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석희 시인 / 전위적인 식사
자 그럼 식사를 시작하지 메뉴는 비굴을 견딘 모기 뒷다릿살과 백열등에 바싹 구워진 나방의 치열한 날개지 제발, 제발 소스는 크림색 파리 육즙이지 생존의 법칙에서 아부와 비굴은 필수 영양소지 며칠 밤잠을 설치게 한 보세 난 향으로 소스의 비린내를 감쪽같이 제거하지 포크와 나이프는 필요 없지 근육질 모기 뒷다릿살쯤 창틈을 파고드는 아침 햇살로 부드럽게 잘라 먹지 날개 요리는 지난밤 빗소리로 찍어 먹지 너무 밝은 조명은 이 식탁에 어울리지 않아 아부와 비굴은 결코 빛이 될 수 없으니까 이제 당신은 후식이 매우 궁금하지 아스팔트 위 땡볕에 튀겨낸 지렁이 납작, 자동차바퀴가 포를 뜬 뱀 부각이지 불공평한 오늘을 견디기 위해 최대한 전위적인 자세로 식사를 시작해야지 두 발뒤꿈치를 양쪽 어깨에 걸고 간곡하게 기도를 하 듯 손바닥으로 불안을 맞잡아야지 눈꺼풀로 생각이 많은 ‘눈동자를’ 자르고 자 이제 영혼이 배부른 식사를 시작 하지
함민복 시집 : 눈물을 자르는 눈꺼풀처럼 인용
계간 『포엠포엠』 2016년 봄호 발표
주석희 시인 / 휴일의 그림자
유리창에 그림자를 세워 두었어요 나는 어깨를 비틀거리며 리듬을 타요 탁자 위에는 네모난 빵과 레모네이드가 놓여있어요 나는 휴일의 그림자를 가장자리부터 발라먹어요 노트북 화상에서 상제르망 골목을 쏘다니는 아이들 레몬 향 웃음소리가 거품처럼 터져요 조미료가 뿌려진 마늘빵으로 늦은 아침 식사를 하고 있어요 혼자 먹는 식사는 너무 싱거워요 빵 봉지의 바스락거림을 귀에 걸기도 해요 어젯밤 발효온도는 달콤했어 반영구적 비닐의 바스락거림 포크로 찍어 먹는 여자들의 수다 옆 테이블에서 생크림이 쏟아져요 오븐이 최대한 빵 냄새의 부피를 높여요 휴일의 햇살이 동그랗게 부풀어 올라요 나는 귓속이 먹먹하도록 일주일 치의 소란을 진공으로 포장해요 어젯밤 혼자 창문을 뒤척이던 눈빛을 빵부스러기와 함께 쓸어내요 상제르망 빵집 유리창에서 휴일의 그림자가 지워지고 있어요 명심해야 해요 저녁이 오기 전에 유리창에 세워둔 그림자의 발목을 다시 묶어둬야 해요 기러기아빠의 유효기간은 어둠 속에서 급속도로 부패하기 때문이죠
〈2014 문학나무 젊은 시〉 선정 신작시
|
'◇ 시인과 시(현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황경순 시인 / 폭포 속에 사는 새 외 1편 (0) | 2019.05.29 |
|---|---|
| 이아영 시인 / 혀 외 1편 (0) | 2019.05.29 |
| 김길나 시인 / 빠지지 않는 반지 외 3편 (0) | 2019.05.29 |
| 장선희 시인 / 투무르잠* 외 2편 (0) | 2019.05.29 |
| 김명옥 시인 / 재건축 (0) | 2019.05.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