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시인과 시(현대)

이동백 시인 / 경계의 그늘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5. 28.

이동백 시인 / 경계의 그늘

 

 

  굽은 길이 마음을 편다면

  운문사 가는 길 잡겠네

  가난한 물줄기들

  골짝마다 떠나와

  잔기침 한 번 없이 내를 이뤄 모여드네

  서툰 종이학 접듯 산허리 눌러 오르면

  벽에 갇힌 물줄기

  피멍든 수면 이루겠네

  그 위로 달이 뜨고 별이 지고

  산세상 어우러지는지

  막힌 길을 흐름으로, 흐름을 다시 막아

  산문이 보인다면

  산 아랫마을쯤 서성이겠네

  밤마다 물을 거르는 체소리 열리고

  떠나간 바자국 벗어놓은 모래알

  달빛처럼 쌓이겠네

  성(聖)도 속(俗)도 모르면서

  경계의 그늘에 앉아

  법고 소리에 숨을 죄겠네

  굽은 마음 어디에도 눕힐 수 없다면

  귀를 숙여 더부살이하겠네

 

시집 『수평선에 입맞추다』(문학동네, 2004) 중에서

 

 


 

 

이동백 시인 / 靑山圖

 

 

길은 무덤에서 끝나 있다 집을 떠난 새들이 바람 속에 길 없는 길을 물을 때 물오리나무에서 죽비 소리가 쏟아진다 늙은 상수리나무 손가락 사이로 얼핏 보이는 강물 세상에서 미처 이름을 얻지 못하고 내 속에서 흩어진 글자들 답답한 듯 돌아눕는다 물소리가 깊어지는 밤이면 산이 가끔 내려와 못다 푼 수수께끼를 푼다 이제 그만 내려가라고 몸을 턴다 산도 강도 오래 누우면 따스한 무덤이라고 나는 바람 속에 집을 세우고 돌아눕는다

 

시집 『수평선에 입맞추다』(문학동네, 2004) 중에서

 

 


 

이동백 시인

1955년 경북 경산에서 출생. 1979년 영남대학교 약학대학 졸업. 1996 년 월간 《현대시》로 등단. 2004년 시집 『수평선에 입맞추다』 상재, 2017년 시집 『대구선』 상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