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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선희 시인 / 투무르잠*
누가 아침을 기차라고 말한다. 밥솥을 두드리자 바퀴가 달린다. 달리는 것엔 뜨겁게 살아가는 발의 이야기가 있다. 아침을 먹지 못한 사람들, 끝없이 펼쳐진 벌판, 풀지 않은 몸은 보따리 속 자전거가 방울뱀처럼 잠든 고향집, 늙은 부모에게 떠맡긴 젖먹이, 병든 아내가 어릿댄다. 동굴을 만들며 기차가 뱃속을 달린다.
이른 새벽 허름한 가방처럼 플랫폼에 오르는 발, 별들만의 뒤척거림이 이마에 깊은 파도를 그려넣은 해가 뜨자 눈부신 한 송이 다알리아꽃이 핀다. 바람의 방향으로 꽃씨를 뿌린다. 갈퀴 같은 생업이 무섭다고 창 밖 나무들도 떼창으로 울부짖는다. 바이칼 넘어 초원을 넘어 쉴새없이 달려온 바퀴가 마침내 국경을 넘는다.
열흘 동안 퉁퉁 부은 발이 삼켰던 보따리 가방 보따리 가방, 가방을 풀자, 몸속 층층계단에 쌓인 발이 굴러간다. 발이 되었던 물건을 건네고 돌아오는 길 누가 아침을 기차라고 말한다.
* 러시아 횡단 열차 이름
계간 『미래시학』 2017년 겨울호 발표
장선희 시인 / 두 개의 에피소드와 페르시아 슬리퍼
‘회신하지 않은 편지’ 에 여왕의 섬세한 밤이 보인다. 빨강 벽지를 뒤로 한 하얀 나이프가 단골 메뉴에 꽂혀있다.
벽난로가 페르시아 슬리퍼처럼 펑퍼짐하다. 하늘을 향해 출항한 케이스 속 담배들 추리력이 담배 연기로 피어난다.
헨리 워드 바처의 액자 없는 초상화가 범인을 밝힐 단서를 가리킨다. 시거를 문 채 창을 등진 그림자 바닥에 아무렇게나 세워둔, 누굴까 왓슨 박사가 계단으로 올라오는지 나무 계단은 삐걱대고 시곗바늘은 오후 세 시를 움켜쥔다.
라이터를 켜자 깊고 푸른 벽에 총으로 써내려간 짐 모리아 이니셜 J와 M이 거울 속으로 사라진 발걸음 그녀는 언제 벽 속에 갇힌 걸까 셜록과 왓슨이 앉았던 곳을 지나는 동안 나는 샅샅이 탐색된다. 체포와 실토로 은유된 참회
작은 방의 벽시계가 ‘바스커빌의 사냥개’를 울부짖는다. 사냥개는 달 아래서 내 그림자를 짖고 ‘다섯 개의 오렌지 씨앗’이 죽음을 예견 했다는 듯 초조와 진저리로 빠져나간다.
어금니보다 단단히 문에 박힌 마자린의 보석이 된 듯 멈춘 발.
붉은 양탄자가 귀퉁이를 움직여 귀를 만들자 ‘사자의 갈기’가 등을 돌린 채 그르렁댄다. ‘얼룩무늬 끈’이 뱀이었다는 듯 쉭쉭 혀를 날름, 귀를 핥는다. 오그라든 몸이 문 밖으로 툭, 떨어진다.
소시오패스가 오후의 모자 속으로 몸을 숨긴다.
웹진 『시인광장』 2018년 6월호 발표
장선희 시인 / 살고 싶은 곳이 프로방스 언덕입니까
석회가루 떨어진 벽의 명암은 베어 문 사과 속처럼 선명하다
모험이 해질녘 즈음, 볼로뉴 숲의 숨결을 움켜쥔 부인들의 과일바구니엔 오렌지가 또렷하게 눈을 뜬다
모든 건 루나틱*이라며 도대체 누가 스스로 말이 되어 생트빅투아르 산 속 연못으로 돌진한 걸까
바람을 빼주지 않으면 폭발하는 관계가 거의 끝나갔다
슬픔에는 가치가 있다고 바구니 속 썩어가는 사과들 순간이 갈라놓은 기억엔 자물쇠가 필요 없다
빛의 진동을 진군에 놓고 생트빅투아르 산을 지날 때, 우리의 의식은 살갗에 밀밭 하나씩 그려넣는다
순수 시대를 지나 별들의 다락문 밖으로 걸어간 붉은 조끼의 세잔, 프로방스가의 아낙을 화폭 속 낡은 의자에 앉힌다
석양을 붓 끝에 찍어 주름 한 올까지 그려넣은 하얀 벽, 살고 싶은 곳이 프로방스 언덕입니까
* 정신이상의, 미친 것 같은
계간 『미래시학』 2017년 겨울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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