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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유계영 시인 / 불안을 전달하는 몇 가지 방식 중에서

by 파스칼바이런 2019. 5. 28.

유계영 시인 / 불안을 전달하는 몇 가지 방식 중에서

 

 

신쇼(志ん生) 선생의 라쿠고 중에 커다란 꿈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 누군가가 후지산에 걸터앉은 꿈을 꾸었다고 하자, 다른 사람이 그보다 더 큰 꿈을 꾸었다며 나섰다. 어떤 꿈이냐고 묻자, 가지[茄] 꿈이라고 했다. 가지가 얼마나 컸냐니까, “어둠에 꼭지가 달려 있는 것 같았다”고 했다.

 

―기타노 다케시, 『다케시의 낙서 입문』 중에서

 

꿈에서 완성한 최초의 회화

잠에서 깨어난 피카소는 엄마와 밀가루 반죽을 빚었다고 한다.

아무렇게나 떼어내 수프를 끓이고

꿈속의 점선면들을 잊었다고 한다.

맛있게 먹었다고 한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푸른색 식용색소, 허물벗는 영양실조와 화상자국, 창고에 숨겨 키운 들쥐, 자석을 입에 문 모형 붕어, 이국의 채널만 나오는 텔레비전, 선명한 엄마, 엄마가 보고 싶은 오후……

욕심이 많은데

그렇게 살 수 있을까.

 

나는 방으로 돌아가 의자에 앉았다고 한다.

벽이 마주보고 있었다고 한다.

살아있다니 참 지긋지긋한 일이야

가만히 앉아 그렇게 말하고

주먹만 내는 가위바위보를 계속했다고 한다.

침대에 누워도 벽이 내려다보고 있었다고 한다.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잠이 푸른 파라솔을 펼치며

온종일 따라다녔기 때문에

대낮에도 우리가 쌍꺼풀을 비비며

그늘 밑을 떠돌게 되었다고 한다.

아― 피카소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의심이 하품처럼 피어올랐다.

 

웹진 『시인광장』 2016년 6월호 발표

 


 

유계영 시인

1985년 인천에서 출생. 동국대 문예창작학과 졸업. 2010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온갖 것들의 낮』(민음사, 2015)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