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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연숙 시인 / 키리에*
미망인의 눈동자는 밤 같이 어둡다 제 아비의 영정 앞에서 세 살, 다섯 살 된 아이들은 종이컵을 쌓으며 놀고 있다 종이컵이 무너져 내릴 때마다 아이들 웃음소리 와르르 무너져 내린다 모든 언어를 잠가 놓은 장례식장 안
무너지는 일이 즐거운 나이 아버지는 즐겁게 무너졌다 무너졌던 것이 다시 쌓일 때 그 기억들은 힘겹게 쌓일 것이다
저 아이들을 위한 자비의 기도 어디서 구할 것인가
종이컵 안으로 노을이 진다 제 몸 잘게 부수어 강물에 풀어 놓는다 몸의 무게는 이제 부레처럼 가벼워질 것이다 물결 주름 사이에 접혀 있던 마음 지느러미를 털며 풀려 나갈 것이다
어떤 고통의 선택을 우리는 왜냐고 묻지 못한다 저마다의 기억을 콩나물처럼 담아놓고 죽음이 진설된다 여러 겹의 비닐테이블보 중 한 겹이 일회용 그릇을 둘둘 말며 벗겨져 나간다 한 生의 허물처럼
목청 큰 바람이 한 바탕 강물을 휘젓고 간 자리 수심이 깊다 그 강물 위에 손을 얹는다
키리에, 키리에, 키리에 엘레이손
* 자비를 구하는 기도
월간 『시와 표현』 2012년 2월호 발표
송연숙 시인 / 고추 꽁지
동아일보에 실린 고추스펙에 관한 난상토론을 읽다가 문득 딸아이 생각이 났습니다.
지금은 처녀가 된 딸애 세 살 무렵, 친구가 아들을 데리고 놀러왔습니다. 한 나절을 참새처럼 어울려 놀던 그 아들이 오줌이 마렵다고 합니다. 친구는 빠르고 익숙하게 요구르트 병을 들이댑니다.
놀던 자리에서 당당하게 바지를 내리고 쉬 하는 아이, 그 아이의 그곳을 숨을 죽이고 들여다보는 우리 아이. 노란 오줌이 요구르트 통에 채워지고, 딸아이의 눈은 점점 휘둥그레졌습니다.
“어, 얘는 꽁지가 있네!” 집안은 웃음바다가 되고, 딸애는 오줌 방울 같은 울음을 뚝뚝 떨어뜨리며 방으로 나를 끌고 들어갑니다. “엄마, 나는 왜 꽁지가 없어?”
고추도 스펙이 되는 세상의 터널을 내가 걸어갑니다. 강산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길, 꽁지들의 길을 비집고 딸아이가 걸어갑니다. 술 대신 일과 육아의 자갈밭을 구르다 보면 입 안에 모래가 쌓여갑니다. 모래의 여자가 되어 갑니다. 모래의 세상이 되어 갑니다.
계간 『예술가』 2017년 가을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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