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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성인 시인 / me-too*
발목을 제외한 몸의 대부분을 가린 롱패딩이 앞다투어 사람들을 입는다. 사라진 겨울, 뒤뚱거리다 걷는 법을 잊어 버린 사람들이 좌충우돌 굴러다니다가 허기져서 길모퉁이 편의점으로 들어선다.
뼛속까지 불닭을 추종하는 면발이 사람들의 혀를 감는다. 순식간에 화마에 휩싸이는 입, 감각이 무뎌지는 줄도 모르고 기원도 국적도 온통 베일에 가려진 가공의 존재를 숭배하는 데 여념 없는 이들, 배가 부르다 못해 돌연변이 열매처럼 변해버린 일부가 편의점을 나선다.
횡단보도는 인간적인 실로폰 지나가는 풍경을 잠시 붙들고 그로 하여금 건반을 두드리게 했는데 더는 거기에 머무르는 풍경과 관객은 없다.
묘연한 겨울의 행방과 무뎌진 감각의 심각성과 삭막한 횡단보도에 대하여 의문을 품는 자가 없다. 우리의 혁명은 누구에 의해 소멸되었을까. 모두들 돌연변이 열매가 되어 구르기 분주한 거리, 실로폰 소리 대신 먼지들의 웃는 소리만 거리에 나부꼈다.
* (다른 사람이 성공한 것을) 너도 나도 따라하는
웹진 『시인광장』 2018년 3월호 발표
오성인 시인 / 금학헌 팽나무
소경이라고도 했던, 나주 심장부인 목사내아 금학헌 앞마당엔 낙뢰를 맞고도 너끈히 오백 살을 산 팽나무 있다.
이미 한 번 치명적 상처 겪어낸 경험으로 돌이킬 수 없는 상처 떠안고 찾아드는 이들 제 혈육처럼 반기는데
늙은 나무가 만들어놓은 그늘 무언의 경전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이라는 것과 삶은 고통의 바다 위 뜬 섬이라는 사소하면서도 정곡을 찌르는 이치들 팽나무는 안다
별별 산전수전 다 겪었을 老宿 어루만지면 손바닥에 고해의 소금 한가득 묻어나겠다
* 故 노무현 前 대통령 유서 내용 일부
계간 『문학들』 2018년 가을호 발표
오성인 시인 / 카레이스키(Корейский)* ― 광주 고려인마을
스탄, 도무지 입에 붙을 줄 모르는 말의 기분을 알까요. 한 생을 살아내기 위해 아무르 알타이 파미르
강과 산맥과 고원, 허공을 필연적으로 지나야만 하는 새들, 그들은 경계를 지우는 데 능숙합니다만
어째서인지 오천삼백여 킬로미터 거리는 여간 좁혀지지 않습니다. 블라디보스토크부터 타슈켄트에 이르기까지 산목숨들을 짐짝처럼 취급하고 팽개쳤던 독재자와 이념은 붕괴된 지 오래인데 여전히 파리만도 못한 우리에게 이곳의 여름과 겨울은 혹독합니다.
달나라에 가서도 장사를 할 사람들**이라는 말은 그들만의 농담, 그늘이 너무 깊어 한낮 사막 한가운데서도 어둡기 그지없는 우리는 누구고 우리의 조국은 어디입니까.
개미귀신처럼 백 년 넘는 시간동안 끈질기게 발목을 잡아온 화두를 풀기 위해 선조들의 자취를 따라 무연고 황무지에 벼가 뿌리내리듯 우리는 낯설지만 어쩐지 익숙한 땅에 발을 딛습니다.
월곡, 서러운 마음으로 계곡물 같은 달빛이 하염없이 흘렀습니다.
* ‘한국의’라는 뜻. ** 카자흐 속담.
계간 『문학들』 2018년 가을호 발표
오성인 시인 / 매미
폭염으로 끓어오르는 한여름 길을 걷고 있었다.
보도블록과 아스팔트 사이 경계석이 만든 그늘에 매미 한 마리가 태아처럼 웅크린 채 죽어있었다.
무엇이 그리 급했던 걸까, 생애 팔 할을 음지에서 보내고 온몸에 볕이 번지기도 전에 그늘로 돌아간 그는
곧게 뻗은 입이 선비의 갓끈과 같고 이슬과 수액만 먹으므로 맑고 해를 주지 않아 염치가 있고 집을 갖지 않으며 오고 감이 분명해 오덕을 갖췄다던가
도시에서는 낮밤 가리지 않고 소음과 불빛의 기세보다 맹렬히 울어야만 겨우 계절을 버틴다는데
오직, 그는 유일한 자산이자 목숨이나 다를 바 없는 그늘만으로 폭염보다 요란하게 울었을 것이다.
고단했을 몸을 근처 풀숲에 놓아주었다. 그늘이 된 그가 그늘을 베고 눕는다.
모든 그늘은 누군가 울다 간 흔적 내 안에도 그늘이 자라고 있었다.
계간 『시와 문화』 2018년 가을호 발표
오성인 시인 / 호스피스
간암 말기 선배의 소식을 듣고 찾은 호스피스 병동.
슬픔을 감추는 데 서투른 내가 죽음이 임박한 줄 모르는 그의 뼈만 남은 손을 .
차가웠다. 단단한 성질만으로는 감촉을 덮기 어려운 걸까.
유독 잔인한 봄이라는 것을 직감했는지 서둘러 떠난 앙상한 몸의 벚꽃들.
음식 조심하고 꾸준히 운동하면 괜찮아진대, 라는 말이 아직 너는 슬픔에 취약하구나, 라고 들렸다.
어두운 낮을 가진 사람과 환한 밤을 가진 사람 중 슬픔을 감추는 데 익숙한 쪽은 어디일까.
저승은 이승에게 위로가 되는데 죽음이 지척인 걸 알면서도 나는 왜 아무것도 되지 못 하는지.
오래 길을 걸었다. 위로가 되지 못한 풍경들을 읽으며
계간 『시와 문화』 2018년 가을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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