의 <마법학교>에 나오는 내용

 

월간 『현대시』 2006년 12월호 발표

 

 


 

 

송은숙 시인 / 경계

 

 

  경계에 대해 생각한다

  술에 취해 동구길 갈지자로 걸어오시던 아버지

  걸음의 이쪽과 저쪽 끝 사이

  보리밭과 밀밭, 같이 푸르렀지만

  하얗게 떠오르는 빛깔의 경계 선명하다

  문 앞에서 누에처럼 누워 한잠 드신

  이건 시간의 경계인가

  추녀 끝을 지나는 달빛의 경계는 어디인가

  마당에 스며드는 늙은 매화나무 그림자의 경계는

  꽃잎을 떨게 하는 노래의 경계는

 

  경계는 선이 아니라, 금이 아니라

  서금서금 섞이는 것

  사투리의 경계가 그러했다

  기차가 추풍령을 헐떡이며 넘을 때

  충청도와 경상도의 말들이 섞이며

  왁자하게 맞대면하다 슬그머니 바뀌는 사이

  빠알갛게 겨울을 견디던 창밖의 잎 진 나무들이

  어느 정거장부터 연둣빛으로 몽롱해지는 때

 

  아버지 사십구재 다녀오던 그 해 봄

  땅속을 흐르던 수액이 해동갑 하여 물관을 넘는지

  흙을 부풀리던 살얼음 녹아내리자

  나무들은 서둘러 저마다 초록 휘장을 둘렀다

  아, 저 차가운 강물 불현듯 건너서

  먼 들의 아지랑이처럼 흔들리며 가신다

  목울대를 비스듬히 넘어오던 울음이

  곡(哭)과 루(淚)의 경계에서 출렁이던 때

 

격월간 『시사사』 2017년 7~8월호 발표

 

 


 

송은숙 시인

대전에서 출생. 2004년 『시사사』 신인상 수상으로 등단. 시집으로 『돌 속의 물고기』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