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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백 시인 / 경계의 그늘
굽은 길이 마음을 편다면 운문사 가는 길 잡겠네 가난한 물줄기들 골짝마다 떠나와 잔기침 한 번 없이 내를 이뤄 모여드네 서툰 종이학 접듯 산허리 눌러 오르면 벽에 갇힌 물줄기 피멍든 수면 이루겠네 그 위로 달이 뜨고 별이 지고 산세상 어우러지는지 막힌 길을 흐름으로, 흐름을 다시 막아 산문이 보인다면 산 아랫마을쯤 서성이겠네 밤마다 물을 거르는 체소리 열리고 떠나간 바자국 벗어놓은 모래알 달빛처럼 쌓이겠네 성(聖)도 속(俗)도 모르면서 경계의 그늘에 앉아 법고 소리에 숨을 죄겠네 굽은 마음 어디에도 눕힐 수 없다면 귀를 숙여 더부살이하겠네
시집 『수평선에 입맞추다』(문학동네, 2004) 중에서
이동백 시인 / 靑山圖
길은 무덤에서 끝나 있다 집을 떠난 새들이 바람 속에 길 없는 길을 물을 때 물오리나무에서 죽비 소리가 쏟아진다 늙은 상수리나무 손가락 사이로 얼핏 보이는 강물 세상에서 미처 이름을 얻지 못하고 내 속에서 흩어진 글자들 답답한 듯 돌아눕는다 물소리가 깊어지는 밤이면 산이 가끔 내려와 못다 푼 수수께끼를 푼다 이제 그만 내려가라고 몸을 턴다 산도 강도 오래 누우면 따스한 무덤이라고 나는 바람 속에 집을 세우고 돌아눕는다
시집 『수평선에 입맞추다』(문학동네, 2004)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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