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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수 시인 / 꽃의 좌표
어쩌다가 한 번 붉은 게 아니다 피기 시작하고 있지만 누구의 혀도 물들이지 않았지만
피가 소란해진다 어떤 봄에도 닿지 못한다는 것은 지금 생각하지 않는다 모든 것이 여전한 이곳에 서서
어쩌다가 붉은 빛을 훔친 것이 아니다 바람마다 붉은 그림자 지는 것이 아니다
말을 여는 것처럼 말을 깨문다 망각을 흔들어 깨우는 불안처럼 불안에 연루된 부정처럼
붉은 것을 끄집어내야 했고 조금 더 밀어내는 동백, 꽃 바깥에 놓인 꽃
극소량의 태양 속이다
월간 『현대시학』 2013년 3월호 발표
한영수 시인 / 케냐의 장미
마을버스를 탄다 종점까지 간다 전철을 탄다 종점까지 간다 오늘의 날씨는 영하이거나 다시 영하일 듯 하고 나는 케냐로 가고 있는 중이다 케냐의 장미 밭에서 내 손목은 까망 발목은 까망 장미 향기는 나를 감싸고 온종일 허리를 숙이며 내 이름은 노바디 내 목소리는 까망 프라이팬이 볶은 쥐눈이콩같이 까망 일당 일 유로를 받아들며 또는 애니바디 날씨 덕분이지 케냐에는 늘 장미꽃이 피고 천만 송이 장미 밭에서 내 이름은 천만 송이 새벽의 이슬 꽃잎 위를 구르다 다른 세계로 옮겨가지 손목과 발목과 목소리가 먼저 귀화하지
월간 『문학사상』 2012년 6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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