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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호준 시인 / 사막의 파수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5. 28.

김호준 시인 / 사막의 파수

 

 

  종종 바다로 밀려나가는

  사막 한가운데에서 나는

  파수꾼임을 자처해왔다

 

  모래알을 움켜쥐던 바닷물이 다 말라버리고 나면

  가늘고 투명하게 번지는 양막이 살색 협곡을 에워싼다

  하얀색 외투는 내 몸에 꼭 맞으니

  성급하게 메운 실루엣이 분명하다

  소매의 공백을 축내온 태양이 겨우 저물었다

  소금보다 여려서 방랑자인 모래 알갱이들이

  굴곡진 낙타 잔등에 달라붙어 별자리처럼 타오른다

  내막의 면을 매만지며 우그러지는 빗방울에서

  한 모금씩 물비린내가 묻어나온다

  가지런히 흘러내리는 점적(點滴)들마다

  시퍼렇게 설익은 혈관 가지들이 뻗쳐있다

  메마른 천둥소리는 모래바람에 묻혀 허우적대는 사막의 오랜 풍습이다

  양막은 과연 누군가의 탄생을 숨기려 드는가

  손이 귀한 대지는 잡음으로 운다, 파도가 되어

  뭍으로 돌아오지 못한 태아의 비명은

  수면 아래 감춰진 파동의 골이 등고선을 찢고 나온 징후이다

 

  오래 잠들었던 양수가 쏟아져 나오니, 이제는 나의

  새물, 퍼덕이는 진전(震顫)에서

  비늘 떼 지은 연푸른 화생(化生)*이 몰려올 시각이다

 

*형태와 기능을 바꾸는 세포재생의 수단은 개체의 생존에 이로운 경우가 많다.

 

계간 『리토피아』 2014년 겨울호 발표

 

 


 

 

김호준 시인 / 해부 4

 

 

  속절없이 말라버린 육체를 겪어본 사람만 알 것이다

  또 다른 거리에 젖은 소리들 그 높이를 안아주지 못한 채

  지독하게 울부짖고 있는 이 문, 너머 귓바퀴

 

  깨물어대는 어둠이란 나만을 위한 외출이지만

  나는 머무르는 것에 대해 고민해왔고

  하루하루 번듯한 옷을 찾아왔다

  자신의 냄새를 잃고 가끔 집도 잊은 사람들

  헐벗은 채 지금 이곳에 뿌려져, 있다

 

  사실 내 곁에 꽃 향이 나는 칼이 있다

  해외 여행지에서 얻은 텅 빈 금속이라지만 살짝 깨진 새벽쯤

  오래전부터 파묻힌 육체들은 타인에게 깊어 편안하다

  좀 더 솔직히 내 안의 장기를 꺼내고 싶을 뿐

  추운 계절만큼 따뜻해지는 체온이 아프도록

  보고 싶다

 

  시들어가는 꽃잎들의 생이란 생략되어지는 공통점과 마주하는 것

  시기하지 않고 피는 목소리들은 엉겨 붙고 체취를 탐닉했지

  허기져서 끓어오르던 너는 예쁘고

  너는 사랑스럽다

 

  어린 물무늬는 푹신하지만 금방 식어버리는 땀처럼 춥다

  어디로도 되돌릴 수 없는 삶은

  내 나이만큼 피어나는 실수를 지울 것이다

 

  이 순간을 기억하고 있는 자들의 가라앉지 않은 체위,

  잠잠해진 방안의 습기는 달빛이 예보하는 내세의 공기로 퍼졌다

  바스락, 밖으로 멀어져가는 저 잠의 달콤함을 누군가 맡은 것일까

  오늘 나는 이 문을 닫고 싶지 않다

 

계간 『시와 정신』 2016년 겨울호 발표

 

 


 

김호준 시인

2014년 계간 《시와 사상》으로 등단. 현재 <필내음>, <한국의사시인회> 동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