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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정용주 시인 / 혼자 울지 마라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5. 29.

정용주 시인 / 혼자 울지 마라

 

 

하늘아래

어떤 슬픔도

온전히 한 존재의 몫으로

주어진 것은 없다

 

먼 단풍도

홀로 붉지 않는다

 

한 바람이

서늘한 능선의 가슴을 쓸면

마침내 모든 나무가

서로에게 물들어

 

가난한 영혼의 연대가

온 산에 붉다

 

들꽃을 바라볼 때

꽃의 귀는

너를 듣는다

 

홀로 슬퍼 자기를 연민할 때도

꽃은 피고 사랑은 간다

 

한 마음 괴롭히는

그 까닭으로

모든 영혼이 운다

 

우리는 모두

물들어간다

혼자 울지 마라

 

월간 『시인동네』 2018년 5월호 발표

 

 


 

 

정용주 시인 / 새벽 눈(雪)

 

 

왼손잽이 아버지 평생을 갈아

그믐달로 패인

먹빛 숫돌

 

풀숲에 기울어진

빈배

 

이승에 가난했던 내 아버지

먼 나라에서 벌써 일어나

 

얼음 숫돌 낫을 가시는가

어둠 이편

아들 나라에

 

스륵스륵 빛가루내린다

 

월간 『문예중앙』 2017년 3월호 발표

 

 


 

 

정용주 시인 / 접목(椄木)

 

 

사선으로 단칼이 지나간다.

머리를 부정하는 몸과

뿌리를 지워버린 기억

허공에 맞댄다.

 

선혈 낭자한 실핏줄

친친 동여맨다.

 

굴욕의 문서를 찢고

새롭게 태어나라.

 

반의 세계는 서서히 죽어간다.

 

부정을 부정하기 위해

온 힘으로 결합하는

두 개의 부정

 

뱀에서 악어가 태어나고

양에서 늑대가 생겨난다

 

나는 매일 죽으며

변종이 되어간다.

 

월간 『시인동네』 2016년 12월호 발표

 


 

정용주 시인

2005년 계간 ≪내일을 여는 작가≫로 작품활동 시작. 저서로는 시집으로 『인디언의 女』,  『그렇게 될 것은 결국 그렇게 된다』와  산문집 『나는 꼭 행복해야 하는가』,  『고고춤이나 춥시다』,  『나는 숲속의 게으름뱅이』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